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본색-폭군탄생?
        2008년 12월 19일 03: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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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이 상임위 소속 야당 의원들의 출입도 막은 채 일방 처리한 한미FTA 비준안 처리는 국회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보수언론들은 공사판에나 등장할 만한 해머와 속칭 ‘빠루’까지 등장했다며 여야의 난투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의 ‘전쟁선포’ 발언 이후 벌어진 ‘난장판 국회’의 뒷배경에 청와대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나라당 위원들이 빠져 나간 통외통위 회의실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법안 상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오늘)

    과반수 의석을 장악한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편법으로 단독 상정한 것은 청와대의 허수아비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한나라당 통외통위 의원들을 새벽부터 불러모아 18일 사태를 주도한 박진 통외통위 위원장은 한미FTA 비준안의 심각성을 부정하지 못하며 지난달까지만해도 "합의가 안 돼도 일방처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MB 오더-홍준표 ‘전쟁선포’-한나라는 ‘전광석화’

    그런 박 위원장이 왜 태도가 확 바뀌어 ‘MB 똘마니’ 노릇을 하는 것일까?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5일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의 "이념 법안이 아닌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법이므로 일괄처리돼야 한다"는 지시가 떨어진 후 홍준표 원내대표는 ‘전쟁선포’ 발언을 했고 이같은 일련의 상황이 벌어졌다. 박 대표는 중간보스, 홍 원내대표는 행동대장 격이다.

    실제 박 대표는 이 대통령의 오더(order) 이후 ‘전광석화’, ‘질풍노도’, ‘전투력’, ‘돌격내각’ 등의 ‘MB식 화법’을 쓰기 시작했고 대운하와 관련해서는 "전국토가 거대한 공사가 돼야"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등의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더 나아가 그는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한 민노당 의원들을 끌어낸 의원들을 치하하는 한편, 특히 여성의원들에겐 ‘개선장군’이라는 칭호까지 붙여, 용어의 중세 회귀 현상까지 보여줬다.

    홍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 18일 상황에 대해 "오늘은 워밍업"에 불과하다는 발언까지 내뱉는 등 돌격대장으로 자처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명박 사장님’의 직원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폭군정치의 서막이다.

    김수행 교수는 "폭군정치도 못되는, 평가 내릴 게 없을 만큼 무식한 정부"라고 평가절하했고 손호철 교수는 "개인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냉전적 한국정치 구도와 한나라당 성향, 노가다 CEO 리더십 속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당선 1년, MB에겐 태클이 없다

    19일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됐다. 폭군이 권좌를 잡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실력과 능력에 관계없이’ ‘말 잘 듣는 실용인사’를 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태클을 걸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해 소망교회에서 절친해진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으로 발탁해 ‘고(려대)-소(망교회)-영(남)’과 연기자 강부자씨를 울린 ‘강(남)부자’ 내각을 탄생시켰다. 전국에 ‘오륀지’ 열풍을 만들어낸 그녀는 전두환씨가 80년 광주 5.18학살을 자행한 뒤 권좌에 앉을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고소영과 강부자 내각은 ‘불법 농지매입’ ‘논문 표절’ ‘환투기’ 등 이 대통령이 후보시절 전과 14범 논란과 비슷하게 ‘불법성’ 논란이 첨예하게 이어졌었다.

    이런 이들에게 ‘조중동문’과 경제신문들은 ‘집권초기 청와대를 흔들어선 안된다’며 이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지만 영향력이 더 비대해진 방송언론은 ‘용비어천가’를 불러주지 않았다. 보수신문들은 뉴미디어 시대 변화에 따라 ‘방송’이 필요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폭군정치’의 가장 효과적인 언론장악을 원했다. 두 세력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졌다.

    폭군정치 필수 요소, 언론+역사+당 장악

    방송권력에 대한 집착은 이명박 대통령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상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던 지난해 4월 KBS PD출신인 강동순 방송위원회 상임위원과 KBS 윤명식 심의위원은 당시 한나라당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인 유승민 의원과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우파정권을 되찾기 위해 우파 시민단체를 동원해 모니터팀 조직과 운영을 주문했을 뿐 아니라 북핵실험 등의 사안이 벌어질 때마다 <조선>, <동아>에게 기사화하도록 할 것, 연말 대선에 맞춰 박정희 다큐드라마를 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다 "이제 우리가 정권을 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 한다"는 섬뜩한 발언까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좌파와는 거리가 있는 KBS 정연주 사장에게 붉은 딱지를 붙이며 결국 해임시켰고 YTN 장악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정 사장이 해임되던 지난 8월11일 한나라당 나경원 제6정조위원장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국정원 김회선 2차장 등이 만나 ‘KBS 대책회의’를 가진 것은 ‘방송장악’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MB 지지 굳건한 축, ‘뉴라이트’

    역사왜곡 또한 폭군정치의 전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교과부의 강압에 끝까지 버텼던 금성출판사를 향해 "그 출판사는 정부가 두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대통령이 일개 출판사를 향해 던진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저급한 역사의식 논란으로 홍역을 치뤘다.

