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기' 건들면 민주주의고 뭐고 없다
        2008년 12월 22일 08: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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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야 관심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겠지만, 노르웨이 법조계와 정치계의 역사에서 요즘 한 가지 획기적인 에피소드가 완결된 일이 있었습니다.

    아르네 트레홀트(Arne Treholt – http://no.wikipedia.org/wiki/Arne_Treholt)의 항소를, 국가 소송 재심위원회에서 기각을 하여 재심을 거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트레홀트가 66세의 노인인지라 아마도 이제는 명예 복원이 전혀 안될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생전에 말씀입니다.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

       
      ▲ 젊은 시절의 아르네 트레홀트

    이 추리소설 같은 스토리의 관계자들이 다 죽고나면 진리가 또 다르게 밝혀질지도 모르죠. 대개는 이 세상에서는 이해 당사자들이 죽지 않고서는 ‘과거 청산’이 이루어지는 법이 없으니까요. 참, 예컨대 친일 문제와 같은 한국 지배계급의 일대 치부들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대대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이유를 잘 아시지요?

    ‘트레홀트 사건’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별로 연구가 없었던 걸로 알지만,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 시사해주는 바도 있고 해서 소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트레홀트란 사람이 원래 노르웨이 노동당의 아주 전도가 촉망되는 젊은 열성자이었으며 당내에서 또 ‘친소적인 좌파’로 분류됐어요. 열성자하다가 간부가 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해양국제법부 부장관, 외무부 대변인 등 국가적 요직도 차지한 바 있었습니다.

    해양국제법부에 있었을 때 그가 소련과의 해역 구획 협상의 책임자였는데, 그 협상 결과에 대해서 특히 우익 쪽에서 "국익을 해쳤다"고 보는 시각이 아주 강했어요. 다르게 해석하면 노르웨이와 소련 간의 갈등적 요소들을 적어도 임시적으로 해결해주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게 결국 시각의 문제입니다.

    트레홀트가 만들어놓은 협정은 소련쪽과 노르웨이쪽이 경제적으로 공동 이용할 수 있는 ‘회색 지대’를 바렌츠해에 설정한 것인데, 노르웨이 우파 입장에서 보면 "우리 고유의 해역에 대한 우리의 배타적인 지배권을 잠정적으로 포기한 듯했다"는 것입니다.

    뭐, "독도 때문에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영토 민족주의자들은 한국에만 있는 것인가요? 이 부류는 노르웨이에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하여간 트레홀트가 소련에 상당히 양보적인 입장을 취하여 우파의 비난을 받자 우파 분자들이 지배하는 경찰청의 정치 감시부에서 그를 주목하여 정기적으로 감시하기 시작했어요.

    세계적 재판

    아니나 다를까 몇 년 간 감시를 잘 하다 보니 그가 주오슬로 소련 대사관의 안보계 주재원 (쉽게 이야기하면 노르웨이에서 소련 KGB를 대표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까지도요.

    1984년, 빈에서 두 사람이 길거리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걸 유모차에 숨겨진 몰카로 찍어놓자마자 트레홀트가 귀국한 뒤에 바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 1984년. 빈 거리를 걷고 있는 트레홀트(왼쪽)와 소련 대사관의 안보계 주재원

    그에 대한 재판은 한 때에 ‘세계적 센세이션’이었어요. 그 때에 정권이 우파의 손에 있었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재판부는 거의 전부 다 우파당 당원이나 우파적 경향의 법조인들로 구성됐어요. 우파 언론들은 트레홀트를 판결 나오기 전에도 이미 ‘거물 간첩’이라고 다 재판해놓았구요.

    국방부 장관이 언론에 나아가서 "이 사람이 소련에 누설한 비밀들은 몇년 간의 국방부 예산보다 더 많은 손실을 낳았다"느니 "노르웨이 북방 방어 계획과 노르웨이 남부에 대한 침공 방지 계획 전부를 다 누설했다"느니 트레홀트를 "국적(國敵) 제1호"로 만들었습니다.

    감시 받는 정치인에게 그 엄청난 국가 비밀들을 누가 어떻게 발설했는지, 그리고 그 비밀에 대한 대가라고 재판부가 주장하는 트레홀트 가택 보유의 외화가 왜 고작 5만 불 정도였는지, 조국을 이렇게 열심히 판 사람이 왜 백만장자가 안 됐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고, 비밀 누설의 확증(물증)도 없었어요.

