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택의 불법 B급 시험
        2008년 12월 15일 08: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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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은 다 검은띠인데 넌 왜 아직도 빨간띠야” 
    “내 아이의 어제와 오늘만 비교해보세요. 나날이 발전해가는 모습이 보이죠. 속도가 다를 뿐 아이들은 매일 자라고 있습니다”

    웅진씽크빅의 광고입니다. 요즘 한창 라디오에 나오고 있습니다. 사교육업체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 아이러니하지만,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말라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만, 공교육은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서울시교육청도 12월 1일부터 라디오 광고하면서 “학생에게 행복을, 학부모에게 감동을, 교사에게 보람을”이라고 떠들고 있는데요, ‘참 뻔뻔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 서울시 교육청의 Vision 2010

    두 개의 라디오 광고

    실제로는 학생에게 일제고사를, 학부모에게 불안을, 교사에게 징계를 주니까요.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건 ‘교육’이 아닌데도, 공정택 교육감은 모든 학생들을 줄세우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와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학생의 의사를 ‘존중’한 죄로 7명의 선생님에게는 파면 및 해임 결정을 선사합니다.

    이러고보면, 공정택 교육감은 사교육 업체보다 못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한 수 배우려고 돈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2월 23일 또 일제고사 치릅니다 이번에는 중 1, 2학년입니다. 전국 135만 명입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은 3월에 했는데, 또 봅니다. 정식 명칭은 ‘2008학년도 중1, 2 전국연합 학력평가’랍니다. ‘연합’이라는 말이 붙여져 있는데요, 교과부가 하는 게 아니라 16개 시도교육청이 연합하여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일제고사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하지만 편의상 구분하자면, A급과 B급이 있습니다. 10월에 본 건 교과부가 주관했고 법에 의해 교육정보로 공개되기 때문에 A급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3월에 중 1 학생들이 본 거나 이번에 하는 건 시도교육청들이 연합해서 하고 교육정보 공개 대상이 아닌 까닭에 B급 정도 됩니다.

    23일의 B급 일제고사 주관은 공정택 교육감입니다. 문제만 낼 뿐이라고 하지만, 문제 내는게 곧 시험 주관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B급을 실시하자고 결정한 곳이 시도교육감협의회이고, 시도교육감협의회의 회장은 공정택 교육감이랍니다. 그러니 공정택 교육감이 전국 135만 중 1,2 학생들을 비교하고 줄세우기 위해 일제고사를 보는 겁니다.

    법적 근거가 희박한 B급 일제고사

    그래도 A급은 법적 근거가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제9조에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때의 ‘평가’를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지,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로 할지는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하지만 B급은 법적 근거조차 희박합니다. 헌법에서부터 시행령까지 그 어디를 뒤져봐도, 시도교육감들이 연합하여 일제고사를 볼 수 있는 조항이 없답니다. 이건 서울시교육청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애써 제시하는 게 ‘7차 교육과정 고시’와 ‘시도교육감협의회 합의사항(2007. 9)’이랍니다. 행정행위에 불과한 ‘고시’와 16명의 교육감들끼리 합의한 걸 근거로 일제고사를 실시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법정주의’라고 법령에 의거하여 이루어져야 합니다. 선생님들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게끔 되어 있습니다(초중등교육법 제21조). 하지만 공정택 교육감은 법령에 없는 일제고사를 23일에 본답니다.

    참, 이번에 7명 선생님들의 파면 및 해임 결정을 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내용 중의 하나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라는 ‘성실 의무’ 위반이랍니다. 그렇다면 교육감들이 법적 근거가 희박한 일제고사를 치르는 행정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요즘은 서울시교육청도 근거법령이란 걸 제시하긴 합니다. 교육감이 평가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지만, 현행 법령에 교육감이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이에 기반하여 시험을 실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교육감 관장 사무의 한 범위라고 보는 겁니다. 궁색합니다. 관장 사무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환자와 보호자 동의없는 강제 임상실험

    서울시교육청의 애써 찾은 근거라는 걸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A급이나 B급 일제고사는 모두 ‘교육과정 질 관리’나 ‘교수학습방법 개선의 자료 제공’ 등이 목적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거 “우리가 잘 가르치고 있나 한번 살펴봅시다”라는 말입니다. 학교, 학원, 집, 동네 놀이터 등에서 가르쳐본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여러 번 했는데, 왜 모르지. 내가 지금 제대로 가르치고 있나. 다르게 한 번 해봐”라는 생각을 갖기 마련인데, 그래서 평가해보자는 뜻입니다. 교육과정이나 가르치는 방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되새겨보자는 거지요.

    그렇다면 모든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풀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하거나 그냥 물어봐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지난 98년부터 작년까지 10년 동안 국가수준 평가는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취지와 목적에 걸맞게 실시했답니다. 그래서 이걸 두고 어느 누구도 ‘일제고사’라고 말하지 않았죠.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금까지의 국가수준 평가는 A급 일제고사로 변신하였습니다. 예전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공식 평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표집 평가가 전집평가(또는 전수평가)로 바뀌었습니다. 덩달아 시도교육감들도 단 16명이 합의하여 B급 일제고사를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를 묻지도 않은 채 강제 실시합니다.

    이건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강제 임상실험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도 병원장 혼자 결정해서 말입니다. 어떤 치료약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에게 병원이나 의사가 강제적으로 투약하면 꽤 큰 문제가 될 겁니다. 하지만 학교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시험을 보지 않는 학생은 ‘무단결석’ 처리할 수 있고, 시험 응시 여부를 묻거나 다른 교육방법(체험학습)을 안내하거나 시험보지 않겠다는 학생의 의사를 존중한 교사는 ‘파면 및 해임’시킬 수 있답니다. 헌법이나 교육관계법령에 국민의 기본권, 학생의 인권, 학생의 학습권, 학부모의 권리 등이 명시되어 있어도 얼마든지 징계를 할 수 있답니다. 그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오늘이랍니다.

    "나도 징계하라"

    23일 즈음에 7명의 선생님들은 파면 및 해임 통보받겠죠. 수십만 명이 읽었다는 최혜원 샘의 글을 보며 할 말을 잃습니다. 서울시교육청 앞의 농성장이나 집회에서도 할 말이 없습니다. 상가 집에 가서 뭐라고 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성격이 이번에도 발동합니다. 그래서 그냥 서있을 뿐입니다. 시간날 때마다 그 곳에 갈 뿐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니까요.

    12월 23일은 멀지 않았습니다. 열흘도 남지 않았군요. 그 날 전국의 중 1,2 학생들은 공정택 교육감이 낸 125개의 시험문제를 앞에 두고 225분 동안 문제풀이를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24일부터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들은 하나씩 겨울방학에 들어갈 겁니다.

    학생들은 방학 직전까지 시험을 보고, 7명의 선생님들은 그 즈음에 파면 및 해임 통보를 정식으로 받겠죠. 그렇게 2008년이 지나갑니다.

    학력부진 학생을 위해서라고
    사기치면서
    시험 당사자의 인격과 권리와 행복을
    짓밟는 너희들!!!
    나도 징계하라!

    – 금옥여고 유승준 선생님의 ‘그래! 나를 징계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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