    그가 지난해 광주 망월동을 참배하면서 고 홍남순 변호사의 상석에 발을 올려놓은 사진이 논란을 일으켰었고 2005년엔 망월동에서 파안대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집권 직후 독도문제로 반일감정이 최고조에 이를 당시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의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일왕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었고 일본 총리와는 ‘한일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운운하며 독도문제에 등안시했던 사례도 있다. 또 성격과 업무가 완전히 다른 14개 과거사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해 2010년까지만 존치시키겠다는 것 또한 대통령직인수위시절부터 나왔던 방안이다.

    급기야 교과서 강제 수정 논란에서는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 탄압은 불가피했다’ ‘4.19항쟁을 4.19데모’ ‘건국절’ ‘6.15와 10.4선언은 빠지고 청계천 복원만 끼워넣기’ 등의 문제가 계속돼 왔다. 그렇다면 이같은 저급한 역사의식은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일까?

    이명박 대통령 뒤에는 열혈 지지자들인 친일반민족주의자들인 뉴라이트가 버티고 있다. 신지호 국회의원등을 배출시킨 뉴라이트는 현재 한나라당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 성노예로 희생된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해 ‘매춘부’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역사왜곡은 뉴라이트가 정계진출 후 이뤄낸 첫 작품(?)인 셈이다.

    "이명박, 박정희 아니라 전두환 모습"

    지난 9월 국방부의 ‘금서조치’와 함께 교과부에 ‘교과서 수정 요구’ 사실이 알려지자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해방공간을 거쳐 반세기가 지났지만 극우보수주의자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절치부심하면서 이런 계획을 해왔고 이 정권에서 반영하는 것 같다"며 "그것은 이 정권이 파시즘이 지배하는 체제, 파쇼로 돌아가겠다는 발상인 것 같다"고 우려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폭군행보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운하, 인터넷감시, 촛불탄압은 물론 폭압정치가 시작될 때마다 늘 등장하는 불안한 남북관계 조성, 시민사회단체들에 국가보안법 적용 등이 그것이다.

       
      ▲18일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참석한 가수 신해철씨.

    가수 신해철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폭군 정치’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박정희보다 못한 전두환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19일 밤 MBC의 대표적 토론프로그램인 <100분토론>에 패널로 참가해 "이명박 대통령께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어떤 향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전두환의 모습이지 박정희의 모습은 아니"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김수행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폭군도 아닌 ‘무식, 무능한 정치가’"라고 잘라 말했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당선 이후 이 정부가, 이 대통령이 보여준 정책들을 보면, 폭군도 못되는, 무식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무식한 걸 모르고, 그래서 더 문제가 심각하다"고 단언했다.

    또 김 교수는 "철학과 원칙이 있다면 그것을 반대하는 여론이 있더라도 밀고 나갈 수 있지만 그것도 없는 것 같다"며 "솔직히 얘기할 거리가 없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MB삽질 정치, MB개인의 문제 아냐"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이명박 개인’과 ‘이명박 지지세력’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당선 후 1년을 보면 집권 초기부터 촛불 등등으로 꼬이기 시작해서 여기에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이어 "더욱이 기본적으로 개발독재 시대의 리더십을 익힌 사람이고 거기다 ‘노가다식 CEO’인 공사판에서 시키면 무조건 십장부터 일꾼까지 다 움직이는 군대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최근 ‘속도전’이나 ‘공기단축형 건설정치’라는 말들이 나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만약 ‘박근혜였다면 일련의 문제가 안 벌어질까’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고 "개인의 문제로 정리하면 안되는 이유가 그동안 냉전적 보수세력들이 해왔던 위기의식의 발로이지, ‘이명박 개인의 문제’나, ‘박근혜로 바꾸면 될까’식의 분석은 아닌 것 같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냉전적 한국정치의 구도에서 한나라당의 멘탈리티, 그것이 혼합된 것"이라며 "오히려 이명박은 박근혜에 비해 중도에 가깝고 MB 지지율이 떨어져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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