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고는 안된다”
        2008년 12월 29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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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금속노조(IG Metall)가 지난 12월 11일 ‘일자리보장, 경기활성화, 미래지향적 투자’를 핵심요구로 한 현 경제위기 극복방안에 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이 담화문은 현 경제위기가 미국발 서브프라임사태로부터 출발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금융시장의 탈규제와 단기실리적 주주가치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지난 6월 독일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집회모습

    이미 세계경제는 물론, 독일경제 또한 심각한 경제위기상황에 봉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독일금속전자산업도 지난 몇 달간 생산량이 약 20% 이상 급감함으로써, 수많은 기업들이 유동성 부족에 따른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의 원인제공자인 은행을 비롯한 금융시장의 경제행위주체와 정부가 경제회복 방안마련과 산업노사에 대한 지원노력보다는 자신의 이익보호와 유동성유지에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독일금속노조는 경제위기의 원인제공자들이 이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은행, 그리고 대기업이 고용안정, 경기활성화와 미래지향적 투자에 대한 보다 책임있는 조치를 빠른 시일 내에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안정 보장하면 적극 협상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금속노조는 2009년 활동에 있어 핵심목표로 ‘해고방지와 고용유지’를 설정하는 동시에, 경기회복 시기 고용창출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새로운 일자리공급, 직업훈련과 숙련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정부와 사용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한편 독일금속노조는 법제도의 개정, 단체협약과 사업장협정의 활동과 같은 방식으로 고용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정부와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제안한다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올해 11월 말에 조기에 종료된 임금교섭에서 내년 4월까지 2.1%, 5월부터 1년간 추가적인 2.1%의 임금인상이라는 2년간 유효한 임금합의안을 노조가 이번에 수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독일금속노조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어떤 내용들을 제안하고 있는 것인가? ‘해고는 안된다’는 핵심슬로건 하에 독일금속노조가 제안하고 있는 7가지 주요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경영상의 이유로 한 정리해고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다. 독일금속노조는 현 고용수준의 유지를 위해서 사용자는 경영상의 정리해고를 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정부는 다양한 방식의 재정투입과 정책전환을 통해서 이를 보완, 지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독일금속노조는 사용자가 단축노동지원금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기업경영상의 이유만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할 경우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무책임한 기업에 대해서는 전조직적 역량을 투입해서라도 막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대 18개월간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단축노동지원금제도는 현재 상황에서 볼 때, 고용유지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조치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제도의 고용안정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단축노동과 함께, 해당노동자의 추가적인 직업훈련 및 숙련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와 사용자가 직훈생 생활비 부담해야

    둘째, 노동시장의 약자에 대한 보호를 위해 사용자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금속노조는 현 경제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청년취업예정자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에서 견습생(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노동자의 경우 기업이 계속 고용을 보장해야 하며, 청년취업예정자들의 신규채용을 위해서 필요한 견습생 일자리의 확대를 위해 사용자와 정부는 기존의 ‘직훈생 사회협약’을 연장하여 이들의 임금 및 생활비와 훈련비를 공동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파견법의 개정 이후 급격히 증가한 파견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보호조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경기호황기 때 파견노동자들의 저임금을 통해 파견회사들이 엄청난 이익을 얻은 만큼 현 경제위기에서 이들의 고용안정에 대해 파견회사가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서 계약직과 파견직의 우선해고조치를 단축노동지원금의 지급조건으로 하고 있는 현행 법조항의 개정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정규직에게 적용되는 기본보호조치(단축노동, 동일임금, 공동결정 등)가 파견노동자에게도 적용되도록 사업장협정을 체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셋째, 은행이 유동성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에게 필요자금을 원활히 공급하고 대기업과 국책은행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지원기금’을 조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금속노조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자본이 현 위기의 일차적 책임 집단이라고 판단하고 이 국면을 극복하는 데 있어 이들의 책임있는 태도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의 첫 걸음은 실물경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공급에 대한 능동적인 실천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은행권의 유동성확보를 위해서 현재 추진 중인 긴급지원대책에 있어 제조업 산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의무할당액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와 함께, 완성차업체와 국책독일경제은행(KfW)의 공동출자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중소기업 ‘지원기금’을 현재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산업 부품업체들에게 지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완성차 출자로 부품업체 지원

    넷째, 환경보호와 내수진작을 위해 10년 이상 중고차의 폐차보조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 중고차의 폐차시 대당 3000유로의 정부지원금을 지급하고, 만일 폐차와 동시에 신차구입이 이루어지면 대당 4500유로까지 지원하는 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 독일 금속노조 조합원들

    독일에서 운행 중인 자동차의 평균연령이 약 8년에 이르고, 유럽연합의 유해물질규정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환경오염의 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자동차수요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조치라고 판단하고 있다.

    독일금속노조는 이러한 폐차보조금의 지급을 통해 약 75만 대의 신차수요가 발생하는 동시에, 135억 유로에 이르는 소비수요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섯째, 경기침체국면의 단기 내수활성화를 위해 저소득층에 대한 상품권(일종의 바우처)의 지급을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연간 소득수준이 3675유로가 넘지 않는 가구를 대상으로 가구구성원의 수에 따라 각 개인당 250유로에 상당하는 현물구입권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현 국면의 심각한 경기침체를 벗어나는데 필요한 내수진작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저임금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번 제안은 연방정부가 논의 중인 가구당 일괄 500유로 지원방안보다 소득분배와 소비수요효과가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여섯째, 미래지향적인 국내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고용-교육-환경”이라는 기금조성을 요구하고 있다. 4년간 약 1000억 유로에 이르는 미래지향적 투자기금의 조성을 목표로 하는 이 방안은 기금의 재원을 자산 및 금융소득의 합계가 연간 75만 유로가 넘는 가구에게 한시적으로(4년간) 연간 2%의 분담금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한편 이렇게 조성된 미래투자기금을 지자체, 자치주의 교육, 연구, 환경 등의 사회간접자본에 무이자로 투입하는 동시에, 에너지와 자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사업영역으로 하는 민간기업에게 유럽중앙은행의 이자율수준에 맞게 15년간 대출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매년 수 만개의 녹색일자리가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부문에서 새롭게 생길 것으로 독일금속노조는 예상하고 있다.

    지자체 지원, 녹색일자리 창출

    일곱째, 기업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노동자의 공동결정권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경제에 신자유주의적 기업정책이 도입된 이후 나타난 심각한 문제점과 이로 인해 발생한 현재의 경영위기를 내부감시 메커니즘을 통해 통제하기 위해서 현행 공동결정제도를 보다 발전시킬 필요성이 제기된다.

    독일금속노조는 먼저 공장설립, 이전과 폐쇄에 대해서 노사동수로 구성되는 경영감독회의 2/3 이상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공동결정법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1965년 ‘주식회사법’의 개정을 둘러싸고 노동조합이 제안했던 “최고경영이사회는 주주와 기업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공 및 노동자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할 의무를 지닌다”는 규정을 새롭게 도입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독일금속노조는 현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을 타개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들을 정부와 사용자에게 신속히 제안하고 있다. 또한 연초를 기점으로 조합원과 노동시장의 소외계층에 대한 보호와 지원조치를 포함하는 노동조합의 ‘고용연대’와 ‘사회연대’방안이 곧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독일사례는 경제위기로 인해 현실화되고 있는 비정규직의 퇴출과 중소영세기업의 도산위기에 대해 한국의 노사정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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