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좌우 합작으로 건국됐다
    2009년 01월 27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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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 – 뉴라이트와 친북운동권 모두를 겨냥한 ‘양날의 칼’

필자는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을 찬성하는 사람이다. 그냥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다.

어떤 견해에 대한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많은 주대환 반대론자(?)들은 찬/반을 하기에 앞서서 그 주장의 내용이 무엇인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이해와 합리적 근거에 기반해서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이 비판된다면 이는 환영할 만하다. 논쟁의 발전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접했던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선입관, 편견, 오해에 기초해 있거나, 논쟁의 역사적 맥락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제대로 이해한 경우에도 하나마나한 논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이 ‘뉴라이트’와 친북운동권(NL) 세력 모두를 겨누는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는 ‘종북주의 파동’의 정치적 함의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것은 둘 다 대한민국 좌파운동에서 친북운동권세력과 확실히 구분되는 ‘비북(非北) 노선’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진보신당 내 좌파 일부가 제기했던 ‘종북주의 논란’이 민주노동당의 정치행태를 근거로 제기했던 것이라면, 주대환은 이것을 ‘현대사 인식 투쟁’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좌파 일부가 운동권 내부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며 ‘작은 싸움판’에서 논쟁을 제기했다면, 주대환은 대한민국의 주도권을 발휘하는 우파들을 대상으로 ‘큰 싸움판’에서 논쟁을 제기하는 셈이다. 

2. 주대환, ‘좌파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을 긍정하다. – ‘민주주의’와 ‘평등’

주대환은 ‘좌파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대한민국 긍정론을 설파한다. 여기서 좌파적 관점이란, NL 등의 민족주의적 관점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주대환 자신이 제시한 근거는 두 가지이다. 첫째, 민주주의 문제이다. 둘째, 평등의 문제이다.

첫째, ‘민주주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부터 북한, 중국, 소련보다 ‘민주적’이었다.(다당제, 의회제, 국민투표권 등)

이러한 주대환의 접근은 친북 운동권(NL) 세력과 확실히 대비되는 지점인 셈이다. 친북 운동권 세력들은 대한민국이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건국 당시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며 북한의 정통성을 주장한다.

둘째, ‘평등’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건국할 때부터 북한보다 ‘평등’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조봉암이 주도한 토지개혁이다. 평등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긍정론을 주장하는 주대환의 주장은 친북세력과의 차별화인 동시에 뉴라이트 등의 ‘우파’들의 주장과도 구분되는 접근인 셈이다.

셋째, 추가한다면 ‘국민적 상식’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국민 다수가 (문제는 많았지만) 북한 및 다른 제3세계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 대한민국이 ‘대체로’ 긍정할만한 나라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간 지식인(엘리트)들 및 운동권들은 ‘사회과학적’ 근거들을 들이대며 대한민국의 부족한 점을 주로 강조해왔다. 그러나 민중(=국민=유권자)의 상식에서 생각해볼 때, 대한민국은 대체로 긍정될만한 나라라는 점이다. 일종의 접근방법론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정치’를 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주대환의 접근방법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3. 대한민국 긍정론 – 뉴라이트와 주대환 논리의 ‘근본적’ 차이점

즉,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표현 껍데기는 뉴라이트가 말하는 대한민국 긍정론과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도 완전히 다르고, 정치적 함의는 더욱 다르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르다.

첫째, 뉴라이트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건국한 대한민국>이다. 뉴라이트는 이승만이 국부(國父)이기 때문에 심지어 민족주의자이자 우파인 김구도 적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박정희가 경제성장을 주도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조봉암이 건국한 대한민국>이다.

   
  ▲죽산 조봉암 선생. 

둘째, 내용적으로 볼 때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의 측면을 특히 주목한다는 점이다.

뉴라이트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일본, 미국, 그리고 우파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민주주의와 평등의 관점에서 조봉암이 주도했던 ‘토지개혁’과 토지개혁의 결과로 나타난 ‘평등’의 역할을 강조한다.

조봉암은 48년 제헌의회 및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이승만 집권시절에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며 토지개혁을 주도했다. 주대환의 표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토지개혁으로 인해 건국과 동시에 <아름다운 소농(小農)의 나라>로 출발했던 셈이다.

이런 논리적 접근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도 박정희 개인의 몫이 아니다. 조봉암과 토지개혁의 성과가 보다 중시된다. 토지개혁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기반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했고, 자발적으로 자녀들에 대한 교육투자에 나섰던 셈이다.

사실 이러한 주대환의 주장은 그렇게 새로운 주장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토지개혁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경제학에서도 강하게 지지되는 견해이다. 그리고 실제로 동남아시아와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한민국 수준의 토지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셋째, 대한민국의 법통과 관련해서도, 뉴라이트의 대한민국 긍정론은 <우파가 건국한 대한민국>이지만, 주대환의 대한민국은 ‘최소한’ <좌파와 우파가 함께 건국한> 대한민국이다.

좌파는 원래 전통적으로 ‘개인’에 대한 분석보다 ‘사회경제적 기반’에 대한 분석에 충실하다. ‘대통령 개인’은 이승만이 했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부터 일제시대부터 면면히 내려져오던 좌파적 전통이 이미 제도적으로 녹아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토지개혁, 평등, 보통선거권의 실시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일제시대부터 해방정국까지 이어져왔던 좌파적 전통도 크게 보면 두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PT독재론을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던 ‘공산주의적’ 전통이었으며, 다른 한 가지는 민주주의를 긍정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사민주의)의 전통이었다.

먼저, 공산주의적 전통의 경우, (80년대 NL과 PD처럼) PT독재론을 주장하며 다당제와 의회제를 부정했다. 이들이 주도해서 만든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북한은 실제로 건국될 당시에 김일성이 주도하던 세력과 박헌영이 주도하던 세력이 합쳐서 만들어졌다.

