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 밖의 그리스, 억압과 저항
        2008년 12월 26일 08:14 오전

    Print Friendly

    그리스는 낯선 나라이면서도 친밀한 나라다. 물리적 거리로는 찾아가기 쉽지 않은 하나의 지명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이야기나 그림, 만화나 영화, 철학에서 과학까지 아우르는 여러 갈래 길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아주 익숙한 배경이다. 그래서 가끔 나는 그리스를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그리스는 그리스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리스는 그리스가 아니다. 그리스 신화의 에피소드를 줄줄이 꿰고, 신들의 이름과 유래, 변모를 달달 외고, 여러 예술작품에서 그 서사가 인용되는 사례를 금세 알아챌 수 있지만 진짜 그리스, 동시대의 그리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영화 <Z> 포스터. 

    그리스가 그저 친밀한 나라, 신화와 예술의 고향으로서의 매혹적인 지명만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한 것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Z>였다. 제목 ‘Z’는 그리스어로 ‘그는 아직 살아 있다’라는 상징적 의미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그/Z’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서 망명생활을 하다 돌아온 정치인이다. 이브 몽땅이 연기한 제트는 실제로 1963년 독재정권에 의해 암살된 그리스 국회의원 그레고리오 람브라키스를 모델로 하고 있다.

    영화 <Z>는 독재적 공안정치의 추악한 모습과 이에 맞서는 이들의 양심과 고뇌, 진실을 밝히고자 할 때 맞닥뜨리고 헤쳐 나가야만 하는 고난을 정치 스릴러 장르의 긴박한 화면에 담아내면서 영화가 담고 있는 정치적 입장의 정당성뿐 아니라 서사, 영상, 음악을 두루 아우르는 영화적 완성도의 수준에 이루어낸 성취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치영화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의문사 그리고 축소 조작

    제트는 당국의 탄압과 방해 공작을 무릅쓰고 공정한 선거를 촉구하는 대중 집회에 참석했다가 정체불명의 트럭에 탄 괴한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로 축소 조작하려 하지만, 젊은 검사가 진실을 추적한 끝에 교통사고가 아니라 머리에 내려쳐진 흉기의 가격이 죽음의 원인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다.

    마침내 우익단체의 청부에 의한 살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와 관련된 고위 간부들은 암살공모 혐의로 기소된다. 이 순간, 관객들은 정의의 승리를 기꺼워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화의 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싶지만 영화는 현실만큼 냉혹하다.

    재판을 앞두고 증인들은 모두 보복을 당해 실종된다. 그리고 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바뀌고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젊은 검사마저 실종된다. 영화 끝, 현실 지속.

    그래서 <Z>는 오랫동안 그리스에서 상영금지였고, 당연히 한국에서도 상영금지였다. 그러다가 20년 세월이 지나고 군부독재를 물리친 다음인 1989년에야 비로소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고도 현실의 고통은 그리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현실의 그리스를 보게 된 이후, 더 이상 나에게 그리스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신화와 문화, 예술의 요람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그리스 영화는 늘 현재의 그리스를 비춰주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그리스가 아닌 프랑스와 알제리의 자본과 지원으로 <Z>를 만들었고, 또 다른 그리스의 거장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스스로가 자기 작품의 제작자가 되어 저예산 독립영화 방식으로 그리스를 담아낸다.

    ‘기다림의 자유’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이런 방식으로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시선을 유지하면서 <안개 속의 풍경>, <율리시즈의 시선>, <영원과 하루>를 비롯한 많은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2004년 한국에 온 앙겔로플로스 감독은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 모두에게 힘든 길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 확보하는 것은 바로 ‘기다림의 자유’라고 했다.

    가령 <영원과 하루>를 보자. 그리스의 유명한 시인으로 존경받는 알렉산더는 중병에 걸려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노시인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병원에 머무르는 대신 자신에게 남겨진 날이 비록 하루가 될지라도 평생 찾고자했던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시어들을 찾는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영화 <영원과 하루> 포스터. 

    죽음 앞에 선 노시인이 절박한 마음으로 떠나려는 길은 생의 진실을 찾는 마지막 구도의 길이다.

    이 길은 떠나는 시간은 어쩌면 한 인간의 마지막 하루,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오늘이기에 초조하고 비장하다.

