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도 제대로 못치르는 '민주노조'
    민주노총 직선제, 죽음에 이르는 길?
        2008년 12월 12일 09: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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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있었던, 민주노총 경남본부 임원선거에서 볼썽사나운 꼴이 연출되었다. 부정선거가 있었다. 선거는 국민파로 분류되는 기호1번 김천욱 후보와 중앙파로 분류되는 기호2번 여영국 후보가 맞붙어 진행되었다.

    한데 수십 개의 투표함과 선거인 명부에서 기호1번 쪽의 부정선거가 드러났다. 투표용지 여러 장이 한꺼번에 접힌 채 들어있는 투표함이 나왔고,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서명을 한 것으로 보이는 선거인 명부가 나왔다.

    부정선거 자행되는 ‘민주노조’

    기호2번 쪽이 항의하면서 개표 중단을 요구했으나 선관위는 받아들이지 않고 개표를 강행했다. 이에 기호2번 쪽은 민주노총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법원에 ‘당선무효 확인 및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 지난 2007년 민주노총 39차 정기대의원대회. 제5기 신임 집행부 선출을 위해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동과 세계)

    부정선거는 민주노총 산하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무금융노련이 1999년 말 조합원 직선에 의한 임원선거를 했다가 부정선거 시비 끝에, 결국 간선제로 규약을 바꾸어 임원을 선출한 전례가 있다.

    민주노총 대전본부는 부정선거와 투표거부 등으로 4년간 지역본부장을 선출하지 못했다가 최근에야 겨우 본부장을 선출했다. KT노조는 선거 때마다 회사와 노조의 특정세력이 야합해서 부정선거를 자행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에 발생한 민주노총 경남본부의 부정선거에 대한 주변의 반응도 그리 격하지 않다. “그 사람들, 민주노동당에서도 그러더니 또 저질렀구먼.” 하는 정도의 반응이다. 그러나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나는 이번 사태가 경남이라는 특정지역의 특정세력에 의한 것임을 안다. 또한 학교 선생도 인간이기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부정선거와 주요하게 연관된 곳이 전교조 경남지부였다는 점 때문에, 나는 활동가를 떠나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상실감이 크다.

    나는 소식을 접하면서, 전교조가 노무현-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의 공격으로 상처를 심하게 받은 상태인데, “전교조 경남지부의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전교조 경남지부의 누군가가 기호2번 쪽에, “그것은 그간에도 일부 나타났던 관행”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자기 안의 부정함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극복하려 노력하지도 않는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암담할 따름이다.

    직선제라는 덫

    하지만 내가 어지러움을 느낀 이유는 1년 후에 있을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선거 때문이다. 경남본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되면, 민주노총은 지난 2005년 노사정위 참가를 둘러싼 대의원대회 사태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으며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과 민주노총은 국민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것이고 세계 진보진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이런 우려는 지난 시기의 논쟁과정에서 있었고, 직선제 규약안이 통과되는 순간에도 있었다. 직선제를 관철시킨 현장파도, 또 마지못해 끌려갔던 중앙파와 국민파도 우려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임원 선거를 간선에서 직선으로 바꾸었다.

    민주노총 임원선거를 둘러싼 직선제 논란은 1998년 때부터였다. 이갑용 후보가 공약의 하나로 직선제를 내걸었다. 당선된 이갑용 집행부는 1999년 2월 대의원대회에 직선제 규약개정안을 상정해서 61%의 찬성을 얻었으나, 2/3에 미달해 부결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선제를 둘러싼 논란은 심하지 않았다. 직선제에 대한 고민은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는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고, 정파 구도도 뚜렷하지 않았다. 대의원이 각자 판단해서 찬반을 선택하는 수준이었다.

    그 뒤 단병호 집행부 시절에 구성된 ‘노동운동발전 전략위원회’ 보고서에도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의 하나로 직선제가 큰 논란 없이 담겼다. 그런데 현장토론과정에서 보고서 전체가 채택되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되었다.

