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투쟁은 우리의 미래 모습"
        2008년 12월 12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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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이었던 지난 12월 6일에 시작된 그리스의 청년 봉기가 일주일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주요 대학이 점거 상태이고, 거리 곳곳에는 불길이 타오른다. 10일에는, 마치 1968년 5월의 프랑스처럼, 청년 봉기에 그리스의 양대 노총이 24시간 총파업으로 화답했다.

    그리스의 오늘은 세계 여러 나라의 내일?

    이번 사태의 발단은 6일 수도 아테네에서 16세의 소년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폴로스가 시위 도중에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었다. 경찰은 아나키스트 청년들의 폭력 시위에 응분의 대응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정조준으로 3발의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볼 때 의도적인 살인임에 분명하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이 국가 폭력에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경제 위기에 대한 청년 실업자 혹은 예비 실업자들의 불만이 자리한다.

       
      ▲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그리스 청년

    어쩌면 그리스의 오늘은 내년 봄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맞부딪히게 될 상황을 그저 미리 보여주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현 집권당은 신민주주의당이라는 우파 정당이다.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주주의당 정부는 2007년 9월 총선으로 출범했으나 그 이후 줄곧 신자유주의적 연금 및 교육 개악, 공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해 좌파 야당들과 노동조합의 반발을 샀다. 더구나 내각 내부의 부패 사건이 연이어 터져 인기가 바닥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봉기가 일어나자 제1야당인 사회민주주의 정당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른 두 좌파 야당, 그리스 공산당(KKE)과 급진좌파연합(약칭 SYRIZA)도 정부를 맹비난하며 시위대에 합류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두 경쟁 세력 – 공산당과 급진좌파연합

    그런데 대립 전선은 여야와 좌우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청년 봉기는 좌파 내부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9일 공산당 사무총장 알레카 파파리가는 카라만리스 총리와 면담한 뒤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부 대응을 비판하면서, 급진좌파연합이 아나키스트들의 무책임한 폭력에 부화뇌동한다는 비난을 덧붙였다.

       
      ▲ 급진좌파연합의 포스터

    급진좌파연합은 이에 맞서 다음날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나서서 공산당이 청년들의 자발적 봉기를 ‘통제’하고 ‘지휘’하려 든다고 공격했다. 이것 역시 마치 68년 5월 프랑스 공산당과 신좌파 사이의 논쟁을 연상시킨다.

    도대체 공산당과 급진좌파연합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와 간극이 있는 것일까?

    원래 두 당의 뿌리는 같다. 그리스는 1970년대에 군부독재에서 벗어났고, 80년대에는 PASOK의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섰다. 이와 함께 공산당 활동이 합법화됐다.

    공산당은 1988년 다른 급진 좌파 조직들과 함께 좌파진보연합(약칭 Synaspismos, ‘연합’이라는 뜻)이라는 정치연합을 결성해서 다음해 총선에 13.1%라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공산당 내의 뿌리 깊은 정파 갈등이 폭발하고 말았다. 상당히 교조적인 친소파와 유럽공산주의를 추구하는 국내파 사이의 갈등이 그것이다.

    친소파가 주도하는 공산당은 결국 1991년 좌파진보연합에서 탈퇴했다. 반면 국내파는 좌파진보연합에 잔류하여 이를 ‘사회운동 및 생태주의좌파연합'(약칭은 계속 Synaspismos, 이하 ‘연합’)이라는 공동전선적 정당으로 재편했다.

    이후 공산당과 ‘연합’은 PASOK 왼쪽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놓고 경쟁을 계속했다. 조직 노동운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산당은 8% 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연합’은 지지율은 그보다 낮지만(3~5% 대) 생태운동, 여성운동, 청년층 등 새로운 지지 기반을 확보하려 노력해왔다.

    지방선거에서 청년 시장 후보로 바람을 일으키다 

    이번 봉기에서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급진좌파연합은 ‘연합’이 또 다른 급진 좌파 조직들과 함께 만든 더 커다란 틀의 공동전선적 정당이다.

    사실 ‘연합’은 2000년에 위기를 맞았었다. 당 내 사회민주주의 분파가 집단 탈당하여 PASOK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합’은 생태주의, 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그룹들 그리고 PASOK이나 공산당의 탈당파들과 함께 급진좌파연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연합을 만드는 것으로 이 위기에 대응했다.

       
      ▲ 알렉시스 치프라스

    급진좌파연합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연합’ 소속의 젊은 후보 알렉시스 치프라스(1974년, 당시 30세)가 아테네 시장 후보(슬로건: ‘열린 도시’)로 바람을 일으키면서(10.51% 득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급진좌파연합은 여세를 몰아 2007년 총선에서 5.04%라는 예기치 않은 성과를 거두며 14석을 확보했다.

    위에 이미 소개한 것처럼, 현재 급진좌파연합의 얼굴은 34세의 젊은 치프라스다. 그리고 대도시 지역에서는 급진좌파연합의 지지율이 전국 지지율을 상회한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은 18%까지 치솟았다.

    교조적이지 않은 사회주의, 생태주의와 여성주의의 수용, 젊은 정치인을 통해 청년층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 이러한 요소들이 급진좌파연합과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이번 봉기의 가장 그럴듯한 대변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전 지구적 경제 위기로 인한 정치적 격변과 함께 좌파의 전반적인 재구성 과정이 그리스에서도 진행 중인 것이다. 이번 항쟁을 단지 일과적인 사건으로만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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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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