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학부모, 거리를 점거하다
        2008년 12월 15일 08:1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12월 10일 저녁 무렵, 파리 생나자르역에서 수백 명의 빨간 산타모자를 쓴 무리들이 나타나서 한 참 바쁜 퇴근 무렵의 교통을 막아버렸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행사도, 깜짝쇼를 벌이는 가판원도 아니었다.

    이들은 교사들의 다르코스 교육부장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학부모들이었고, 이날 도로를 점거하고 가두시위를 조직한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이렇게 프랑스 전역에서 고등학생, 교사, 그리고 저녁에는 일을 마친 학부모들까지 거리로 나서고 있다.

       
      ▲ ▲ 지난 10일 산타복장을 한 학부모들이 다르코스 프랑스 교육부장관의 교육정책에 불복종운동을 벌이는 교사들을 지지하기 위해 파리 시내에 모여 가두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도로를 점거한 학부모들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 근처 초등학교 교장인 바스티앙 카잘은 지난 11월 25일 한 통의 편지를 썼다. 받는 곳의 주소는 ‘엘리제궁. 포브르그 상토노레 55번지, 75008 파리’였고,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은 다르코스 장관이 발표한 2008년 교육개혁법에 찬성을 할 수 없으므로 2002년 교육법에 따라서 계속 수업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답변은 그의 월급명세서를 통해서 돌아왔다. 12월에 받은 월급 중 8일치가 감봉되었고, 사유는 ‘명령복종을 거부’한 댓가라 하였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좌파를 지지하고, 교원노조는 특히 강성 좌파인 프랑스 교육계에서, 바스티앙 카잘은 노조에도 소속되지 않고 그냥 혼자 평범하게 33년간 교편을 잡아온 선생님이었다.

    그는 자신의 희망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뛰어놀고,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으며 후에 자신의 학생들이 ‘생각하는 시민’이 되기만을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르코스 법률은 이런 것들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지금 ‘복종거부자’ 모임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다르코스 교육부 장관은 지난 2월 20일 교육 재정비를 위한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전체 교육과정 중 다반사로 일어나는 유급을 최소하기 위해 교육의 강도를 높이고, 국제 정세에 맞춰 영어와 컴퓨터 교육 강화, 대신 문학 수업 등의 축소, 교원 수 감원 등을 골자로 하는 다르코스법은 발표되자마자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고등학생들 다시 거리로

    우리나라에서 많은 고등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5월, 이곳 프랑스 고등학생들도 학교 문을 걷어차고 거리로 뛰쳐나갔었다(☞관련기사 보기). 그리고 잠시 방학을 거치면서 잠잠해졌던 이 법률을 다르코스 교육행정부가 밀어붙이기 시작하자 다시 저항의 함성이 터져 나온 것이다.

    다르코스 법률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깨부수는 내용이라는 게 교사, 학부모, 학생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교사 감원은 교사 당 학생비율을 높여, 효율적인 수업의 질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학생들과 대화하거나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사르코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치는 ‘구매력의 신장’을 위한 ‘좀 더 일하고 좀 더 벌자!’ 라는 슬로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교육까지 파고든 것이다. 교사의 근무시간이 늘면 월급은 올라가겠지만, 오히려 교육의 질은 저하될 것이며, 학교를 경쟁관계로 내몰고, 학생들은 보이지도 않는 결과를 놓고 서로 겨루게 되며, 이는 공공교육 과정을 마치 소비자운동의 영역으로 파악하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 거리에 나선 고등학생들

    리옹에서도 이번 주말에 3,000명가량의 고등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위를 벌였으며, 파리는 시내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고등학생, 청년사회주의자모임, 교원노조, 학부모 모임 등이 시위를 조직했다. 

    특히 보르도에서는 지난 12월 2일 시위 도중 한 고등학생이 경찰관의 코를 부러뜨린 죄목으로 3개월의 감옥에 갇히는 실형 선고와 5명의 고등학생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에 항의하기 위하여 5,000명 정도가 모여 시위를 조직하였다.

    12월 17일 전국 불복종의 날

    이렇게 프랑스 전역을 학생, 학부모로 구성된 연대시위의 물결로 뒤덮는 것과 동시에 교사들의 블로거를 통한 복종거부운동 또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학교의 미래를 위한 교육저항’에는 연일 지역교사들이 개인으로, 혹은 학교별로 "나는 복종을 거부한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올리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마르세이유에서는 124명의 교사들이 지역교육감에게 불복종 사유와 자신들의 정당함을 담은 내용을 전달하였다. 이들은 여전히 컴퓨터프로그래밍 대신 문학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영어 대신 역사와 지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오는 12월 17일 전국 불복종의 날로 선정하며, 전국적 규모의 저항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