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르렁대던 정파들 10년만에 한자리
    비아냥 있지만 정파간 대화 계속키로
        2009년 01월 24일 01: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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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21일 열린 민주노총 45차 정기대의원대회.(사진=노동과 세계) 

    민주노총은 지난 1월 21일 서울 올림픽 홀에서 45차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서 09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확정지었고, 직선제 실시와 관련된 규약을 정비했다. 이번 대의원대회도 여전히 유회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안건 4번인 한국진보연대 가입 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성원 부족이 확인된 것이다.

    정파들의 전쟁터가 된 대의원대회

    민주노총은 98년 2월 9일의 유림회관 대의원대회 이후 지난 10년간, 정파 갈등으로 점철된 대회를 치러야 했다. 물론 그 기간 동안에도 비교적 무난하게 치러진 대회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통틀어 두세 번에 불과했다.

    그 기간에 치러진 대부분의 대회는 서로의 차이점이 부각되고 갈등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각 세력은 공통점을 확인하고 모아가는 노력을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다.

    대의원대회를 앞둔 정파들의 고민은 상대방의 대회 전술을 어떻게 제압하거나 저지할 것인가로 변질되어 갔다. 의견을 주고받으며 합의점을 찾아 결의하는 토론문화가 사라졌고,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는 주장만 넘쳐났다. ‘쪽수로 밀어붙이기’와 ‘퇴장하기’가 일반화되었다.

    이에 실망하고 지친 많은 대의원들이 대회 참석을 기피했고, 참석했다가도 대충 빠져나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유회’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고 말았다.

       
      ▲지난 2005년 2월 1일 폭력이 난무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사진=한겨레)  

    달라진 45차 대의원대회

    그러나 이번 45차 대회는 달랐다. 이번에도 대회가 유회됐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난 10년간의 대의원대회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접근하고 치러진 대회였다.

    서로를 향한 독기와 독설, 감정 섞인 야유와 고성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난 10년간의 정파 갈등을 상징했던 이른바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의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눈 대회였다.

    대회를 앞두고 현장파를 구성했던 ‘노동전선’, 국민파를 구성했던 ‘전국회의’, ‘현장연대’, ‘혁신연대’, 중앙파를 구성했던 ‘전진’에서 각 1~2명씩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1월 13일, 17일, 그리고 대회 당일인 21일, 세 차례에 걸친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다.

    모임을 소집한 이는 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인 오동진이었다. 그는 경동산업 해고노동자로 오랫동안 전노협과 민주노총 등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간담회에서는 모임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교환되었다. 참석자들은 특별한 이견 없이 공감했다.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이 없어졌다

    “작년 촛불투쟁과 언론투쟁 때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이 없었다. 이명박이 2월에 언론법과 비정규법, 최저임금법을 개악하려고 하는데, 민주노총은 무기력하다. 총연맹만이 아니라, 산별단위와 단위사업장도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오랜 갈등 속에서 각 정파가 서로 분리된 채,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지만, 아무도 정세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측면에서 볼 때, 각 정파의 개별적 실천은 도토리 키재기 아니냐. 민주노총 공조직에서 고민하겠지만, 정파들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한 5개 조직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의 투쟁력을 복원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세부 논의를 진행했다.

    첫째, 투쟁방침을 논의했다. 전국회의 참석자가 내놓은 ‘투쟁전선을 조기에 구축하기 위한 3월 중 조합원 찬반투표’의 실효성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지만, 흔쾌히 합의했다.

    정파 갈등을 해소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에도 공감했다. 이를 위해 5개 조직 공동으로 ‘MB악법 날치기 통과 처리 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 즉각 돌입, 3월 중의 80만 조합원 찬반투표, 용산 철거민 투쟁 연대’를 담은 성명서를 만들어 대의원들에게 배포하기로 합의했다.

    정파 비공개 간담회 내용과 의의

    둘째, 연대방침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2년간 논란되었던 한국진보연대 가입 건에 대한 문제였다. 이명박 정권의 폭정에 맞서기 위해 진보민중진영의 공동투쟁전선이 시급하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그 추진 방안은 하나로 모아지지 못했다.