    "나는 간첩이 아니다"

    결과는? 트레홀트에게 20년형이 언도됐습니다. 여자를 강간하여 잔혹하게 살인한 자에게도 보통 8~10년 이상 언도되지 않는 노르웨이 치고는 이는 거의 ‘사형’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나중에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뒤에 트레홀트가 8년 복역한 후 사면되고, 그리스로 이민갔습니다.

    그가 한때에 그리스 사회주의자들의 반독재 투쟁을 도운 일이 있었는데, 결국 그들이 그에게 은혜를 갚아 그리스에서 그 생활의 기반을 마련해주었어요. 그가 우파의 살인 위협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고 하더랍니다. 부인, 아들에게 다 이혼, 절교 선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국가 소송 재심위원회에 항소를 하여 제발 명예를 회복시켜달라고 애원했는데, 위원회가 그냥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트레홀트와 친했던 KGB공작원도 "필요하면 오슬로에 와서 지난 번의 일의 진상을 다 밝히겠다"고 제안했는데, 노르웨이 국가에서 이를 묵살했어요.

    트레홀트 이야기로는, 그가 소련 간첩이 아니고 노르웨이를 미국과 소련 사이의 ‘등거리 관계’를 유지하는 ‘준중립국’으로 만들려는 사람이었고, 그걸 목적으로 해서 소련쪽 요인들을 가끔 만나 요담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소련 측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일부의 내부적 이야기도 했지만, 군사 비밀을 제대로 알지도 누설시키지도 않았다는 입장이고, 그러한 의미에서는 ‘개인적 외교’를 했으며, 일부 친소적 입장에 있었으면 있었지 간첩이 아니었답니다. 구 KGB측의 설명도 대체로 이 정도입니다.

    노르웨이 좌파는 대체로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국방부와 경찰청 간부층의 입장이 아주 공고하고 우파쪽은 "비국민이면 비국민이다"라고 하며 다 일축합니다. 글쎄, 트레홀트가 KGB사람들과 뭔 이야기를 했는지 저야 알 수 없지만 상황적으로 봤을 때에 일리가 있는 해명인 듯합니다.

    친미 일변도의 지배층

    정말 노르웨이 방어 계획을 팔았으면 거부가 됐을 터인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죠. 그리고 KGB가 권력을 쥔 나라와 외교를 하자면 KGB 사람 말고 누구와 요담하겠어요?

       
      ▲ 아르네 트레홀트

    문제는 하나입니다. 친미 일변도의 노르웨이 지배층 상당 부분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개인적 친소 외교’는 이미 ‘비국민 행위’이고, 그들 입장에서는 트레홀트를 마녀재판할 의미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중립주의적 좌파들이 다음부터 몸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모범 케이스 하나를 만든 셈이죠.

    그러니까 노르웨이는 참 여러 모로 훌륭한 민주, 법치 국가인데 한 가지 이해해야 합니다. 국기(國基), 즉 미국이냐 소련이냐, 나토냐 중립이냐, 그리고 영토 외교와 같은 핵심적 문제로 들어가면 민주주의고 뭐고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치의 탈을 쓰고 주도적인 지배층 분파가 비주류들을 얼마든지 억누르고 탄압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영토 문제와 대미 관계 문제는 부르주아 국가 운영의 기본입니다. 그걸 비주류 분자들이 함부러 건드리면 아주 얻어맞게 돼 있어요. 사민주의적 낙원에서도 말씀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같으면 예컨대 상부의 지시 없이 해외에서 북한 쪽 요원들을 자주 만나 ‘통일 외교’를 개인적으로 펼치는 지배계급의 ‘비주류’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노르웨이보다 그 처리가 좀 가혹했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은 같습니다.

    북한에 아무런 기밀을 노설해주지 않아도 ‘거물 간첩’ 타이틀을 독차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핵심적 부분에 있어서는 한국과 같은 ‘준민주주의 국가’도 노르웨이와 같은 모범생도 결국 같은 것이죠. 부르주아 국가의 민주, 법치의 태생적 한계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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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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