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
        2008년 12월 30일 03: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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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하던 가을 나는 감옥에 있었다. 7월에 수배되어 10월 말에 연행될 때까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로 천막에서 살았고, 천막이 침탈당한 후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살았다.

    수배자의 안식처?

    회사식당에서 밥먹고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조합원들을 만났으니, 대한민국에서 수배된 자가 살기에 현대자동차 공장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10월 23일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 나를 얼핏 보기에도 40여 명이 넘는 경비들이 샤워실 문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납치해서 정문에 대기 중이던 경찰에게 넘겼다.

    끝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깡패처럼 생긴 경비들에게 끌려가 경찰에게 넘겨지는 연행 방식에 화가 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측을 상대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해고자들의 출입을 보장하라는 요구로 단식을 하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더 이상 조합원들의 걱정스런 눈빛이 나를 보고 있지 않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지회 투쟁계획을 제출해야 한다는 숙제가 어깨에서 내려왔다. 어쩌면 그렇게도 잠이 오던지. 그러던 어느날 면회온 조합원이 이해남 지회장이 위독해졌다고 말했다.

       
      ▲고 이해남 세원테크 지회장(사진=민주노총)

    “이해남 동지가 어디 아파? 다쳤어요?”
    “아니,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요? 부지회장 연행되던 다음날인가 분신했쟎아. 대구에서.”

    그동안 면회오던 조합원들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나에게는 말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된 그 조합원은 당황했다.

    “나는 당연히 알줄 알았지. 부지회장도 너무 오래 굶지 말라고. 걱정스러워서.”

    비가 내렸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와 앉은 독방에서, 그래도 꾸벅꾸벅 졸며 내가 미쳤구나, 생각했다.

    왜 그는 제 몸에 불을 질렀을까

    정직하게 쏘는 눈빛이 맑은 이해남 동지, 아산공장 천막으로 연대방문을 와서 수배되어 있는 나와 악수하고 헤어지며 힘주어 잡던 손이 마지막이었다. 깜박깜박 꿈결에 그 눈빛이 나를 보고 웃고, 그 손길이 내 손안에 여전히 따뜻했다. 강하고 굳센 사람이 왜 스스로에게 불을 지르는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마음 먹었을까. 

    나는 뭐하고 있는 걸까. 자본의 질서에 길들여져 살 수 없어 싸움을 하는 동지에게 함께 씩씩하게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고, 그동안 우리 힘내서 함께 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지 못하고, 외롭고 무거운 절망에 끝내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참 나쁘다. 내가 이런 마음인데, 옆에서 함께 투쟁했던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그런 방식으로 분신을 해. 함께 투쟁하며 더불어 나눈 그 시간과 기억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라고 분신을 해.

    그러고 죽으면 차가운 땅속에서 이해남 지회장, 동지는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러는 게 아니지. 그러는 게 아니지. 안 그래도 노동자로 살아 서러운 동지들에게 할 짓이 아니지. 원망스러웠다.

    다시는 내 동지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그 가을과 겨울을 우리는 ‘열사 국면’이라고 불렀다. 많은 동지들이 살 수 없어 차라리 죽었다.

    5년이 흐르고 얼마 전 이현중, 이해남 평전이 『당신은 나의 영혼』이라는 제목,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이해남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변한 것 없는 세상에 아직 노동자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로 나는 읽었다.

       
      ▲『당신은 나의영혼』 표지

    세원테크 조합원들이 담담하고 진솔하게 그때를 말하는 것이 소박한 문체, 날것 그대로 쓰여져 낯익다. 현장의 쇳소리, 냄새, 식당의 반찬, 땟국물에 절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까지.

    돌아보니 인간이 아닌듯했던 시절. 어떻게 일하고 어떤 심정으로 웃고, 울며 결의하고 투쟁했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조합원들의 말을 최대한 존중하며 작가는 썼다.

    세원테크 철우의 부탁

    그렇게 서로 동지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힘차게 투쟁했던 동지들을 읽으며 지금, 여전히 막다른 길로 몰려 가파른 싸움을 결의해야 하는 동지들에게 모범이 되고 위로가 되는 책이길 바란다. 책 자체가 소중한 증언이고 기록일 뿐 아니라,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인 세원테크 조합원들의 삶이 이 땅위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막 고등학교 졸업하고 세원테크에 입사해 투쟁을 했던 조합원 유철우는 며칠 전 동희오토 정문에 있던 비정규직 집회에 연대하러 참가했다가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이제는 스물여섯,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젊은 철우를 유치장으로 면회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당부를 거듭한다.

    “누나, 사람들보고 알라딘에 꼭 가입해서 『당신은 나의 영혼』 책에 리뷰 달라고 말해줘요.”

    단지 집회에 참석한 것뿐인데 연행되어, 세원테크 투쟁했을 때의 기록을 근거로 전과자라며 ‘특수공무방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받고 구속된 철우가 유치장 너머로 걱정하지 말라며 순한 눈매로 웃는다.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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