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뿌리 조직가의 새로운 정치언어
    한국 운동권 진보파 정치관 비판도
        2008년 12월 23일 03: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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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랬다고 한다. “from nobody to celebrated”(‘아무나’에서 저명인사-대통령-까지) 

    진보신당 녹색정치포럼 간사인 김현우가 진보신당 당 대표 경선에 나간다고 부산에서 소문을 좀 내달란다. 당 대표 선거를 계기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당’에 대해 뭔가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읽힌다.

    김현우 당 대표 출마와 ‘아무나’

    여기 저기 경선에 나서겠다고 얘기를 뿌리고 다닌 모양이다. 지난 18일 마포 <민중의 집> 후원 주점에서 만난 어떤 여성 당원이 "진짜 대표로 출마하는 거야? 대표 출마는 아무나 해도 돼?"라고 묻기도 한다. 옆에 앉아 듣던 나도 그녀의 얘기가 거슬렸는데 김현우도 명토박아 얘기한다. 대표는 당권을 가진 당원이면 아무나 출마할 수 있기도 하고, 또 김현우가 ‘아무나’냐고.

    마침 19일 ‘(사)노회찬 마들연구소‘에서 최장집 교수의 ‘지금 한국에서 왜 오바마인가?-오바마 등장이 한국정치에 주는 의미’라는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오바마는 어떻게 ‘아무나’를 넘어섰는지? 오바마를 통해 ‘정치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를 학습할 기회인 셈이었다. 

       
      ▲ 세미나 장면 (사진=마들연구소)

    사실 오바마 당선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 역동적 드라마를 보는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9년간 정치학을 공부했던 최장집 교수의 감회는 남달랐던 것 같다.

    민주화 이후 20년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MB체제 하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목도하고 있는 우리 한국의 ‘운동권 진보파’는 이번 오바마 당선을 통해 미국의 정당체제와 오바마의 리더십에 대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오바마 리더십과 한국정치

    최교수가 미국 정당체제와 오바마 리더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째, 대한민국이 민주화 이후 20년간 유럽보다는 미국식 사회에 더 근접해 있다는 한국 정치의 조건 때문이고, 둘째, 한국 정당체제의 취약성으로 인해 저성장한 민주주의가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을 통해 역동성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데 착안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새로운 이야기였다. 흔히 정당체제라고 하면 유럽식 계급정당을 모델로 생각한 나로서는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제가 계급정당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아무런 유의미성도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미국식 정당정치에 대한 이해는 거의 백지수준에 가까웠다.

    물론 국민경선제라는 미국식 선거제도가 유행처럼 번진 덕분에 오픈프라이머리나 코커스 등을 접할 기회는 있었지만 민주당은 약간 말랑말랑한 공화당이고 공화당은 좀 보수적 민주당이라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이른바 미국의 시민사회와 민주당 간의 관계가 상당히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오바마의 지역 기반인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 흑인 공동체는 미국내 풀뿌리 사회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인데 오바마가 민주당의 풀뿌리(grass root)조직의 조직가(community organizer)로서 활동을 해 왔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이긴 까닭

    한국과 같이 시민운동이 정당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순수 시민운동’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려고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미국의 시민운동은 정당과 능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은 비록 그 상층 지도부가 공화당의 지도부와 같이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지만 그 조직의 말단 하부는 오바마의 조직가 시절처럼 비제도권의 사회 저변층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오바마의 경우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힐러리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균열을 활용해 그동안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했던 흑인과 라티노 등 소외 계층을 폭발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최교수의 ‘운동권 진보파’들이 가진 반정치적 정치관에 대한 비판은 신랄했다. “한국의 운동권 진보파들은 민주주의가 표를 모으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외면했다”며 운동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정작 좋은 정당을 만드는 문제에 무관심한 결과 오늘날 MB체제의 등장과 더불어 그간의 성과조차 한방에 날려버릴 위기를 맞게 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 세미나 장면 (사진=마들연구소)

