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붙고 싶어도 붙을 데가 없다
        2008년 12월 17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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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기쁜 일도 없는 어둠 속의 제 생활에서 요즘 대경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저희 동아시아 석사 과정에서 한국을 전공하는 학생 한 명이 드디어 졸업하여 아주 근사한 졸업논문(석사학위논문)을 낸 것입니다. 

       
      ▲ 필자

    논문의 주제는 한국의 직장 내 성희롱이었는데, 저도 읽으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직 심사가 다 완료되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일단 제가 보기에는 국내 직장 성희롱 만연의 근본적 원인들(여성을 보통 약자로 만드는 직장 내 역학관계, 군 경험이 빚어내는 비하적 여성관, 실질적 예방 및 보호 장치의 미비 등등)을 아주 잘 밝혀낸 좋은 글인 듯합니다.

    내 생활 속의 대경사, 그리고 걱정

    드디어 한국학 전공자 석사 한 명을 배출했으니 보통 기쁨도 아니지만, 또 바로 그 순간에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학생이 졸업했으니 이제 취직을 알아봐주어야 하는데 (그걸 제가 해야 한다는 제 사고 방식부터 벌써 한국화된 모양입니다…) 마땅히 해볼 만한 데가 없더랍니다.

    원서 낼 곳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고, ‘한국학’과 ‘여성학’에 관련된 자기 전문성을 살리겠다는 석사학위 소유자가 딱 마땅히 갈 곳을 못찾겠어요. 노르웨이 내에서야 ‘한국’을 갖고 먹고 살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인데, 그 제자가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 가서 살 의사도 있고 하기에 한국에서 알아보려 해도 정말이지 할 게 없어 보입니다.

    인권 문제를 다룬 논문을 냈으니 기간제 공무원 한 명 뽑겠다는 국가인권위에 전화하여 "외국인도 응모 자격이 있느냐" 물어봤는데 "당연히 없다"는 게 대답이었습니다. 그 위원회든 그 어떤 다른 국가/국책 기관이든 일반 공무원직에 ‘당연히’ 국내인만을 뽑고 외국인을 위한 특수직을 특설하는 것인데, ‘외국인을 위한 특수직’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겠다는 – 그러나 교수직에 응모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박사 학위가 아직 없는 – 외국인은 한국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결국 두 가지, 기업체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면 영어 시장에 자신을 파는 것 뿐입니다.

    희귀한 한국의 영어시장

    그 영어 시장이란 희귀한 곳입니다. 얼굴만 하얗게 생겼으면 노르웨이 사람이라 해도 대환영입니다(뭐, 사실 노르웨이인들의 영어 실력은 국내에서 準원어민으로 통할 만도 하지요..). 그런데 얼굴은 까맣게 생겼으면 아무리 토박이 뉴욕식 영어를 구사해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데가 많고요.

       
      ▲ 2006년 SBS에서 방송된 ‘단일민족의 나라,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한 장면

    ‘얼굴 장사’를 하나요? 하여간, 그냥 장사나 ‘얼굴 장사’를 할 마음이 없는 해외 ‘친한파’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붙고’ 싶어도 별로 ‘붙을’ 만한 곳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박사과정을 밟든지 공부를 계속할 수야 있지만 이건 – 노르웨이와 달리 – 공짜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제가 위와 같은 ‘팔자 타령’을 하다가 토박이 한국인에게 욕을 먹을 확률이 큽니다. "니네들이 얼굴 장사라도 되는데 이제 곧 몇 백만 명이 될 국내의 젊은 백수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땅에서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맞다, 맞습니다.

    그리스도 그렇고. 그리스보다 더 못하면 못한 한국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계급 투쟁의 새로운 얼굴은 일감도 희망도 미래도 없는 젊은 ‘반란자’의 흑색 마스크일 것입니다. 스칸디나비아의 – 어차피 열 명이나 될까 말까 하는 – 젊은 ‘친한파’들은 타령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일본학이나 중국학 만큼 한국학이 유럽에서 발전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라도 됩니까? 어차피 전공과 관련이 있는 직장을 찾을 확률이 거의 없는 이들을 가르치는 게 저 같은 사람에게도 미안해 죽을 일일 뿐입니다.

    계급투쟁의 새 얼굴-검은 마스크

    그러나 그나저나 ‘세계화’를 벌써 10여년이나 부르짖고 있는 대한민국은 ‘외부자’와의 아주 재미있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외부자가 대한민국에 붙을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고된 막노동을 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상징적 가치’를 팔든지 크게는 두 가지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막노동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결혼 이민 – 가사 노동자로서의 삶 살이나 공사 현장부터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까지 다 포함됩니다. 후자는 ‘상징적 자본’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보수에 비해 노동의 강도가 꽤나 높아 거의 ‘지식적 막노동’에 가까운 것이죠. 그리고 거의 순수하게 ‘상징적 가치’를 거래하는 것은 예컨대 국내 대학에서 ‘모셔지는’ 소위 ‘외국 석학’의 경우일 것입니다.

    물론 ‘중간’들도 없지 않아 있지만(증권 분석가, 통역 등) 그 층은 별로 두껍지 않습니다. ‘세계화’든 뭐든 김대중 정권 시기에 아주 열어제껴버린 자본시장과 달리 국내 노동시장은 근본적으로 ‘닫혀’ 있습니다. 외국 노동력의 ‘틈입’이 가능한 것은 맨 아랫쪽 아니면 맨 위쪽일 뿐이고요…

    글쎄, 제 아내를 포함한 오슬로의 젊은 한인들은 일반 음악학교 교사나 교회 풍금연주자, 국영 기업 회계사, 대기업 직원 등으로 일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예컨대 국영 기업에서 파키스탄 이주민 출신이 별 탈없이 일반의 국내인과 함께 회계 일을 보고 있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나요?

    한국 자본과 외국 자본들은 서로 서로에게 ‘개방’해주어도 노동자들은 국민 국가라는 우리 속에서 그냥 그대로 갇혀 있는 형국에요. 자본이 다스리는 이 세계는, 결국 노동자들에게는 감옥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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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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