• 진보신당, 성찰도, 전망도, 책임도 없다
    [투고] 이대로 가면 ‘다음 기회’에도 실패할 가능성 높아
        2012년 05월 07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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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보신당이 법적으로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를 단순히 행정적, 법적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정당이 만약 독재시기에 국가보안법 따위로 해산되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의 지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해산되었다면, 그것은 결코 행정적, 법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다.

    소수 정당을 부당하게 차별한다고 보일 수 있는 정당법에 위헌 소송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잘못 이해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국민적 지지의 부재라는 엄연한 정치적 문제를 외면하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모든 논의가 엄연한 정치적 실패에 대한 것으로 모아졌으면 좋겠다. 우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왜 많은 이들이 외면했던가?

    유세 중인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사진=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엽)

    2.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권력자들이 실제로 권력을 잃을 수 있게 설계된 제도”라는 말이다. 정치적 평등이라는 이상에도 불구하고 실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분명히 권력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낮은 수준에서나마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권력자들이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조금 더 보편적인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책임성’의 원칙이라 부를 수 있다. 한 시점에서 보통 사람들의 지지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어떤 시점에서 그것을 잃었을 때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적인 원리일 것이다.

    3.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라는 두 영어 단어는 모두 ‘책임성’이라고 번역된다. 그 둘의 차이는 대충 다음과 같다. 우선 전자는 일반적인 차원의 책임성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책임, 판매자의 구매자에 대한 책임 등등. 이러한 책임성은 법적 차원도 포함하지만 도의적인 책임도 포함한 매우 넓은 개념이다.

    반면 후자는 우리의 관심사인 정치적 책임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에서 분명한 권력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리더가 팔로워들에게 분명히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다. accountability는 ‘account를 할 수 있음’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account는 ‘설명한다’는 말이다.

    팔로워들이 원하던 결과가 나왔든 그렇지 않든 간에, 리더는 분명히 자신의 결정과 작금의 현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정치적 책임성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현실이 바람직하지 않을 때 그에 대한 ‘입증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는 것이다.

    4.
    사실 책임성은 민주주의에 고유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았듯, 가뭄이 들었다고 왕이 물러나기도 했다고 하지 않는가? 왕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득 가능한 설명을 할 수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는 것, 이처럼 책임성은 때로는 비합리적일 정도로 잔인한 원리이다.

    우리가 오늘날 정치에서 책임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 체제에 비해 상대적인 강점을 가지는 것은 정치적 책임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2010년 지방선거에서 범야권이 승리했을 때, 청와대에서 ‘서울’과 ‘경기도‘를 지켰기 때문에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많은 국민들은 분노했다. 작년에 오세훈 전 시장의 주민투표가 무산되었을 때, 홍준표는 ‘사실상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 또한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책임을 져야할 순간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민주주의의 기초적인 원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5.
    이번 선거가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당 대표가 사퇴했다. 당 대표직을 이어받은 문성근이 ‘사실상 승리’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당 안팎의 반발이 있었다. 만약 새누리당이 120~130석을 얻었다면 박근혜도 휘청했을 것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에서 참패한 민주노동당 내 당권파는 거의 전권을 심상정 비대위에 위임했다. 나름의 책임을 지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대위 안이 거부되었을 때, 우리는 정치적 책임성을 묻는 다른 방식을 택했고, 그것이 우리 당의 창당이었다. 분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우리의 선택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었고, 그것은 일종의 창당 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
    우리의 문제를 돌이켜보자. 진보신당은 2012년 총선에서 실패했다. 이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모두가 반성하겠단다. 성찰하겠단다. 그리고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으로 다시 서겠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책임질만한 이유가 있는 세력이 없기 때문일까? 모두가 잘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차피 우리는 다음 기회에도 실패할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우려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다음 기회’를 말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말하고 있지 못 한 것은 아닌가?

    분명 이번 선거는 모두가 알다시피 매우 어려운 외부적 조건 하에서 출발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영향을 미쳤던 외부적 조건을 냉정하고 엄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좋은 외부적 조건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는가?

    또 한 가지, 성찰하고 평가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은 조금 다르다. 성찰하고 평가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지어야 하는 것이다. 책임을 지기 싫으면 권력도 잡지 말라는 것, 이게 좋은 민주주의가 요청하는 바이다.

    7.
    진보신당 창당 초기에 나왔던 <성찰과 전망>이라는 문서가 있다. 이 문서는 왜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이 실패했는가를 성찰하고 있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그 문서에서 많은 이들은 근거 없는 희망적 사고를 피하고, 조심스럽게 희망의 근거를 찾아보려고 했다. 그 문서는 과거에 대한 냉철한 평가이자 미래를 향한 길잡이로의 역할을 도모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는 민주노동당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을 ‘우리’가 아닌 ‘그들’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좋은 평가는 ‘우리’에서 출발해야한다고 믿는다. 그래야지만 과거에 대한 ‘성찰’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진보의 재구성’과 ‘새로운 진보좌파 정당 건설’의 내용적 차이가 얼마나 커다란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원래 하고자 했던 바’를 계속해서 추진해나가자고 말한다.

    오늘날 진보신당은 당시 민주노동당보다 더욱 참혹하게 실패했고, 그 결과는 진보신당의 법적 해산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에겐 <성찰과 전망>은 없고, 비대위도 없다. ‘진보의 재구성’의 실패가 평가를 엄정하게 했기 때문이라면, 이는 그리 문제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진보의 재구성’의 실패가 더욱 엄정한 평가가 없었기 때문이고, ‘우리’ 안에서 문제를 찾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책임지는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는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9.
    두 가지 우려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평가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지금은 당을 재정비할 시점이자 미래를 준비할 시점이다. 그들이 말하길, 평가는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말한다. 그렇게 싫으면 왜 여기 있냐?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은 당을 해치는 것은 아니냐?

    첫 번째 질문에 우리는 통합진보당이 아닌, 노동이 중심이 된 진보 정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목표는 아마 대다수의 진보신당 당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자 한다. 엄밀한 평가는 필연적으로 진보신당에 대한 ‘비판’을 그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현행 진보신당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칼로 찌르는 것과 수술하는 것이 겉으로는 같게 보이더라도, 그 목적과 결과는 정반대이듯,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수술’이다. 우리가 ‘혁신’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피부를 벗겨서 새롭게 한다는 말 그대로여야 한다.

    10.
    다른 한 주장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을 다시금 하자는 주장이다. 그들은 진보신당의 공식명칭이 ‘진보신당 연대회의’였던 것처럼, 그리고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목표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우리가 원래 하려고 했던 바를 다시금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가 아름다웠고 그것이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왜 그것이 이뤄지지 못 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그리고 실패의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이 시점에서 평가하고 책임지는 것이 미래를 밝혀줄 수 있다고 믿는다. 평가를 위한 평가는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평가가 실패의 원인을 밝혀줄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원인에 대응하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평가는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이 될 수 있다.

    필자소개
    이기훈
    진보신당 관악당협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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