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캐나다…민주대연합?
        2008년 12월 11일 11: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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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가 초유의 헌정 혼란에 빠졌다. 12월 4일 미셸 장 연방총독(캐나다의 국가원수인 영국 여왕을 대리)이 스티븐 하퍼 총리의 하원 정회 요청을 받아들였다. 보수당 소속인 하퍼 총리는 하원의 총리 불신임 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야당이 하원 의석 과반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퍼 총리의 조기 퇴진은 기정사실이었다.

       
      ▲ 신민주당 대표 잭 레이튼

    하지만 이번 총독 결정으로 하퍼 정부는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시한부 생명일 뿐이다. 내년 1월 말 하원이 다시 소집되면 총리 불신임 투표가 실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앞으로 한 달 이상 ‘식물인간’ 상태의 정부가 캐나다를 이끌게 되었다. 그것도 경제 위기 와중에 말이다.

    캐나다도 지금 미국 발 경제 위기의 혼란에 휩싸여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0월 14일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기존 여당인 보수당이 하원 308석 중 143석을, 미국 민주당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자유당이 77석을, 퀘벡주 프랑스계 주민들의 분리주의 정당이자 중도좌파 성향인 퀘벡블록이 49석을,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NDP)이 37석을 획득했다. 보수당이 과반수를 넘지는 못했지만, 일단 제1당으로서 소수파 정부를 구성했다. 이게 불과 두 달 전 일이다.

    집권 보수당, 공무원 파업금지 등 추진

    하지만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가 곧바로 정치 위기를 몰고 왔다. 새로운 2기 하퍼 정부가 내놓은 2009년 예산안은 경제 위기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담고 있지 않았다. 경기부양책은 별로 없고, 오히려 향후 2년간 연방 공무원 파업 금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등 야당과 노동조합을 자극하는 조치들만을 내놓았다.

    이 중에서도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가 야당들을 크게 자극했다. 캐나다에서는 총선 득표수에 따라 한 표 당 1.95 달러씩 정당에 국고보조금을 지급한다. 캐나다 정당들은 이 국고보조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제도를 폐지한다니, 야당들로서는 생존권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당과 신민주당은 12월 1일 하퍼 정부에 대한 신임 투표 실시와 자유당-신민주당 연립정부 구성에 전격 합의했다. 퀘벡블록은 연정 협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현 정부 불신임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변수가 없는 한, 12월 4일 총독 결정으로 인한 한 달간의 유예기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정부의 붕괴와 새 연정 등장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자유당과 신민주당은 벌써부터 총독 결정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난하며 대중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캐나다판 ‘민주대연합’의 시동이라고 해야 할까?

    자유당-신민주당의 연정 합의는 캐나다 정치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캐나다는 비록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는 있지만, 연립정부의 경험이 많지 않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소선거구제라서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가 유지돼온 것이다.

       
      ▲ 자유당-신민주당 연정을 지지하는 시민들

    성장한 사민주의 정당의 딜레마

    사회민주주의정당인 신민주당은 이런 정치 환경에서 어렵사리 성장해왔다. 그리고 두 달 전의 총선에서는 자유당과의 득표율 격차를 8%까지로 좁혔다(자유당 26%, 신민주당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선거구제라 의석 차는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잭 레이튼 신민주당 대표는 자유당과의 연정이라는 과감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자유당-신민주당 연정이 등장한다면, 이것은 신민주당에게 기회가 될까, 아니면 자충수가 될까? 100년 전 영국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신해서 보수당의 맞수로 등장했던 역사를 캐나다에서 반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보수당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유당에 휩쓸려 당의 위기를 낳고 말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연립정부의 총리와 재무장관직을 자유당이 맡기로 했다는 것을 보면, 앞길이 그리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아무튼 캐나다 좌파에게도 작금의 전 세계 경제 위기는 큰 시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겠다.

    * <주간 진보신당> 17호에도 같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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