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 사람 잡아 먹는다
    2008년 12월 18일 03: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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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일랜드 문학가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귀족, 봉건영주들의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에 의해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내쫓겨져 빈털털이로 도시로 유입된 비극을 비유한 말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양모에 대한 수요를 급증시켰고, 이는 대지주, 귀족, 봉건영주들에게 경쟁적으로 양을 사육함으로써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당시 양을 키울 수 있는 초지는 공동체의 소유였던 까닭에, 대지주와 봉건영주들은 이 초지에서 농사를 짓고 거주하던 소농민들을 경작지로부터 대대적으로 내쫒을 수밖에 없었다.

   
  ▲ ‘울타리를 친다.’는 뜻의 엔클로저 운동

1차, 2차에 걸친 ‘사유지로부터의 농민들의 대청소’를 통해 소작인과 농민들은 토지를 떠나 영국 공장도시의 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적 무산자가 창출되는 순간이었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점철된 이 운동을 두고 칼 맑스(Karl Marx)는 자본주의 본원적 축적과정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가 마련된 사건이라 일갈한 바 있다.

2008년, 한국판 엔클로저 운동

이 폭력과 비극으로 점철된 엔클로저 운동이 2008년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진행되고 있다.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그것이다. 재개발 사업은 원주민들을 살던 곳에서 내쫒으면서 건설회사, 지방정부, 금융회사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엔클로저 운동과 매우 닮아 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엔클로저 운동으로 생산된 무산자는 도시로 유입되어 노동자가 되었던 반면, 재개발 원주민들은 주택이라는 알량한 자산마저 빼앗겨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거나, 도시 안을 떠도는 유목민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즉, 엔클로저 운동이 광범위한 무산자를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역사적 진보를 가져왔으나, 재개발 사업은 생산의 진보는 고사하고 오히려 건설, 토목자본의 생명 연장과 유가증권과 같은 가공자본의 축적에 기여했을 뿐이다. 그 결과는 다 알다시피 주택거품으로 인한 인민의 고통 생산과 인류의 문화자산을 포크레인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지금의 재개발 사업은 단지 그 지역의 세입자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자본은 집을 소유하고 있는 원주민을 그 약탈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조합재개발 방식의 약탈구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약탈구조의 첫 번째 단계는 ‘새집 줄께 헌집 다오’라는 달콤한 말로 조합원에게서 인감을 받는 것에서 출발한다. 더 좋은 집에 살기를 원하는 주민들의 ‘욕망’이 비정한 ‘약탈’의 올가미에 걸리는 순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약탈의 구조를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조합원들은 재개발 추진에 따른 막대한 비용이 결국 자신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즉, 재개발 조합은 조합원의 인감으로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대출받아 각종 로비와 판공비로 무제한 지출함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은 이 비용이 ‘자비로운’ 건설사와 은행이 지출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토지보상비이다. 재개발 구역내 집값은 조합과 구청장이 선정한 감정평가사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때 집값은 시가가 아닌 공시지가 기준으로 보상되는 것이 보통이다. 조합원은 시가에 비해 턱없는 보상금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사업 후 평가(종후평가)를 통해 보상비의 20%를 깎을 수 있다.

네 번째는 건설사의 횡포이다. 건축비는 사업 후 조합원들에게 공사비의 30%(간접공사비)를 추가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이러한 규정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앞선 모든 약탈구조를 이겨낸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입주 시기 추가 분담금 청구에 분통을 머금으며 지불할 수밖에 없다.

약탈의 수순

문제의 심각성은 이 약탈구조가 법이란 이름으로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장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법이 도시재정비촉진을위한특별법(도촉법)이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정비구역이 지정되는 순간부터 구역 내 모든 집들은 거래는 물론 수리와 증개축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주민들은 원하지 않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재개발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여담이지만 도정법은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령에 근거한 일제시대의 악법 중 하나이다. 일제 초기 땅 한 평 없던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전체 농지의 50%를 국유화하고 농민의 2/3를 소작농화했다. 노후불량주택 개선을 통해 주민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도정법과 재개발 사업은 합법적인 주민 재산 약탈수단인 것이다.

   
  ▲ 동작구 흑석동 84-10번지 뉴타운 일대

그러면 이렇게 주민들에게 불리함에도 지방자치단체장은 재개발 사업추진에 적극적일까? 이는 재개발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얻는 수익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즉 지자체는 재개발 사업을 통해 재개발구역 내 골목길과 같은 공유지를 조합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에 판매되는 공유지의 규모는 통상 토지보상비의 15%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토지보상비가 1,000억 규모일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150억 정도의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돈은 지방자치단체의 특별회계로써 각종 감사로부터 자유로운 돈이라 한다.

이러한 약탈구조의 결과는 재개발 사업을 통해 주민이 다시 입주하는 재정착률 20여%가 증명하고 있다. 80%는 소중한 보금자리를 빼앗겨 도시 외곽으로 쫒겨나거나 전월세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 비극에 처하게 된다.

집을 빼앗기거나, 약탈적 대출의 희생이 되거나

문제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약탈구조가 왜 지금까지 가능했는가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왜 뉴타운과 재개발에 열광했는가이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다름 아닌 주택에 대한 투기와 주택거품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낮은 보상비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입주권을 손에 쥐는 순간 엄청난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추가 분담해야 하는 금융비용은 무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택거품 붕괴의 시대, 재개발 사업을 통한 대박을 꿈꾸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시기에 재개발을 통한 입주권 ‘프리미엄’은 없을뿐더러, 2~3억이 넘는 추가 분담금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그 근본부터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만약 집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2~3억에 달하는 금융대출을 받아 입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주하였다 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은 매월 납부해야 하는 엄청난 이자와 어느새 은행에 저당 잡혀 있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재개발을 통해 대박을 꿈꾸었던 주민들이 스스로 뉴타운 및 재개발 지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흑석동 주민들은 서울시의 뉴타운 지정을 취소해 달라며 지난주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고 한다. 주택거품 붕괴와 더불어 대박의 허상이 깨지고 있는 순간이다.

건설업자, 은행, 자치단체간 삼각동맹을 끊어내야

지금 한국 경제는 위기이다. 그 위기 시작이 무분별한 주택담보 대출과 부동산 투자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주택거품 붕괴의 시대, 인간의 주거의 권리는 차압과 저당권으로 대체되고 있을 뿐이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 고시원이라는 쪽방으로 숨어들어간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과 대책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거대한 비극을 생산한 구조는 다름 아닌 건설업자, 은행자본이며, 성과에 목말라 하는 지방자치단체 간에 이루어지는 삼각동맹이다. 이 구조 하에서 돈은 생산적인 ‘투자’로 결코 전환되지 않으며, 환대 받는 ‘재테크’와 ‘투기’와는 다르게 ‘노동’은 천대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와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이 삼각동맹의 해체 없이는 경제위기는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가 건설신화 이명박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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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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