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이 먹고 살아야 기업도 살지
        2008년 12월 15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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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부가 최저임금액을 줄이는 내용의 ‘최저임금제도 개선방향 검토’ 자료를 내놓았다. 60세 이상 노동자가 동의하면 최저임금액을 감액하고, 수습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액보다 적은 급여를 줄 수 있는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겠다는 내용이다.

    노동몫을 줄여 경제위기를 돌파하자는 발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노동몫을 꾸준히 줄여왔다. 1996년부터 2003년 사이에 노동자 비중은 63.3%에서 65.1%로 늘었지만, 노동소득 분배율은 63.4%에서 59.7%로 하락했다. 이것이 민생파탄의 내용이다. 노동몫을 더 줄이자는 건 민생파탄을 더 강화하자는 얘기다.

    경제위기 대처방안으로 어떻게 ‘민생파탄강화‘가 나오나? 국민은 다 죽어도 부자소득만 늘면 경제위기는 해결되는 건가? 지금 필요한 건 파탄에 직면한 서민보호방안이다.

       
      ▲ 자료=민주노총

    시장주의자들이나 기득권세력은 최저임금제를 싫어한다. 기득권세력이 최저임금제를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월급 적게 주고 싶은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이 최저임금제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것이 실업·고용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동부에서도 대량실업에 대비해 고용기회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제는 말하자면, 노동시장에서의 ‘가격통제’와 같다. 노동자와 자본이 자유롭게 시장거래를 통해 가격(임금)을 정해야 하는데, 국가가 개입해 노동의 가격을 통제하면 시장이 위축돼 거래(취업)가 줄어든다는 생각이다.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제 때문에 기업이 임금부담을 갖게 되면 사람을 적게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노동자 입장에서는 저임금을 받더라도 자유롭게 취업하고 싶은데 국가의 통제 때문에 최저임금이라는 족쇄에 걸려 실업자 신세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에 완전히 자유를 주면 노동과 기업이 각자 자기의 조건에 맞는 거래를 성공시켜, 고용도 늘고 경제도 활성화된다는 생각. 일단 60세 이상 노동자만이라도 최저임금 삭감에 동의한다면 자유롭게 취업하도록 하자는 소리다. 또, 수습이라는 이름으로 자유의 영역을 더 키우자는 얘기.

    기득권세력 입장에선 이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임금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장주의자들과 부자들은 항상 최저임금제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흔들게 된다.

    최저임금제를 싫어했던 그린스펀

    “내 주요 관심사는 최저임금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에 관한 문제이다 … 고임금과 저임금 두 경우 모두 문제가 된다. 나는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정부가 이 문제(임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1999년에 미 하원에서 한 말이다. 이런 사람이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오랜 세월 군림했던 것이다. 그린스펀은 2001년에 이런 발언도 했었다.

    “내가 최저임금제를 폐지할 권한이 있다면 물론 이 법을 폐지하겠다 … 이유는 이 제도가 일자리를 파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득 양극화는 전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일반 노동자와 경영진의 소득이 수백 배까지 벌어진다. 미 하원의원인 버나드 샌더스가 경영진의 고소득이 문제 아니냐고 하자, 그린스펀은 임금이 많건 적건 시장에 맡기는 게 옳다고 답했다. 그랬던 그린스펀은 자신의 시장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시인했다.

       
      ▲ 앨런 그린스펀

    그러나 이미 늦었다. 시장에 대한 신뢰는 미국에게 양극화와 민생파탄과 금융위기라는 ‘체제의 위기‘를 선물했다. 왜 우리가 이런 사고방식을 지금 수입해야 하나?

    미국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최저임금이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신경제호황이라며 축배를 들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에겐 이렇게 인색했다. 미국은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대신 ‘빚’을 줬다.

    미국의 서민들은 빚으로 생활하다 지금 파탄을 맞고 있다. 우리 가계빚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임금삭감에 골몰하면 빚만 키울 것이다. 이게 어떻게 경제위기 수습책이 되나?

    미국에서 1950년부터 1997년 사이에 최저임금은 17번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 다음해에 고용이 증가한 것이 이중 14번이다. 고용이 증가하지 않았던 3번은 모두 유가폭등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이러한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의 경제학자 래비 바트라는 적정한 최저임금의 인상이 오히려 고용을 증대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민이 먹고 살아야 기업도 살지

    국민이 다 가난뱅이가 돼서, 먹고 죽을 돈도 없는 처지에 빚만 잔뜩 지고 있다면 시장에서 상품을 어떻게 사나?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기업은 망한다. 기업이 망하면 실업자가 늘어난다. 실업자가 득실거리는 국민경제는 더 가난해진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악순환을 끊을 길은 국민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취약층, 서민의 소득이 올라야 한다. 경제위기는 이들부터 공격한다. 이들이 붕괴하면 시장이 위축되고, 그래서 기업이 위축되면 실업자 증가로 시장이 한 번 더 위축되는 악순환의 길로 간다. 서민의 소득안정이야말로 경제위기 대책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시장에 내맡기면 서민-노동자는 절대로 자신의 소득을 지키지 못한다. 미국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멀쩡한 최저임금제를 흔드는 건 개입은 개입인데 거꾸로 가는 개입이다. 지금 정부는 강남 부자 이익을 키워주는 쪽으로만 개입하고 있다.

    강남 부자의 경제만 한국경제가 아니다. 노동자, 고령자, 지방민이 모두 한국경제를 구성한다. 서민이 못 살고 강남 부자만 잘 사는 것은 결코 경제위기 대책이 될 수 없다. 저소득 불안정 일자리만 잔뜩 만들어놓는 것도 경제위기 대책은 아니다.

    최저임금제를 상향 안정화시키는 쪽으로 개입해야 한다. 동시에 과도한 고소득을 규제하는 개입도 해야 한다. 앨런 그린스펀식 생각과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런 사고방식이 낳은 미국식 경제위기로부터 한국을 구원할 길이다. 즉, 미국 경제위기로부터 국가를 살리려면 미국식 사고방식과 결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간단한 일이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기업과 국민경제가 부유해지고, 국민소득이 줄어들면 기업과 국민경제가 망한다. 국민소득이 핵심이다. 최저임금제를 흔드는 것은 국민소득을 흔드는 것이다. 우리 생각 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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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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