주대환은 NL세력은 김일성주의 족보를 가지고 있고, PD세력은 박헌영주의 족보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김일성주의 족보의 NL세력과 박헌영주의 족보의 PD세력이 ‘대한민국 긍정론’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반면,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사민주의/좌파)의 흐름과 자유민주주의적(우파) 흐름에 의해서 건국된 나라가 바로 남한(대한민국)이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민주주의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던 조봉암은 1946년에 ‘공산 독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신문광고에 낸 이후에 48년 제헌의회와 단독정부 수립에 과감하게 참여했다.

더 멀리 본다면,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있는 임시정부의 경우도 좌우합작운동이었던 신간회와 관련이 있다. 그렇게 볼 때, 대한민국이 우파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최소한’ <좌파/우파가 함께 만든 대한민국>이라는 주대환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4. ‘인텔리'(운동권)의 눈으로 볼 것인가? ‘민중'(국민/유권자)의 눈으로 볼 것인가?

70년대 재야운동 때도 그랬고, 80년대 이후 사회과학적 영향을 받았던 운동권들은 NL/PD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은 ‘건국 과정부터’ 문제가 많았던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에는 ‘민족주의적’ 요소가 많이 개입되었다. 이승만은 친일파를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로 삼았고 반민특위 등은 실패했다.

운동권 시절에 학습했던 이러한 내용들은 대체로 맞는 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적 상식’의 눈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져보자.

부정론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될 만큼 문제가 많은가? 즉, ‘원초적으로’ 긍정되기 어려울 만큼 문제가 많은가? 친북운동권세력이거나, 혁명주의자라면 이러한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NL과 PD세력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긍정론의 관점에서, 그것이 조봉암의 역할이건, 일제시대 좌파들의 역할이건, 이후 투쟁했던 민중들의 역할이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대체로 긍정할만한가? 즉, 부족한 점은 앞으로 보충하면서 가다듬으면 될 문제인가?

민주주의를 수용하며,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사민주의자)라면 이에 대해서 ‘네’라고 답변하는 것이 논리적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부족한 점은 앞으로 ‘정치’를 통해 극복하고 보완하면 될 일이다.

그리하여 주대환은 묻는다. 운동권의 관점, 민족주의자의 관점, 엘리트의 관점으로 대한민국을 본다면 대한민국은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대중의 관점, 좌파의 관점, 대중정당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 긍정론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라고. 

5. ‘뉴라이트’와 <제대로> 싸우기

본디 ‘대한민국 긍정론’은 뉴라이트가 담론투쟁의 차원에서 제기한 이슈이다. 이들은 친북운동권(NL)세력을 주요 논적으로 삼아, 자신들의 우파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 제기했다.

뉴라이트의 이슈에 대해 친북운동권(NL)세력은 당연히 대한민국 긍정론을 부정한다. 이들이 뉴라이트를 매도하는 것은 지극히 정치적이며,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럼 대한민국 좌파들은 어떤가? ‘종북주의’ 파동을 거치며 ‘비북(非北) 노선’을 대중적으로 천명하며 분당했고, 새로 만들어진 진보신당의 좌파 운동권들조차 대한민국 긍정론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먼저 천명했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어리석은 행위요,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논쟁의 역사적 맥락을 봤을 때도 어리석은 행위이며, 정치적으로는 더욱 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뉴라이트와의 담론투쟁에서 절대로 승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친북세력과의 차별화>가 대한민국 진보운동에서 가지는 ‘전략적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음은 정말로 안타까운 수준의 그 무엇이다.

이에 대해 특유의 운동권적이고 인텔리적인 접근방법으로 복잡한 논리적 구조를 만들어가며, <좌파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점점 ‘구름 위로 올라가는’ 현학적인 논리까지 들이대며 접근한다면, 좌파들은 뉴라이트와의 담론투쟁에서 백전 백패하게 될 것이다.

이는 종북주의 파동을 거치면서 <친북운동권(NL)세력과의 차별화>를 이룬 성과마저도 오히려 퇴색시키는 행위이다. 또한 대중적 설득력을 발휘하며 상대방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상식’과 대결하면서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는 대응인 셈이다. 

5. 소결 : ‘대한민국 긍정론’에 대한 좌파의 올바른 입장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

둘째, 대한민국은 ‘우파의 나라’가 아니라, 건국 당시부터 좌파들이 역할이 컸으며, 그 대표적인 징표가 바로 조봉암의 토지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대한민국은 좌/우 합작의 힘으로 건국된 나라이다.

셋째, 친일파 청산 여부를 핵심 기준점으로 판단하는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민주주의와 평등의 기준점으로 판단하는 좌파들은 대한민국(남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보다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민주적이었으며, ‘평등’의 측면에서도 더욱 평등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관된 관점 하에서 대한민국의 좌파들은 북한의 정통성을 긍정하는 친북운동권(NL)세력의 한국 현대사 인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좌파(진보)=친북세력=대한민국 부정세력으로 등치시키는 뉴라이트와 조중동식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넷째, 뉴라이트(우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봉암과 토지개혁>의 대한민국이며, 대한민국이 건국될 당시부터 ‘아름다운 소농의 나라’였다는 평등한 사회경제적 기반이 세계적으로 칭송받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주대환의 정치행적과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 개인적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 판단을 위해 그것은 잠시 접어두자. 순수하게 ‘대한민국 긍정론’이라는 논점에만 국한시켜 생각해보자.

뉴라이트와의 담론투쟁에서 어떤 접근이 더 논리적으로 타당하며, 정치적으로 타당하며, 국민적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각자의 판단은 다르고 모두가 존중될만한 견해이겠지만, 사실 너무나 ‘명백한’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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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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