    전국회의는 기존 방침에 근거해서 “민주노총이 진보연대에 가입하고, 더 넓은 연대체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주요한 논거는 “전농, 전빈련, 민주노동당 등이 이미 가입해서 민주노총의 진보연대 가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노동전선, 전진, 혁신연대, 현장연대는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진보민중진영의 새로운 연대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진보연대 건은 합의할 수 없는 사안이 되어버렸기에, 더 이상 분란의 소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의원대회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진보연대 가입 건은 지난 대대의 논의과정에서 유회되어 1번 안건으로 상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전국회의를 제외한 4개 조직 참석자들은 이 안건을 사업계획과 투쟁방침 결의 뒤의 회순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했다. 이전의 대회처럼 진보연대 건을 놓고 다투다가 유회되어 정작 사업계획과 투쟁방침은 결의도 못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전국회의는 2년간 처리하지 못했고, 지난 대의원대회 논의과정에서 유회되어 넘어 온 안건이기에 회순 변경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주요 이견들, 전선체운동과 정치방침

    셋째, 정치방침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우선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제기한 ‘진보정당 통합 권고안’을 민주노총 집행부가 받아서 직접 발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에 이견이 없었다. 집행부가 새로운 분란거리를 던지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었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논의했다. 전국회의, 혁신연대, 현장연대는 기존 방침에 동의했다. 전진과 노동전선은 진보신당, 사회당, 별도의 사회주의정당 추진세력에게도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넷째, 12월로 예정된 직선제 실시여부의 문제였다. 직선제를 둘러싼 상황의 심각함에 대해서는 모두 동감했다. “12월로 예정된 직선제 선거가 이대로라면 심각하다. 민주노총이 각종 시비에 휘말리면서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복수노조 허용과 맞물려 분열이 극단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혁신연대는 간선제로 되돌리는 것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의원대회에서 현장발의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밝혔다.

    이에 나머지 참석자들은 오랜 논란 끝에 직선제를 합의했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은 더 큰 분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대의원대회에서 일단 직선제와 관련된 보충규약 – 총회 신설, 위원장의 수석부위원장 임명 조항 삭제 – 을 통과시킨 뒤, 그 이후 논의를 하면서 모든 것을 열어놓고 고민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투표하는  대의원들.(사진=노동과 세계)

    직선제를 어찌 할까

    다섯째, 민주노총 지도집행력 강화방안을 고민했다. 참석자들은 이석행 위원장의 구속 등 여러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지도집행력만으로는 투쟁방침을 제대로 집행하기 어렵다는 점에 대해 공감했다.

    공조직 질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투쟁본부에 다양한 역량이 결합하는 방안, 별도의 기획단을 구성하는 방안, 연대투쟁체를 통해 보완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었다.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정파들 사이에 시원하게 합의에 도달한 것은 투쟁방침뿐이었다. 연대방침, 정치방침, 직선제 문제는 합의하지 못했다. 삐끗하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또 다시 파행으로 몰고 갈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사안들이었다.

    하지만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중요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반드시 투쟁방침을 결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회가 파행으로 가지 않도록 서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합의된 것은 공동으로 노력하고, 합의되지 않은 것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대응하기로 했다.

    드디어 21일 대의원대회 날. 1부 행사가 끝나고, 오후 4시부터 대회가 시작되었다. 사무금융연맹이 임원선거 때문에 한 명도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다들 걱정했는데, 성원을 무사히 넘겼다. 대의원대회 과반은 470명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45차 대의원대회

    5개의 현장 발의가 있었고, 그 가운데 현대미포조선 관련 건과 용산철거민 사망사태 관련 건은 투쟁계획에 반영하여 집행하는 것으로 만장일치 통과되어, 별도 안건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진보정당 통합 권고안이 현장발의 되었고, 안건 채택여부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재석 568명 가운데 432명이 찬성하였고, 마지막 안건으로 다루기로 했다.

    역시 뜨거운 감자는 진보연대 가입 건과 관련한 연대방침이었다. 이와 관련된 두 개의 현장발의가 있었고, 진보연대 안건의 수정안으로 묶어 다루기로 했다.

    전국회의는 자신의 입장을 별도의 수정안으로 만들어 대의원 서명을 받아 현장발의 했다. 발의 제안자는 구희수 대의원이었다.

    한편 노동전선, 전진, 혁신연대, 현장연대도 새로운 연대체 건설안을 현장발의 했다. 대표 제안자는 진영옥 권한대행이었다. 발의 제안은 이시욱 대의원이 했다.