    촛불집회에 대해서도 최 교수는 "정당에 대한 적대적 정서로 인해 상승작용을 하지 못하고 제로섬에 그친 것도 운동권 진보파의 반정치적 정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지난 20년간 민주정부를 책임져 왔던 ‘운동권 진보파’의 비현실적인 관념성으로 말미암아 정치라는 도구를 사회의 저변층과 긴밀히 결합시키지 않았고, 다만 이들을 민주 대 반민주나, 신자유주의 반대와 같은 거대 담론으로 동원하려고만 한 탓에 지지를 다 까먹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 진보파의 반정치적 정치관

    사실 MB 등장 이후 숭례문이 불타 무너지듯 민주화 이후 20년간 쌓아 온 민주주의가 한순간 잿더미로 흩어져 날리고 있다. 누구의 말대로 고문만 빼놓고 권위주의 시절로 모두 돌아가고 있는데도 미쳐 날뛰는 정치적 반동을 막을 자가 없다. 국회는 입법 전쟁터로 변했고, 대의제는 휴지가 되어 버렸다. 믿을만한 야당도 없다 보니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지금 상황인 것이다.

    최교수의 관찰로는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유럽과 같은 대안정당으로 성장하고 계급정당체제가 확립되길 기다리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힘든 일”로 보인다. 그러니 오히려 급속도로 미국과 닮아 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미국식 정치 모델을 긍정하며 그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민주당의 풀뿌리 조직과 지역 공동체운동의 결합이 우리가 배워야할 한 측면이라면 다른 하나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으로서 오바마에 관한 얘기였다.

    이 역시 한국의 ‘운동권 진보파’와 비교되는 얘기였다. 예의 반정치적 정치관이 문제였다. 오바마의 경우 공동체 조직가로 활동하며 거의 신앙에 가까운 자기 결단으로 ‘정치에 입문’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오바마는 자신의 여러 정신적 스승들 중 최초의 흑인 시장이었던 해롤드 와싱턴처럼 시장이 되면 지역공동체에서 제기되는 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시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보다 현실적인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이 또한 쉽지 않았다-진출함으로써 오늘날 미국 대통령에 이르는 첫 걸음을 떼었는데 이처럼 오바마의 정치적 리더십의 근저에는 ‘나는 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되나?’ 라는 문제를 내면적 성찰과 미국사회의 최저층의 소외집단의 공동체인 흑인주거지에서 조직자로서 경험에 기초해 내린 자기결단이고 결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운동권 진보파가 쉽게 타협하는 이유

    이에 비해 지난 20년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걸어 온 한국의 ’운동권 진보파‘의 경우 ‘자신의 내적 결단/이념의 성장 과정 없이 운동 너머 정치로 곧바로 투신함으로써 오히려 너무 쉽게 현실과 타협하고 현상 유지의 공조자로 역할 한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오바마는 또 다른 정신적 스승 사울 알린스키로부터 수사적인 급진파가 아닌 ‘현실주의적 진보파’의 길을 사숙했는데 그가 좋아하는 개념은 알린스키의 ‘자기이익(self-interest)’이었다. 오바마는 자서전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이슈, 행동, 권력, 자기이익, 나는 이런 개념들을 좋아한다. 이들 말들은 어떤 현실성, 감상적이 되지 않는 것, 종교가 아닌 정치를 주문했다”고 쓰고 있다.

    오바마는 이같은 방법론을 현대적인 정치적 메시지로 발전시켰고, 그의 감동적인 대중연설 화법은 바로 이 ‘자기이익’으로부터 출발해 대중과 동화되고 이것을 공익적 메시지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정치언어를 구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바마는 기적을 만들어낸 정치인이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오바마는 해냈다. 오바마의 기적을 통해 최장집 교수는 “현상을 수동적으로 설명하는 정치학에서 실천, 행위의 학문으로서 정치학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데 다시한번 자신감을 가진 듯했고, 정치는 그 결과가 열려 있는 분야이기에 매력적이라며, 정치학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보람을 이야기했다.

    나도 김현우에게 같은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미국 정당의 위계 구조는 진보신당의 그것보다 훨씬 경직되어 ‘노바디가 섬바디’라도 될 가능성은 층층시하 숱한 장벽들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오바마의 예와 같이 깊은 자기 성찰과 자기 결단을 통해 정치로 나아가고 철두철미 현실(real)을 추구하며 구체적인 정치언어를 찾아나갈 때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고.

    * 최장집 교수 강의안 전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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