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북한은 미디어와 전쟁 중
        2008년 12월 16일 0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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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사망 직후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도 소련, 동유럽처럼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클린턴 정부도 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했지만 경수로가 완공되는 2003년 이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 기대했다. 지금 김일성 사망 이후 14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여전히 건재하다. 왜 북한은 소련, 동유럽과 달리 붕괴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북한은 소련, 동유럽과 두 가지 점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철저한 외부 정보 통제 그리고 극악한 공포 통치가 그 비밀이다.

    적어도 소련, 동구에서는 외부 라디오 청취를 통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외부 TV 시청도 허용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이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매체는 TV 채널 하나, 라디오 채널 하나 정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수령님 찬양과 반미 애국주의로 주민들의 머리 속을 장악하려고 한다. 소련이 고철 장막이었다면 북한은 무쇠 장막이었던 것이다.

    공포 철권통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소련, 동구에서는 반체제 인사가 숨 쉴 구멍이 있었다. 때문에 폴란드의 바웬사, 체코의 하벨 등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반체제 운동 아니 반체제 조짐이 조금만이라도 보이면 본인과 가족 3대를 거의 절멸시켜버리다시피 한다.

    사형을 당하든지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평생을 썩어야 한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경비병 출신, 아니면 가까스로 탈옥하거나 석방된 사람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여전히 연좌제가 적용된다. 본인이 죄를 지으면 부모 자식까지 수용소에 수감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아웅산 수지가 살아 있기 쉽지 않다.

    그런데 2008년 북한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두 축, 즉 정보 통제와 철권 통치 중에서 한 축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바로 외부 정보의 대량 유입으로 무쇠 장막에 파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삐라 논란은 외부 정보 유입에 대해 북한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다.

    장마당은 정보마당

    북한의 무쇠 장막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대량 아사와 대량 탈북 등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고 난 뒤이다. 이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은 두 가지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하나는 중국을 통한 외부 정보 유입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의 소통 공간인 장마당의 확산이다.

       
      ▲ 북한의 장마당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중국 땅에서 북한과 다른 별천지를 보게 된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한국 사람들도 만나고 한국 TV도 본다. 그런데 이들 탈북자들 중 일부는 한국으로 들어오거나 또 중국에서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북한의 가족 때문에 되돌아 간다.

    이렇게 북한으로 되돌아간 탈북자들은 외부 세계를 알리는 메신저가 된다. 물론 지금은 탈북자뿐만 아니라 중국과 거래하는 북한 상인들도 외부 정보를 확산시키는 주요한 메신저 역할을 한다.

    이렇게 탈북자와 상인들이 가져온 외부 정보는 북한 내부 장마당을 통해 전역으로 확산된다. 장마당은 북한 당국이 식량 배급을 중단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제 북한의 어느 곳이든 장마당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만 오고 가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이 사람들을 통해서 정보가 유통된다. 다른 지역 시장에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는 북한 전역으로 확산된다.

    중국과의 교류, 장마당 확산 흐름을 타고 다양한 미디어 매체들도 북한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대표적 매체가 VCD(Video CD)와 DVD, 라디오, 핸드폰 등이다.

    게다가 북한 정권의 기강이 흔들리고 뇌물이 횡행하면서 외부 미디어를 이용하다가 잡히더라도 그 처벌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DVD 같은 경우 아예 보위부 백을 믿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과거에는 라디오 주파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했지만 지금은 뇌물을 주거나 아니면 라디오만 압수되는 정도로 처벌이 완화되었다. 라디오를 압수한 국가보위부 요원들이 그 라디오를 다시 장마당에 되파는 현상도 종종 발생한다. 여기에 삐라가 가세한 것이다.

    그럼 이 각각의 매체들이 북한 내부와 남북 관계에 미치는 효과는 어떻게 될까?

    일단 핸드폰은 DVD, 라디오, 삐라와 조금 성격이 다르다. 다른 매체들은 주로 외부 정보를 북한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핸드폰도 일부 그런 역할을 하지만 주로는 북한 내부 정보를 외부 사회로 유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여기서는 외부 정보 확산 매체로서 DVD, 라디오, 삐라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일단 표를 한 번 보자. 

