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2008년 12월 10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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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조직체계에 대한 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번에 논의되고 있는 안의 관심 사항 중에 하나는 지도체제를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단일지도체제로 갈 것인지, 집단지도체제로 갈 것인지를 놓고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다지 많은 당원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만나서 얘기를 해본 대부분의 당원들이 단일지도체제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중앙당 인사를 비롯해 당원들은 현재의 답답한 당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보장될 수 있도록 단일지도체제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박차고 나왔으면, 뭐라도 보여줘야지"

   
  ▲ 진보신당 공동대표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심상정, 이덕우, 노회찬, 박김영희, 김석준

하지만, 진보신당이 현재 어려운 상황에 놓인 원인을 집단지도체제 탓으로 돌리는 건 좀 가혹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위기의 본질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가 공동 지도체제, 즉 현재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최근에 만났던 당원이 아닌, 그러나 진보신당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한 지인은 이렇게 얘기했다.

“좌파정당에서 박차고 나왔으면 더 좌로 가든가, 아니면 우로 가든가. 그도 아니면 ‘지금은 정당을 통한 세력화가 아니다, 새로운 정치주체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비정규 운동이든 지역운동이든 ‘올인’을 해서 ‘지금 우리 실력으론 안 되니까 우리는 새로운 정치주체를 만들어 새로운 좌파정치가 무엇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 주겠다’ 뭐 이러든가 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존립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어려운거 아니냐. 진보의 재구성, 좌파정당 혁신 이런 거 얘기하고 나왔지만 지난 1년간 사실 별 내용도 없고, 심지어 정치집단으로서 성숙되지도 않은 상태라는 걸 다 보여준 거 아니냐.”

그렇다면 문제는 뭘까. 진보신당이 처한 구조적 어려움을 제대로 인지하고 진로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내리거나 혹은 궁극적인 정치적 판단 – 예컨대 누구랑 손잡고 갈거냐 같은 – 을 내릴 상황이 아니라면, 그러한 판단을 위한 과정을 제시하고 그걸 힘 있게 끌고 나갈 사람 혹은 세력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그걸 하자던 제2창당 논의가 계속 지지부진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누군가 결단을 내려줄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게 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사실 노회찬, 심상정 대표에게 이 역할을 기대하는 거라면 단일지도체제를 만들어서 노회찬과 심상정,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할 이유가 없다. 둘이 같이 잘 버텨주는 게 좋다.

강력한 리더십 요구는 이해되지만

당원들은 둘 중 한 명한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체계가 되면 ‘명실상부한 지도체계’가 갖춰질 거라 생각하지만, 거꾸로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있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 방향과 전략도 제시하지 못하고 이렇게 왔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문제는 노회찬, 심상정 공동대표가 당원들이나 지지자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활동을 하고, 두 대표 이외에 제3의 세력이든, 당원의 아래로부터의 힘이든 어떤 것을 통해서도 그게 강제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노, 심)은 ‘둘’이기 때문에 일정하게 서로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노회찬, 심상정 대표에게 단일지도체계를 안겨주는 하는 것은 ‘책임 회피’에 대한 ‘책임 회피’를 해주는 것일 뿐이다.

현재 상황에 대해 제대로 진단하게 독촉하고(대표의 역할이다), 위기를 돌파할 안을 마련하라고 독촉해도 시원치 않은 판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안을 이제껏 마련하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궁색한 변명인가.

이와는 별개로 단일지도체제가 가져올 수 있는 후과 또한 적지 않다고 본다. 한마디로 노, 심 두 대표가 경쟁하는 선거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얘기다. 단일지도체제가 됐을 때를 가정해 본다. 미리 말하지만, 예측은 언제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미래를 정확히 맞춘다는 자체가 이미 어려운 일이다.

단일지도체제가 됐을 때, 노회찬 심상정 두 공동대표가 경합을 벌이게 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물론 제 3의 후보가 나올 수 있지만, 아마도 노회찬, 심상정 대표를 뛰어넘긴 어려울 것이다.

