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봄, 제2촛불 가능성 크다”
        2008년 12월 27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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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촛불집회 정국에서 광우병대책회의 조직팀장으로 일하다 구속됐다. 감옥에서 48일을 지내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번에는 또 민생민주국민회의 정책네트워크팀장으로 일하게 됐다.

    직함이 많은 만큼 일복도 많은 안진걸 팀장과의 만남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몇 차례나 약속이 연기됐고, 26일 오전 약속도 ‘급히 잡힌 국회 앞 집회’ 때문에 오후로 연기됐다. 국회 항의 시위를 마치고 <레디앙>을 만난 안진걸 팀장은 “내년 봄 제2촛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업대란이나 대학등록금 문제 같은 조건이 겹쳐 제2촛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민생민주국민회의가 민주당과 지나치게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안진걸 팀장은 “예산심의에 관련하여 제1야당의 현실적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접촉하는 수준”이라며, ‘한시적’, ‘실무적’ 연대라고 못박았다.

    경제위기에 관련한 민생민주국민회의의 정책 방향에 대해 안진걸 팀장은 “추경편성 때 고용, 비정규, 실업 예산을 따내려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실업수당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여급여를 지급하게 하는 데 힘쓰고 있다”며, ‘악법저지투쟁’이 ‘예산투쟁’으로 전환 발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안진걸 팀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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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집회는 어떤 집회였나?

    = 참여연대가 1월 29일까지 비상을 선포하고 악법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아직 체계적 시스템이 완비되지는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선 참여연대부터라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구호 외친다고 플래카드까지 빼앗아 가더라.

    한나라당이 각종 악법을 강행 처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29일부터 31일 사이에 국민회의, 언론노조, 농민들이 총집결해 싸울 예정이다.

    – 수감 생활은 어땠나?

    촛불시위의 정당성을 다투는 재판

    = 6월 25일 이정희 의원, 초등학생까지 연행되는 상황에서 항의하다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연행됐다. ‘국립청계산수련원’에서 책 읽으며 지냈다. 처음에는 촛불과 함께 하지 못해 억울하고 답답했다. 잡혀간 당일 밤에는 열성 네티즌들과 2차 대화가 예정돼 있었다. ‘광화문 새벽 전술’을 토론할 예정이었는데, 어쨌든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

    좀 쉬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책을 많이 보게 되어 좋더라. 밀의 『자유론』, 『데미안』, 『짜라스트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이 평소 접하지 못한 고전을 읽으며, 고전이 고전인 이유를 알게 됐다.

    계속 밖으로 편지 쓰며 교육감선거 투표를 독려하기도 하고. 재판에서 촛불시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변호사들과 의논하기도 하고, 직접 15쪽짜리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담당 판사가 집시법 10조의 야간집회금지 조항에 위헌신청을 냈다. 그 덕분에 헌법재판소 판결 때까지 재판이 연기됐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내년 봄에 헌재에서 공개 변론할 예정이다.

    헌재가 재산권 문제에서는 보수적이나, 자유권에서는 조금 진전된 판결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대하면서도 걱정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퇴근 후에 집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야간집회 아니겠는가. 얼마 전에 경찰대 교수 한 분도 야간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글을 썼더라.

    – 민생민주국민회의와 민주당의 관계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있다. 그 관계는 실제로 어떠한가? 그리고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민주당은 처음부터 국민회의에 안 들어오기로 했고, 지금도 안 들어온 상태다. 예산심의에 관련하여 제1야당의 현실적 힘이 필요했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접촉하는 수준이다. 민주노동당은 계수조정소위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견인 위한 고육지책

    그래서 민주당 등과 함께 하는 연석회의를 개최했던 것이다. 이런 연석회의는 실무적이고 한시적이다. 민주당은 부자감세가 한나라당이 강행통과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당이 합의해준 것이다. 이번 국회를 통해 민주당에 대해 다시 한 번 잘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민중적, 사회운동적, 서민적 내용으로 견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연석회의에서 ‘파탄난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민주당도 여기에 동의하게 됐다.