    정파 갈등과 토론 실종

    2004년 당선된 이수호 집행부는 직선제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조직혁신위’의 안으로 선거인단제를 제출했다. 조합원이 직접 선출한 일정규모의 선거인단이 민주노총 임원을 뽑는 제도였다. 중앙파는 대체로 동의했으나 현장파는 반발했고, 논란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 당시는 차분한 토론이 가능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격하게 치달았다.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둘러싼 정파 간의 갈등 폭발과 대의원대회 무산사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혐의 구속에 따른 임원 총사퇴 공방, 2006년 보궐선거에서 발생한 KT노조 대의원들의 어용성 시비가 이어지면서 정파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조직혁신을 둘러싼 건강한 토론은 사라졌고 격한 발언과 행동이 민주노총을 지배했다. 당연히 직선제를 둘러싼 토론도 사라졌고 주장만 남게 되었다.

    현장파는 직선제를 주장했다. 그 근거는 ‘의결 및 집행단위의 핵심을 조합원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고, ‘직선제가 조합원의 민주 소양과 참여를 증진시킬 것’이며, ‘민주노총이 80만 조합원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고 소수 상층 간부의 관료주의와 패권주의에 지배되고 있는 상황을 전체 조합원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등이었다.

    이와 달리 중앙파와 국민파는 대체로 반대했다. 그 이유는 ‘직선제만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는 것’과 ‘조합원이 직접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산별단위가 가입하는 내셔널센터로서의 민주노총의 조직구성 원리와 역할에 맞지 않는다는 것’, 또 ‘준비 안 된 상태에서의 직선제는 엄청난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선거인단제를 주장하고 선호했다.

    반대하지만 찬성한다?

    국민파는 집행부의 입장에서 반대의견을 적극 표명했다. 그러나 중앙파는 현장파와의 관계를 의식해서 소극적으로 반대했다. 당시 중앙파와 현장파는 공동으로 국민파에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파와 국민파는 현장파의 거센 공세 앞에서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 민주노총 43차 대의원대회 장면(사진=노동과 세계)

    이수호 집행부가 사퇴한 뒤 2006년 초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중앙파는 김창근을 내세워 노동자의 힘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파의 일부(현장파의 또 다른 한 축인 새흐름은 이정훈 후보를 별도로 내놓음)와 선거연합을 하면서 직선제 공약을 수용했다.

    국민파는 보궐선거 공약으로 여전히 선거인단제를 내걸고 조준호 후보를 당선시켰고, 당선된 뒤의 혁신안으로도 선거인단제를 내놓았다. 그런데 2006년 8월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열린 중앙집행위에서 직선제 안을 전격 제출했다. 당시 집행부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던 자주파의 판단이 한 몫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대의원대회가 유회되면서 처리되지 못했다.

    그 뒤 2007년 초 임원선거는 현장파 조희주, 중앙파 양경규, 국민파 이석행의 3파전으로 치러졌는데, 모두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직선제 규약 개정안이 당일의 안건으로 상정되었으나, 이석행 위원장과 임원들을 선출한 뒤 또 유회되었다.

    그리고 4월19일 개최된 대의원대회에서 더 이상 유회되지 않도록 1호 안건으로 상정한 끝에 결국 통과되었다. 대의원 579명이 투표에 참여해서 407명이 찬성했고, 70.29%로 2/3를 넘겼다. 반대는 172명 이었다. 격하고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나는 비겁했다

    한데 나는 지금 혼란스럽다. 직선제를 통과시킨 당시의 대의원대회가 옳았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이다.

    민주노총 산하 산별단위, 지역본부, 대기업 등의 최근 선거를 보면서, 직선제를 주장한 현장파의 근거가 빗나갔다는 평가를 한다. 지금의 노동조합운동 상황에서 현장파가 내세운 근거와 직선제는 별로 연관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현장파가 당선된 선거를 봐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선거논리와 집행논리에 빠져 직선제를 수용했던 중앙파와 국민파가 정당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자신이 비겁했다고 평가한다. 민주노총 직선제의 후유증을 예상했고, 그 후유증을 슬기롭게 극복할 만큼의 내공이 민주노총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는 아직 한 번도 치러보지 않았다. 따라서 나의 걱정은 노파심일 따름이다. 나는 현장파의 판단이 옳았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들을 잠시 멈추고, 당리당략을 떠나 슬기롭게 치러낼 수 있는 방안을 지금부터 강구해야 한다.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민주노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을 많이 하지만, 그마저 없으면 진보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기댈 곳이 없다. 내년의 민주노총 선거가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려 파행으로 치닫는 순간, 민주노총만 죽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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