                                    □ 정보 매체들이 북한 사회에 끼치는 영향 비교

      DVD 라디오 삐라
    의식 변화 효과
    주민 확산 효과
    남북 대결 효과
    위험 유발 효과

    위 표는 북한에 미치는 영향을 네 가지 범주에서 분석, 비교해 본 것이다. 우선 의식 변화 효과란 각 매체들이 북한 주민 개인 의식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개인 의식 변화에 가장 효과가 큰 것은 아무래도 영상을 직접 보는 DVD이다.

    라디오는 DVD에 비해 주민 의식 변화 효과는 떨어지지만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고정적 청취층이 많기 때문에 엘리트 의식 변화에 큰 역할을 한다. 이에 반해 삐라는 우연적으로만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의식 변화에 아주 큰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삐라는 ‘위험한 1호 사건’

       
      ▲ 한 북한 여성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삐라는 주민 확산 효과, 즉 북한 주민에게 알려지는 효과는 적지 않다. 삐라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당국의 단속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읽지는 못하더라도 삐라가 떨어진 사실은 알려진다. 그래서 소문 확산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DVD에 비해 삐라의 주민 확산 효과가 낮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삐라는 주로 북한의 남부 지방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인터뷰해 보면 북한의 함경도, 양강도 등 북쪽 지역 주민들은 삐라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그에 반해 황해도, 강원도 주민들 중에는 삐라를 본 사람들이 꽤 된다. 이는 삐라가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지역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이에 반해 삐라는 남북 대결 유발 효과가 아주 크다. 삐라가 DVD나 라디오 방송보다 남북 대결 유발 효과가 큰 이유는 북한 정부 내 보고 체계와 연관이 있다. 북한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김정일 1인 수령 체제이다. 북한에서 김정일과 직결되는 것은 1호 사건이라 하여 반드시 보고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김정일을 비난하는 삐라가 여러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뿌려지면 그 삐라를 입수한 북한의 보위부, 인민보안성, 호위총국, 군대의 각 단위들은 틀림없이 그 삐라를 김정일에게 보고할 것이다. 이를 본 김정일은 대노했고 김정일이 강경하게 나오니까 북한 군부도 그 방침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에 반해 DVD는 주로 중국 국경을 통해 유입되기 때문에 남북 관계와 별 상관이 없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도 북한에서 가끔 문제 삼기는 하지만 외부 라디오 방송과 관련된 특정 단위에만 보고가 올라간다. 이것이 삐라와의 차이이다. 만약 삐라가 유발하는 남북 대결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는 김정일을 비판하는 내용을 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다음에 외부 매체들로 인해 북한 주민들을 처벌 받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근본적 책임은 외부 매체를 처벌하는 북한 당국에 있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분별하게 외부 정보를 유입하려는 것도 사려 깊은 행동은 아니다.

    특히 DVD나 삐라에 김정일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아 북한에 유입시킨다면 그 DVD나 삐라를 소지한 사람은 극형에 처해지게 된다. 인권 운동하는 사람들은 이런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하지만 탈북자들 중에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DVD나 삐라가 들어가도 북한 주민들 스스로 그 위험성을 잘 알기 때문에 면역 기제가 충분히 작동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 10년 전과 달라

    이런 외부 정보 유입으로 10년 전의 북한 주민과 지금의 북한 주민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의 마음 속엔 조금씩 반항의 싹이 자라고 있다.

       
      ▲ 북한의 한 주민이 보안원들에 저항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변에 있던 주민들도 손가락질을 하며 보안원에 항의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보안원(한국의 경찰에 해당)들에 대한 저항이다. 10년 전만 해도 북한에서 공권력은 신성불가침 영역이었다. 보안원의 주민들에 대한 지시 사항에 대해서는 절대 복종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장에서, 기차역에서 보안원에게 반항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 속에서도 초보적인 저항 의식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수령을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이 지금은 거의 없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탈북자를 만나 보면 김정일에 대해서는 존칭을 반드시 붙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김정일을 지칭할 때 존칭은커녕 “걔, 쟤” 이런 식으로 막 부른다. 존경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김정일의 세뇌 약발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북한 주민들이 진심으로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이 죽는다면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94년과는 그 양상이 많이 다를 것이다.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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