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은 본격적 투쟁의 전주곡일 뿐
        2008년 12월 11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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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그리스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닥쳐오는 신 세계공황이 가장 먼저 반체제적 운동의 커다란 파도를 일으킬 나라들이 바로 소위 ‘준(準)주변부’ – 준핵심부 그룹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그룹의 공동적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대체로는

    1. 1인당 국민 소득은 만불에서 3만불 정도 되는, 중간 소득의 사회들이고
    2. 산업노동자 계급이 이미 잘 형성돼 있고
    3. 세계 시장의 역할 분담에서 주로 중간 정도의 부가가치의, 자본/에너지 집약적 몇 개의 특정 품목으로 그 독특한 틈새를 갖고 있고
    4. 매우 보수적인 제도적 민주주의부터 사회적 다양성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소프트 권위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사회들입니다.

       
      ▲ 지난 주말 16세 소년이 경찰관의 총격을 받고 숨진 뒤 그리스 전역에서 5일째 폭동에 가까운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준주변부 국가들의 특징

    이 그룹에서는 그리스 내지 이탈리아/스페인 정도면 사실 상위권에 듭니다.. 한국/대만 정도면 딱 ‘중간급’이고 러시아 등 1인당 소득 1만 불 안팎의 동유럽 사회들은 하급 정도에 속합니다.

    남유럽은 이미 서비스 위주의 상당히 다양화된 경제를 갖고 있고 기초적 복지 국가를 영위하고 있지만(무상 교육 등), 중간급의 한국 등은 특정 산업 상품의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고 복지 국가의 기초도 거의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하급(러시아 등)의 경우에는 산업 상품보다 몇 가지의 특정 자원 품목 수출에의 의존도가 과도하고 복지 국가는 장기적 퇴락 중에 있는 것입니다.

    정치-사회적 형태도 ‘권위주의의 잔재가 강한 민주주의'(그리스)에서 ‘극도로 보수적, 경찰 국가의 특징을 갖는 제도적 민주주의'(한국) 내지 ‘사회적 제세력의 운신을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용인하는 소프트 독재'(러시아)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공통점이라면 완비된 복지 국가(북구/서구)와 노골적 독재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그룹에서는 왜 하필이면 반체제적 운동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가요? 뭐, 트로츠키가 한 때에 이야기했던 ‘불균형 복합 발전’ 원칙의 자본주의 후기적 변용이라고 봅니다.

    일면에서 종합적 민도(일반교육 보급 수준, 언론 구독, 사회적 토론 참여 등)가 높고 고등교육 수준은 거의 서구와 가까울 정도인데(사회 교육적 인프라의 고등화된 발전), 또 일면으로는 고급화된 인력을 받아들일 만한 생산 구조가 아직도 미비돼 있다는 것입니다.

    불균형 복합 발전

    대표적으로는 수백 명의 대졸, 석사들이 정규직 미화원의 자리 하나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대한민국의 웃지 못할 현실을 보시지요. 아니면 세계 수준의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서도 시간당 2~3만원 짜리 강의로 입에 풀질해야 하는 수만 명의 비정규직 교수들의 사정을 보시든지요. 그것이야말로 준주변부의 불균형 복합 발전의 진면목입니다.

    국가가 이들의 직업적 능력을 십분 살릴 만한 지식적 인프라를 구축하자면 오늘보다 몇배 더 강력한 재분배 기능을 가져야 하는데, 기득권층이 사력을 다해 국가의 복지국가화를 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주 격렬한 싸움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영원한 준주변부로 남지 않으려면 말씀입니다. 저는 금년의 촛불집회들이 그 본격적 싸움의 전주곡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본격적 시합은, 아마도 부동산 가격들이 폭락하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역성장하기 시작하고 나서 일어날 듯합니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사는 나라에서는, 아주 비상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혁명’, 즉 사회-경제-정치적 형태의 완전한 변모는 발발될 가능성이 매우 낮죠. 그런데 대공황이 몰아치면서 대규모의 – 지난 번 촛불잡회 이상의 – 변혁 운동은 분명히 일어날 듯합니다.

    문제는, 과연 지금처럼 분열돼 있고 매체력과 계획력, 구체적 대안 제시의 능력에서 많이 부족한 좌파 정당들이 그 변혁 투쟁을 이끌 만한 역량이 될는지, 아니면 자유주의적 ‘개혁 사기꾼’ 패거리들과 손을 잡거나 그들에게 아예 주도권을 넘겨줄는지, 이게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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