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노무현’ 바스케스, 그 후임은?
        2008년 12월 22일 08: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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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제1차 중남미-카리브 회의가 폐막됐다.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하고 (게다가 쿠바를 포함해서) 아메리카 대륙 각국 대표들이 모두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계사의 또 다른 거대한 매듭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회의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지난 몇 년간의 중남미 좌파 집권 붐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와 브라질 룰라 정부로 시작된 좌파 집권 열풍은 2004년 우루과이 대선 결과로 점점 더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냈었다. ‘확대전선’(FA)의 타바레 바스케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이 나라 역사상 최초의 좌파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지금, 브라질, 칠레 등과 마찬가지로, 우루과이도 이제 다시 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놓고 정계가 요동치고 있다. 

       
      ▲ 타바레 바스케스 우루과이 대통령

    너무나 노무현스러운 바스케스 

    바스케스 정부의 성적을 보면, 자꾸 노무현 정부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바스케스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긴급 계획’이란 복지 확대 정책을 펼쳤다. 당시 최악의 외환위기를 겪은 지 얼마 안 되었던 우루과이 사회를 빈사 상태에서 구하기 위한 조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후 바스케스 정부는 브라질 룰라 정부보다 더 충실하게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따랐다. 비록 이전의 우파 정부들에 비해서는 복지 예산을 늘렸지만, 그 수준은 결코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 바스케스 취임 이후 빈부격차가 오히려 더 늘어났다는 조사 결과들이 나왔고, 확대전선을 조직적으로 지지해왔던 우루과이 최대 노총(PIT-CNT)이 정부에 맞서 총파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룰라 정부는 그나마 미국의 FTAA(미주자유무역지대, 즉 NAFTA를 남미까지 확대하자는 것) 제안 거부, 중남미 통합 등 대외 정책 측면에서는 좀 다른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바스케스 정부는 이 영역에서도 실망스러운 행보를 계속했다.

    미국과의 FTA를 적극 추진한 것이다. 비록 여당 확대전선 내 좌파의 반발 때문에 협정 체결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바스케스 정부의 유일한 인상적 업적은 과거 군부독재 시기에 벌어진 반인권 범죄에 대한 과거사 청산 작업이었다. 경제사회 영역에서는 양극화를 심화시켰지만 민주화 측면에서는 그래도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는 점 ― 이것 역시 노무현 정부와 참 많이 닮은 대목이다.

    경제 위기 속에 폭발한 좌파 내부의 노선 투쟁

    하지만 바스케스 대통령 개인의 인기는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서 여당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 중임 제한을 풀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스케스 대통령은, 룰라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대선 출마를 위한 개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 표명과 함께 확대전선 안에서는 곧바로 대선 후보 경쟁이 본격화됐고 이와 함께 그간 잠잠하던 노선 투쟁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게다가 낙태 법안 통과를 둘러싸고 바스케스 대통령이 탈당을 선언하는 돌출 행동을 해서 정국이 더욱 복잡해진 상태다.

    지난 11월 12일에 우루과이 상원은 낙태 처벌을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상하 양원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킨 주역은 바로 여당인 확대전선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은 낙태를 용인할 수 없다며 거부권을 행사했고 그러고 나서 탈당을 선언한 것이다. 대통령의 탈당은 확대전선 내의 차기 대권 경쟁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그리고 있다.

    확대전선은 이미 12월 14일 대의원대회에서 호세 무히카 상원의원(별칭은 ‘페페’)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확대전선은 하나의 정당이면서 또한 정당들의 연합이다. 확대전선 안에 우루과이 사회당이 속해 있고 우루과이 공산당이 속해 있는 식이다.

    심지어는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교민주당도 속해 있다. 우리에게는 굉장히 낯설지만, 남유럽과 중남미에서는 익숙한 정치조직 형태다.

    이번에 대선 후보로 뽑힌 무히카 의원은 확대전선 내 최대 조직인 ‘민중참여운동’ 소속이다. 민중참여운동은 1970년대에 도시 게릴라 운동을 벌이던 유명한 ‘투파마로스 민족해방전선’이 민주화 이후 합법정당으로 변신한 조직이다.

    무히카 의원도 게릴라 출신으로, 군부독재정권 시절 14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여당 안에서도 바스케스 정부 노선을 비판하는 좌파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무히카 의원의 대선 후보 선출을 우루과이 좌파가 전 지구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보다 선명한 입장으로 선회하는 계기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확대전선은 내년 6월 말 대선 후보 경선을 한 차례 더 갖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무히카 의원이 공식 대선 후보이지만, 7개월 뒤에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가장 강력한 당 내 도전자는 다닐로 아스토리 전 경제장관이다. 아스토리는 바스케스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기조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리고 바스케스 현 대통령이 음으로 양으로 지지, 지원하고 있는 차기 대권 주자다.

    즉, 무히카와 아스토리의 경합은 우루과이 좌파 내부의 노선 투쟁이기도 하다. 세계 자본주의의 요동은 이래저래 모든 나라의 좌파 정치를 격동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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