노회찬 vs 심상정 대결의 후유증

노, 심 두 대표가 단일지도체제에서 경쟁을 할 경우, 언젠가 극복해야 할 ‘노회찬, 심상정 당’을 더욱더 고착시키게 될 것이다. 당원은 대표적인 두 정치인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갈리게 된다. 선거는 조직을 남긴다. 그건 언제나 그렇다. 불온한 얘기가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그래야 한다. 그래서 당연한 결과로 당은 노회찬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과 심상정 대표를 지지하는 그룹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 지난 10월, 심상정-노회찬 상임공동대표가 각계인사 간담회 자리에서 참석자들의 고언을 듣고 있다.(사진=레디앙)

선거에 패한 쪽은 재기를 노려야 하고, 이긴 쪽은 수성을 해야 한다. 이는 결국 노회찬, 심상정 두 대표가 의도하진 않겠지만, 당내 정치에 더욱 매몰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승자는 물론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쪽도, 당내 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그 그룹을 활용하게 되고, 이는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처럼 국민을 향한 정치보다는 당 내부를 향한 정치에 ‘올인’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진보신당이 의석이 없는 원외정당이란 점은 이런 우려를 배가 시킨다.

물론 난 ‘경선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내 선거를 당원들에게 검증받고,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며 당내에서도 책임정치가 구현돼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당을 대표하는 두 정치인을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런 식의 경선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당원들이 경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이다(그러나 이를 증빙할 어떤 근거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이 주장의 결정적 한계라는 것을 인정한다).

당원들은 경선 준비가 돼 있나?

당원들만 보더라도 과반수 이상이 ‘경선’이란 걸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난 노회찬, 심상정 그룹에 속한 훌륭한 분들이 ‘경선’에 돌입하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지 경험해 봤다. 물론 나 같은 전업활동가야 괴롭히는 게 아니고, 즐겁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당원들 입장에서보면 무척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욕먹을 얘기지만, 난 우리 당원들이 아직 ‘당 적응’이 덜 됐다고 판단한다. 아직은 살결이 여리다. 마음도 여리다. 그래서 경쟁적인 당내 선거를 경험하게 될 때의 부작용에 대해 심히 우려를 할 수 밖에 없다. 익숙한 사람들이야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요즘 당내에서 흘러나오는 얘기 중에 단일대표체제로 가서 심상정 대표,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로 지방선거를 돌파하자는 안이 있다. 심상정 대표가 경기도지사에 출마하지 않고, 전국의 지방선거를 지휘하는 게 당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외람되지만 그건 한나라당의 박근혜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심상정 대표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박근혜 정도의 인지도와 지지도를 가지지 못한 건 사실 아닌가. 심상정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전국을 다니면서, 지원을 해도 큰 효과를 보긴 어렵다. 차라리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서, 지난 총선처럼 바람을 일으키며 다니는 게 당을 위해 훨씬 효과적이 될 것이다.

아직은 당의 뛰어난 자산인 두 대표가 경쟁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니다. 당도 노회찬, 심상정 두 공동대표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노, 심 두 대표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과 노, 심 사당화는 당연히 다른 말이다. 지금은 노회찬, 심상정 두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꾸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심 중심성을 인정해야

반복된 얘기지만, 그 둘과 균형을 맞출 세력이 없다. 눈에 보이는 제3의 세력, 혹은 인물이 없다. 대중들이 보기에는 더욱더 그렇다. 그렇다면 겸허히 두 대표 중심으로 당이 가는 것을 인정하자. 누군가 ‘노, 심 활용론’이라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쪽이 경선에서 탈락해 자기의 지역에서만 활동하게 되면 우리의 힘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아직은 두 상임공동대표가 서로를 끌어안아야 하는 시기다. 아직 헤어져서는 안 된다. 서로가 있음으로 해서,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노회찬 대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심상정 대표가 가지고 있고, 심상정 대표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노회찬 대표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노회찬, 심상정이 있어야 진보신당의 대중적 지지도가 동반 상승할 수 있다. 지금은 모두가 모두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노회찬, 심상정 대표외에 제3의 세력이든, 당원 중심의 민주적 체계이든, 진보신당 내에서 그런 게 자리를 잡고 성숙해 나가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진보신당의 정치적 입지를 지금 수준에서나마 유지해서 문 닫지 않도록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은 노회찬, 심상정 대표일 수밖에 없다.

어찌됐든, 새해에는 현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아래로부터 당내 권력을 형성할 것이냐, 그것을 통해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가, 뭐 이런 거에 대한 입장을 좀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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