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겉만 빨간지, 속도 빨간지 봐야 알디요”
        2008년 12월 30일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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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진행된 민주노동당의 평양방문은 많은 당내외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장 잘 한 선택이었다.

    그때 평양행을 강행하지 않았다면 민주노동당은 북핵실험 이후 조성된 반북 정세에 굴복한 ‘진보정당’이 되고 말았을 것이고, 한나라당에 의해 조성되고 있었던 전쟁과 대결 분위기에 저항하지 않는 ‘평화정당’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평양방문을 포기했더라면 조만간 조성될 역사적인 북미간 대타협의 과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몰역사적인 ‘노동자정당’으로 기록될 것이다.

    당내의 반대도 많았지만, 한나라당과 극우 언론들의 방해책동은 끈질겼다. 당시 벌어진 소위 ‘일심회’ 사건을 두고 방북단에 간첩이 포함되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막말이 오고가기 까지 했다.

    당사 앞과 인천공항에는 반대하는 단체들의 고함소리가 우렁찼고 인터넷에서는 ‘가면 돌아오지 말라’는 돌팔매질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때 민주노동당은 제 갈 길을 꿋꿋하게 갔다. 정부간 대화도 중단된 상태였고, 6자회담도 공전을 거듭하던 때였다.

    민주노동당만이 초청되었고, 민주노동당만이 가서 무엇이든 말하고 듣고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평양방문 결행은 당연한 것이었고, 참 잘한 선택이었다.

       
      ▲평양순안공항에서 환영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방북 대표단.

    뭐 대단한 성과도 없었지 않으냐는 비판이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는 가는 것 자체가 성과였고 대단한 일이었다. 중단된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우리의 자평이 자화자찬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 일을 하지도 못했고 엄두도 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때 겪은 많은 일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 맞겠다. 여기에 싣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는 다른 지면의 여유를 통해 정리해 볼 생각이다.

    출국성명, 평양 방문을 불가능하게 할뻔하다

    출발하기에 앞서 10월 30일자로 발표한 문성현 대표의 ‘출국성명’은 지금 봐도 잘 쓴 성명이다. 당시 상황을 잘 정리했고 우리의 의지와 목적을 분명하게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쓴 성명서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쓰던 때나 다시 보는 지금이나 잘 썼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성명서는 북쪽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었다고 한다. 출국 성명은 내가 쓰고 도착 성명은 자통위가 썼는데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겠지만 나름 적절하게 역할을 배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출국 성명서에서도 ‘미국의 우선 책임론’, ‘한나라당 등 전쟁불사주의자들에 대한 비판’, ‘평화정당으로서의 자기 책임’, ‘방북의 정당성’ 등을 우선 설명하고 있다. 다만 북측이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런 대목들이었다.

    “핵문제와 관련한 국민여러분들의 우려와 비판을 북측에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은 강력하게 반대할 것입니다.
    핵무장 해제를 위해 설득하고 또 설득하겠습니다.

    남북 당국간 대화의 복원을 주장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공동의 노력에 대한 북측의 성의있는 태도를 촉구하겠습니다.
    평화교류와 화해협력의 깊은 물꼬를 열고 돌아 오겠습니다.”

    북측의 논란은 우리 상상 이상이었다고 한다. 입북을 위해 베이징에서 하루를 머무르고 있던 대표단을 당장 서울로 돌려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성명서의 대표 집필은 대변인이 하지만 검토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당연히 이 표현들이 북을 자극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남쪽 국민들에게 우리의 방북 목적과 평화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목적의 성명서임을 모두가 수긍했기 때문에 나간 것이다.

    어쨌거나 하마터면 북핵실험 이후 벌어진 난리통에 방북하는 “최초의 규모있는 역사적인 방북길”이 내가 쓴 성명서 때문에 베이징에서 막힐 뻔 했었다. 

    “겉만 빨간지 속도 빨간지는 봐야 알디요…”

    그 때문이었을까? 평양에 도착한 이후 북측 인사들은 나름 나에게 “공화국에 대해 잘 리해하고 써 주시라”는 당부와 훈계를 종종 받아야했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평양에서도 내 얼굴은 잘 알려진 편이라고 했다. 남쪽 소식을 전하는 남쪽 보도가 중앙TV를 통해 평양시민들에게 전해질 때 민주노동당의 입장과 동향은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데 그 때 대변인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북측은 사전에 우리측 방문단의 면면을 대략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양측간 교류속에서 구면인 경우도 많았다. 평양 순안 공항에 내리자 조선사민당 측은 우리를 환대했고 입국 수속을 밟는 와중에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느라 분위기는 분주했다.

    그러나, 첫 방문이고 실무단 협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아는 사람이 없어 머쓱했다. 그렇다고 순안공항 로비에 덩그러니 혼자 있기도 뭐했다. 마침 방석수 기획실장이 북측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어서 인사라도 나눌 요량으로 다가섰다.

    방석수 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상대는 조선사민당 유력인사라는 백도남 조직부장이었다. 옅은 색의 알이 큰 선글라스를 끼고 마른 얼굴에는 치밀함이 묻어나는 주도면밀형 인상이었다. 방 실장이 그에게 나를 소개했다.

    백도남 부장은 “잘 압니다.” 짧게 대답했다.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뭔가 썰렁한 느낌이 들어서 였는지 내가 내미는 명함을 보고 방 실장이 눈치 빠르게 농담을 던졌다.

    “박용진 동지는 우리당에서 제일 빨갱입니다. 어찌나 투철한지 명함도 빨간색 이잖아요”

    당시 내 명함은 빨간색의 굵은 줄이 선명하게 박혀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온 농담이었다. 그러나 백도남 부장은 안경을 치켜올리면서 명함을 앞뒤로 훑어보고 나서 명함 너머로 나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 겉만 빨간지, 속도 빨간지는 앞으로 봐야 알디요…”

    농담을 업어치기 해 송곳자리에 내려 놓은 것인지, 그 나름의 농담이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나는 엄청 당황했다. 두어 건의 성명과 논평 때문에 북측이 박용진에게 섭섭해 한다며 올라가면 단단히 정신교화를 당할지 모른다 했던 남쪽에서의 농담이 생각났다.

    아, 그때 내가 멋지게 응수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겨우 이런 말만 하고 말았다.
    “아이고… 대변인이라고 어디 다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나요 뭐~”

    현장에서 당황한 내 표정을 봤던 방석수 실장이 나중에 내 귀에 대고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왜 그랬어…”

    글쎄… 그러게 말이다… 왜 그랬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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