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줄이여, 나의 혈관이여
        2008년 12월 12일 03: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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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줄이여, 나의 혈관이여
    – 콜트/콜텍 기타를 만들던 해고노동자들에게 드리는 詩

    기타 줄은 기타의 핏줄,
    질긴 나의 혈관이다
    팽팽한 생의 조율 위에서
    언제 끊어질지 몰라,
    나는 불안한 음계로
    죽음의 열 네 계단을 오르내리며 매일
    고통을 튜닝한다
    당신들은,
    나의 노동이 느슨하다며
    있는 힘껏 내 목을 조인다
    나는 밧줄을 칭칭 목에 감은 채
    온몸으로 소리친다,
    울음으로 노래한다
    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본의 공명을 위해 매인 몸
    하지만
    6번 줄은 기타의 동맥,
    잘 끊어지지 않는다
    줄을 조일수록 울림은 커지느니,
    내 질긴 목숨도 기나긴 싸움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나는 기타를 잘 치진 못하지만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난생 처음 형의 기타를 품었다. 불협화음의 단계를 지나 몇 년 뒤 화성의 조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조화로움과 적당한 긴장, 이것이 기타 소리의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해가 흘렀고, 몇 대의 기타가 목이 부러진 채 버려졌다. 그리고 몇 해 전 얻은 기타가 바로 콜트(Cort)였다. 주위의 추천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시쳇말로 소리가 ‘죽여줬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밤낮없이 일했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대량 해고를 당했고, 나는 그들을 위한 공연에서 시 낭송을 하기로 했고, 그들을 생각하며 쓴 시가 바로 「기타 줄이여, 나의 혈관이여」라는 시다.

    아름다운 소리 뒤에 감춰진 아픔을 나는 보았다. 불행과 고난은 누구에게나 온다. 아름다움이 불행과 고난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다.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심으로부터 불행은 온다.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 앞에서 개인은 행복할 수 없다. 물리적이든 심적이든 연대감이 없다면 그 사회는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시를 통해서 그 연대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각기 다른 플랫과 음색 안에서 이뤄지는 기타의 조화로움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아닐까.

    박후기 / 시인. 시집으로 『나무는 종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있다. 2006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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