    회순에 대해 운수노조 구수영 택시본부장이 제안했다. 안건 1번으로 올라와 있는 한국진보연대 건을 ‘보고 및 평가, 사업계획 및 예산안, 규약 개정 안건’을 다룬 뒤에 4번으로 다루자는 제안이었다. 찬반토론 후에 표결처리가 있었고, 재석 551명 가운데 301명이 찬성하였다.

    대의원대회 자세히 들여다보기

    ‘안건1, 2008년 사업보고 및 평가, 결산 승인 건’은 별다른 의견 없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안건2, 2009년 사업계획 및 예산 승인 건’에서는 정치방침이 논란되었다.

    전진과 노동전선에 연관된 대의원들이 사업계획 중에서 ‘민주노동당 강화’를 삭제하고, ‘진보정치 강화 및 노동자 중심성 강화’로 수정하자는 의견을 제출했다. 표결결과 재석 500명 가운데 207명이 찬성했고, 과반 미달로 채택되지 않았다.

    저녁 7시 20분경 식사시간을 위해 정회를 선포했다. 한 시간 뒤에 회의를 속개하고 ‘안건3, 규약 개정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이 안건은 472명 투표에 384명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어서 ‘안건4, 한국진보연대 가입 건’을 다루었다. 먼저 ‘수정안 2안’인 새로운 연대체 구성방안에 대한 제안 설명이 있었고, 표결을 위해 성원확인을 했다. 확인결과 438명이 대회 장소에 남아있었고, 과반인 470명에 미달하여 진영옥 의장은 유회를 선포했다. 연대방침은 결국 또 다루지 못했다. 이 시간이 밤 9시 5분이었다.

    대의원대회는 끝났다. 이번 대회는 각자에게 아쉬움과 허전함을 남겼다. 노동전선과 전진은 정치방침을 강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했다. 혁신연대는 직선제 문제와 관련한 현장발의를 포기했다. 전국회의는 진보연대 건을 또 다루지 못했다.

    아쉬움과 가능성

    그러나 가능성을 보았다.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에 몰두하던 주요 정파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을 되는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고 실제로 노력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의 주요 조직이 공동성명서라는 것을 만들어 대의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비록 작지만, 소중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0년, 각 세력은 대회 장소에 입장할 때부터 상대방에 대한 독기를 품었다. 하지만 이번 대대는 그렇지 않았다. 무려 11년만이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도 모자라, 1년을 더 보태고서야 혀에 독기가 빠진 대대를 치러 본 것이다.

    정파 활동가들의 간담회 소식을 듣고 비아냥거린 사람들도 있었다. 입장관철이 안 되면 간담회를 그만 두라는 주문도 있었다. 되든 안 되든 집행부가 책임질 몫인데 뭣 하러 그러냐는 냉소도 있었다. 다른 참석자들도 그 나름대로 여러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이명박 정권의 폭정이 노동계급과 민중의 삶을 옥죄고 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상황은 자연발생적인 촛불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진보민중운동의 조직력이 많이 무너졌다. 그나마 기민하게 대중동원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노동조합운동이다. 민주노총의 투쟁전열을 정비해야 한다.

    바로 이런 상황과 조건이 그 무엇이든 부여잡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지레짐작으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정파 활동의 명암 평가 필요

    비공개 간담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그러나 간담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은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성과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도 잡았다.

    비공개 간담회에서 논의하는 내용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투쟁전선의 구축문제’다. 그것을 위해 연대방침, 정치방침, 직선제, 지도집행력 강화방안 등을 논의한 것이다. 앞으로도 그 문제를 놓고 고민을 진척시켜 나갈 것이다.

    아직은 개인입장이지만, 나는 거기에 하나의 주제를 덧붙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정파의 문제’다. 앞의 글인 ‘중앙파-국민파-현장파의 기원’에서 이미 밝혔듯이, 운동에서 정파는 자연스런 현상이고 운동에 활력과 창의성, 운동노선의 교정효과 등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노동운동에서 정파 문제는 긍정성의 측면에서만 해석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을 한다. 긍정적 요소 못지않게 부정적 요소가 많았다는 판단을 한다. 그 힘은 현재까지의 운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정파들이 모여 그 문제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서의 논의가 아니라,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운동의 발전을 위해 지난 10년간의 정파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심스럽지만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어보았으면 한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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