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치하, 고졸은 죽어야 하나?
        2008년 12월 22일 1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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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지자체가 1,208억 원의 예산을 들여 1만 840명의 청년인턴을 채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경제위기에 대응한 실업대책일 것이다. 그런데 자격이 이상하다. 대졸자(전문대졸 포함) 이상이란다. 국무총리실도 최근 인턴 4명의 채용 공고를 내면서 대졸자로 자격을 제한했다.

    학력차별 없애야 할 국가가

    고졸은 청년 인턴도 못하나? 국무총리실 채용공고를 보면 업무내용이 ‘비서, 문서관리, 행사업무 등 지원’이라고 되어있다. 이런 일을 하는 데 고등교육이 꼭 필요하단 말인가?

       
      

    학력차별, 학력인플레는 우리 국가의 병이다. 학력차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지난 여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학력위조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학력위조를 해야만 했다. 우리 사회의 학력지상주의가 얼마나 지독한지 여지없이 폭로된 사건이었다.

    이런 사회에선 국가만이라도 학력차별 철폐에 앞장서야 한다. 학력차별은 학력집착증을 낳고, 그것은 입시교육과 사교육비 사태로 발전한다. 또 개인의 능력이 학력이란 잣대로 구분되는 비효율성 때문에 사회 선진화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공공 부문부터라도 학력·학벌 차별을 없애는 인사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정부가 학력차별 풍조를 고취하고 있다. 황당한 건 공무원 응시자격에는 학력 제한이 없다는 거다. 정식 공무원에도 없는 자격을 인턴에 요구하는 게 말이 되나? 정부가 시계를 과거로 돌리고 있다.

    경제위기는 취약계층부터 공격한다.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집 잃고, 일자리 잃는 건 약자들이지 강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위기 대책은 취약계층 지원대책 중심이어야 한다.

    거꾸로 된 경제위기 대책

    그런데 정부대책은 엉뚱하게 부자·강자·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재벌을 위한 탈규제, 강부자를 위한 감세, 토건자본을 위한 토목공사 등이 현 정부 정책의 핵심이다. 약자들이 설 곳은 어디인가?

    이번 청년인턴 문제도 그렇다. 대졸자는 그 밑의 학력에 비해 그나마 기득권 집단이다. 정부 차원에서 나오는 청년실업 대책이라면 당연히 대졸 이하 국민도 포용하거나, 혹은 우대하는 것이었어야 했다.

    기업이라면 약자를 최대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취업자도 제한하고, 멀쩡히 잘 다니던 사람도 최대한 자르면 기업의 비용은 극소화된다. 그러면 현금 흐름이 좋아진다. 이런 기업을 가리켜 주식시장은 ‘우량한 기업’이라고 한다. 경영자는 주주들의 찬사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이런 식으로만 운영되어선 안 된다. 모든 기업이 이렇게 운영되면 각 기업은 일시적으로 우량해질지 모르나 국민경제가 가난해진다. 그것은 결국 기업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기업도 공동체적 관점에서의 경영이 필요하다.

    하물며 기업이 그런데 국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기업은 사람을 자를 수 있지만 국가는 국민을 자를 수 없다. 기업은 직원과 비직원 사이의 통합이 필요 없다. 자기 직원만 챙기면 그만이다. 국가는 국민통합이 절대적인 과제다. 국민통합이 무너지면 국가도 무너진다.

    차별과 양극화를 없애야

    국민통합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차별과 양극화다. 강자와 약자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이 생기면 사회의 근간이 흔들린다. 경제위기는 약자를 공격함으로써 강자와 약자 사이의 골을 깊게 만든다. 이것은 차별과 양극화를 심화,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

    기업 같으면 부담스러운 인력을 감축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는 무조건 국민을 안고 가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위기로 추락하는 약자들을 받쳐주는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기존 공무원 조건에도 없는 대졸자격을 제시함으로써 약자들을 배제하고 있다.

    기업의 자유라고는 해도, 어느 기업이 고학력 고학벌 직원들만 채용한다면 사회적 비난을 받을 일이다. 국가는 절대로 이래선 안 된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고학벌 위주 인사가 더 심화되더니, 이번엔 청년인턴에 대졸자 자격제한까지 등장했다.

    그러면서 고학력, 고학벌이 되는 비용은 점점 더 키우고 있다.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키우고, 경쟁교육으로 사교육비도 키운다. 부잣집 자식들만 고학력, 고학벌이 될 조건을 만들면서 학력주의, 학벌주의를 고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가 일을 더 키운다

    이것은 차별구조의 강화다. 경제위기 실업대책이 구조적 위기를 더 키우고 있다. 도대체 사무인턴에 학력제한을 두겠다는 사고방식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황당하기만 하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줄이더니, 비정규직 인턴 자리 만들면서 거기에 학력차별을 끼워 넣는 형국이다.

    학력경쟁을 부추기는 일제고사에 협조하지 않은 교사가 쫓겨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주에 ‘촛불집회 시즌2’라고 불릴 정도로 큰 항의행사가 있었고, 이번 주 화요일에도 행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청년인턴에 이르기까지 학력경쟁, 학력차별을 강화하는 정책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민생파탄과 사회양극화로 연결된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강력한 고용지원과 복지혜택이 강구돼야 할 때다. 그래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지금처럼 강자 위주로 가면 경제위기가 국가위기로 발전되는 건 시간 문제다. 정부가 일을 더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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