    노시인이 책임져야 할 유일한 생명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벗해온 개 한 마리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피붙이인 딸도 사위도 개를 맡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현실, 노시인이 남긴 재산으로 더 풍요로워질 자신들의 삶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출발은 자꾸 늦춰지고, 떠난 자리로 노시인을 되돌린다. 떠나고자 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알렉산더는 연거푸 떠나려던 자리로 되돌아오면서 그때마다 다시 온 생애를 겪어야 한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의 자취, 아쉬웠던 자리를 돌이켜보고 맺지 못한 시를 완성할 시어를 구하러 가는 길은 그러면서 조국 그리스와 발칸 반도의 고통받는 역사를 두루 짚어보는 어마어마한 길이 된다.

    가까스로 떠난 여정에서 노시인의 앞을 막아선 것은 병든 어머니, 아내가 죽은 이후 외로운 노년을 함께한 개, 아직 젊은 날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딸처럼 일생을 통해 가까웠던 존재들, 어떤 현실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던 갇힌 굴레의 인연들이 아니다.

    그의 곁에는 개 한 마리만이

    우연히 길에서 맞닥뜨린 알바니아 소년, 그리스뿐 아니라 발칸 반도의 정치적 현실을 어린 나이에 이미 온몸으로 겪어낸 낯선 어린아이다. 이 자그마한 소년이 부르는 노래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떨치려는 안간힘이다.

    목숨 걸고 국경을 넘어야했던 지독한 경험에서, 그렇게 넘어온 나라에서조차 쫓겨 다니다 벗을 잃고 오열하며 흘리는 눈물에서, 그러다 만난 어느 노인의 회한을 향해 내미는 작은 손에서 마침내 알렉산더는 평생 찾아 헤매던 궁극의 시어들을 찾게 된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모든 감독은 각자 하나의 스틸, 초창기에 처음 본 이미지로부터 빚어지는 하나의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자신의 영화에서는 그것이 안개나 비처럼 슬프고 고립된 풍경으로 나타나지만 자신은 그 속에서 역설적으로 빛을 발견하며, 그것이 바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발칸의 풍경이요, 내면의 풍경이라는 것이다.

    <영원과 하루>는 오늘을 사는 동안 미처 다 살아내지 못한 것들, 내일로 미루어두었던 것들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되고야 만다는 가슴 저미는 진실을 겪게 하는 영화다. 하루는 짧고 노시인은 조급하지만 영화는 아주 느리게 나아간다.

    감독 자신이 스스로의 문체라고 표현한 롱테이크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왜냐하면 매 순간을 온전히 겪지 않고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단 한 마디의 시어도 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을 받아들인 알렉산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노시인은 마침내 평생 자신을 기다렸으나 절절한 외로움을 가슴에 담고 세상을 떠났던 젊은 날의 아내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제야, 너무 늦어버린 이제야 묻는다.

    영원하고도 하루

    ‘내일이란 뭐지?’ 여전히 두근두근한 생명의 약동을 지닌 채 지금은 곁에 없는 그 아내는 노시인이 살고 있던 안개 뿌옇게 끼고 추레한 해변이 아니라 햇살 눈부신 바닷가 모래밭에서 환한 웃음을 띠고 돌아보며 대답해 준다.

    그러나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는 음악소리, 파도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젊은 아내에게 노인이 된 알렉산더가 다시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내일이란 뭐냐고?’ 맨발로 모래밭 위를 춤추듯 멀어지는 아내의 목소리가 울린다. ‘영원하고도 하루’.

    앙겔로플로스는 시간은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맛을 보기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그래서 긴 호흡으로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한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단 하루조차 영원하고도 하루를 건너뛴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역사를 경험하도록 한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오늘의 그리스와, 그리스에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얼핏 엿보고도 여전히 낯선 나라 그리스에서는 지금도 폭력과 억압이 지독하고, 저항의 몸짓과 목소리도 처절하다. 지난 12월 6일, 우파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에서 한 소년이 살해당했다.

    겨우 열여섯 살,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폴로스라는 이름의 소년이 정조준으로 겨누어진 경찰의 총에 의해 죽음을 당한 이후 그리스는 한 달 가까이 전국적으로 거센 반정부 시위로 뜨겁다. 낯설지 않은 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익숙함은 차라리 겪고 싶지 않은 동질감이다.

    그리스에서 벌어진 지금의 이 사건은 과거 이 나라에서 벌어졌던 여러 젊은 죽음을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제발 그런 일이 다시는 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않지만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 나라 현실에서 또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인 것만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밝히던 어린 소녀들, 물대포에 맞고 경찰에게 짖밟혀 피흘리던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억지로 눌러버린 현실 정치와 공권력이 날로 더 가혹해져가고 있으니 우리의 내일은 불안하기만 하다. 부디, 정말 부디 2009년이 참혹하지 않기를, 그리스의 현실이 우리의 내일이 되지 않기를.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