    부자감세 통과 후 연석회의가 깨졌다. MB 악법 저지라는 과제가 있지만, 다시 민주당과의 연석회의를 하지 않고 진보신당, 사회당 등과 함께 시국대회를 갖고 있다. 민주당에게 장미꽃을 갖다 준 것은 ‘혁명의 상징’을 갖다 바친 게 아니라, 피흘려 싸우라는 뜻이었다.

    DJ가 ‘민주연합’ 이야기를 하면서 의혹이 증폭됐는데, 이런 수준에서 민주당과 연대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제안했던 것이다.

    – 지금 상황을 보면 노무현 정권 때의 개혁입법 정국과 비슷하다. 보수양당이 세금이나 재정에서는 똑같이 신자유주의적인 입장이면서 상부구조나 이데올로기에 관련된 법으로 상대와 차별화하는 그런 상황 같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텐데, 언제까지나 민주당을 찾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선거는 진보정당들과 함께

       
      

    = 국민회의와 참여연대 안에는 아예 민주당 해체를 촉구하자는 의견이 다수 있다. 하지만 남의 당에게 해체하라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민생연대를 강화하지 않으면 민주당이 지금처럼 나갈 것은 뻔하다.

    국민회의나 참여연대가 민주당과 협력한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 민주당이 열심히 싸운다고 공언하니, 그러면 잘 싸우라는 것이다. 어찌하든 이후에도 민주당에 관련된 논란은 계속될 것 같다.

    – 기성정당들은 선거를 가장 중요시한다. 지금 국회에서 온갖 짓을 다 하고 있지만, 결국은 다음 선거로 맞추어진 행보를 걷는 것 아니겠나? 언제나처럼 선거에서는 ‘민주연합’이 더 맹위를 떨치게 될 텐데.

    = 국민회의 안에서 선거연합이 상정되거나 논의된 적은 없다. 그럴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정당과의 관계, 선거 대응 문제라면 당연히 소속 단체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 국민회의 정책네트워크팀장인데, ‘정책네트워크’라는 게 뭔가?

    = 각 단위, 단체, 개인들에게는 좋은 정책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 정책들을 제출하고 교류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국민회의에 소속됐든 되지 않았든 새사연, 사회공공연구소, 희망제작소 같이 좋은 싱크탱크들을 만나는 모임을 몇 차례 갖고 있다.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경제정책이나 민생정책에는 약하더라. 이 부분을 서로 공부하고, 국민회의 틀이 아니더라도 이런 네트워크를 계속 가져 나가야 될 것 같다. 손발이 없는 싱크탱크들의 집행력을 받쳐주는 의미도 있다.

    – 국민회의는 어떤 정책 방향을 주로 고민하고 있나?

    실업수당 사각지대에 실업급여를

    = 일단은 ‘악법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후에는 ‘예산투쟁’이라는 말을 썼으면 좋겠다. 진보운동이 예산 문제에 쏟는 힘은 정치투쟁이나 통일운동에 비하면 1/10도 안 된다.

    이번에 처음으로 여러 단체들의 요구를 통일시킨 예산요구안을 냈다. 이미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서 추경편성 때 고용, 비정규, 실업 예산을 따내야 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함께 하는 준비가 잘 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 비정규직, 폐업 중소상공인 등 실업수당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실여급여를 지급하게 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런 요구 중 일부가 미미하나마 정부정책에 반영되고 있기도 하다.

    수도 없이 명멸했던 연대체처럼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사라질 수도 있다. MB독재에 대항하라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고, 민주주의와 민생을 지키기 위한 의미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서민이 입을 타격을 다소나마 줄여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 촛불집회 사회를 많이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을 것 같다. ‘촛불’이란 무엇일까? 일부 촛불 참가자들은 광우병대책회의 같은 운동권이 촛불을 망쳤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 시민과 네티즌이 참여민주주의의 정수를 보여준 것이 바로 촛불이다. 선출된 권력이고 의결된 정책일지라도 국민 동의를 못 얻었을 때 어찌 되는지를 보여줬다. 비조직적, 자발적 사회운동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줬고, 사회운동이 운동권의 전유물이 아님을 웅변했다.

    그러나 지금도 언젠가 촛불이 일어나 MB를 응징하리라는 식으로 촛불에 모든 것을 기대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촛불은 여러 주체가 서로 알리고 이끌어내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준비와 실무가 결합해 일어났던 것이다.

    실업대란과 대학등록금이 제2촛불 일으킬 수도

    촛불집회 시작 1주년이 되는 내년 5월 2일을 즈음해 제2의 촛불이 일어날 것이라는 네티즌들의 이야기가 많더라. 실업대란이나 대학등록금 문제를 보면 그리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여건이 종합돼 제2촛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에 기대 운동하지는 않겠다.

    운동권이 촛불을 망쳤다는 비판은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시작된 촛불집회에 사회단체들의 인위적 기획이 결합되면서 나온 문제다. 사회단체들이 대중운동을 활성화시키는 실무적 역할을 한 것은 불가피했고 바람직했다. 광우병대책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너무 몸사린다’는 비판도 있고, ‘너무 공격적이다’라는 비판도 있다. 양극단에서 오해가 많았다.

    광우병대책회의의 실수가 분명한 것은 질서있는 퇴각 시점을 놓친 것이다. 7월 5일에서 8월 15일 사이 어느 시점에 질서있는 퇴각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좀 쉬었다가, 다음에 신나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주었어야 하는데, 시점을 놓치다 보니 8.15 대회 이후에는 마음 상하는 상처가 많았다.

    누구 잘못이라고 꼭 짚기는 어렵지만, 광우병대책회의가 마무리나 뒷수습, 전환을 못하게 되었다. 간부와 실무자들이 잡혀가거나 수배되다 보니 나중에는 집회를 준비할 사람도, 마이크 잡을 사람도 없게 됐다.

    촛불집회 이후 생긴 촛불카페가 수백 개다. 이 카페들이 요즘에는 종부세를 주제로 집회를 하고 있다. 이런 것이 촛불의 진화라 생각한다.

    – 작년 3월 <한겨레>에 기고한 「시민운동과 ‘시민’의 거리 너무 멀다」는 글에서 “시민들은 후원자로서의 역할만 충실하기를 바라고, 중요한 결정은 이른바 교수 변호사 활동가 고액후원자 등 ‘전문집단’의 고유영역이 돼버리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최근 환경운동연합 사태 등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는데.

    수평적 협력관계의 시민운동 필요

       
      

    = 촛불을 거치며 이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노조에는 조합원이, 진보정당에는 당원들이 와서 노는 것처럼 편하게 출입하고 쉽게 제안할 수 있는 시민단체가 드물다.

    시민단체들이 신뢰를 얻고 있었다면 촛불 참가자들이 시민단체에 먼저 제안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네트워크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호소하고 제안했던 것이다. 심지어 시민단체들은 그런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시민운동은 한국 민주주의운동의 계승에는 성공했지만, 사회운동의 요체였던 근본적 사회변혁을 부담스러워 했고, 진보정당 노동 분단 문제에 제대로 연대하지 못했다.

    또, 보통 시민들과 거리 좁히는 데도 실패했다. 시민은 성장했는데,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은 낙후된 방식 그대로였다. 임원, 간사끼리 의논하고 결정하고 데모하고, 자기들끼리 평가하고, 언론에 나오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기층민중조직은 자기 대중이 있지만, 시민운동은 그나마도 없다. 삶의 주체인 시민이 운동 주체가 되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 태도의 거리, 정서의 거리, 운동방식과 단체운영의 거리가 있었다.

    – 그럼 어찌해야 할까?

    = 시민, 네티즌과 엄청 많이 소통해야 한다. 문턱을 낮추고, 찾아가고.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임원을 뽑고, 풀타임 운동가뿐 아니라 시민들도 파트타임 스텝으로 참여할 수 있게 바꾸고, 용어도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한 쉬운 말로 바꾸고.

    의제설정권이 임원과 간사들에게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고라 같은 곳을 잘 찾아 다니고, 제안 들어오는 목소리를 경청해야겠다. 시민운동을 보통 시민들의 수평적 협력관계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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