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기세포, 민노당을 세 갈래로
        2008년 12월 10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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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민주노동당 황우석이라는 해일 앞에 서다

    송년 분위기가 넘실대는 2005년 12월 15일 밤.
    내 수첩에는 지금도 그날 밤 일정은 ‘방송카메라기자협회 송년회’라고 적혀있다. 총회를 겸해 송년회를 하고 훌륭한 카메라 기자에게 상을 주는 자리.

    노성일의 폭탄 증언이 있던 날 밤

    방송카메라 기자들의 모임이다보니 대변인이나 주요 정치인들이 꼭 챙기는 자리이기도 했고, 당사 근처 중소기업중앙회 건물에서 행사가 열렸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행사장에 도착했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몇몇 아는 기자들이 보이지 않아 한 기자에게 물었다.

    “OOO 선배는 아직 안 온 모양이죠?”
    “갑자기 취재가 잡혔어요. 난리가 났거든요.”

    난리라니….?

    “박용진 대변인은 몰랐구나! 지금 황우석, 사기라고 증언이 나왔잖아요”
    “언제요? 누가요?”
    “미즈메디 노성일이요. 오늘 오후 늦게…”

    행사고 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사로 뛰기 시작했다. 200미터도 되지 않는 행사장과 당 건물을 뛰어가면서 롱코트와 가방이 거추장스러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내 정신이 아니었다.

       
      ▲ 2005년 12월 15일 밤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당사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합뉴스 속보란에도, 네이버 뉴스창에도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노성일의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려진 MBC 민주노동당 출입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목소리에서 ‘초긴장’의 떨림이 느껴질 만큼 극도의 정제된 태도를 취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인터뷰 내용이 무엇인지 묻는 내 성급한 질문에 낮은 목소리로 전했다.

    "이건 사실 대외비입니다"

    “회사 밖에 이 사실 대외비예요. 오늘 방송에 내보낼지에 대해서도 아직 회사 방침이 안 섰어요. 없다고 말한 건 확실한 모양이에요.”

    황우석에 대한 ‘PD수첩’의 방송 때문에 MBC가 문을 닫을 판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는 방송사의 기자로서 당연한 태도였다. 그는 더 말해주지 않았지만 두 가지 팩트가 확인된 셈이다.

    하나, 노성일의 인터뷰가 있었다.
    하나, 그가 줄기세포가 없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두 단어였다.
    “이겼다! 살았다!”

    2004년 11월 14일 민주노동당 한재각 정책연구원의 책임 하에 ‘황우석 교수 퍼주기, 265억 예산 삭감해야’라는 제목의 정책위원회의 보도자료가 나가면서 시작한 황우석과 민주노동당의 1년 넘는 대립에서 최종 승부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이 대립은 황우석을 비호하고 비상식적 영웅화에 나서면서 국고를 탕진해 온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 및 모든 정치세력들과의 대립이기도 했고, 황우석 신드롬에 사로잡힌 모든 국민들과의 대립이기도 했다. 

    원칙의 고통이냐? 현실의 비겁이냐?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전화로 알린 것은 당시 김혜경 대표 체제의 총사퇴 이후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권영길 의원과 황우석 관련한 모든 논평과 언론 대응을 함께 논의했던 문명학 제1정조실장이었다. 두 사람은 황우석 사건에 대해 당이 대응하는 세 꼭지점 중 두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었다.

    문명학 실장은 15일 이전에는 정책위원회 내부 의견에 힘을 기울이면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던 당 지도부를 압박하는데 노력했고, 15일 이후에는 오히려 당이 ‘오버’하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역할을 했다. 

       
      ▲ 황우석 박사 (사진=미디어오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당 내외의 대립과 갈등 구조를 내 나름의 기억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당과 황빠 세력들.
    당은 일단 ‘외부에서 보면’ 황우석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과 노무현 정부, 그리고 언론매체 등 대한민국의 모든 세력은 황우석 문제와 관련해 당과 대립했다. 당은 외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당은 다음과 같이 입장이 미묘하게 달랐다.
    먼저 한재각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위원회의 ‘원칙강경파’. 이들은 애초부터 황우석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제기는 연구의 윤리문제, 정부와 서울대의 부적절한 재정 몰아주기와 황우석 영웅만들기 등 부적절한 태도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황우석 문제에 대해 시종일관 단호했다.

    황우석과 민주노동당의 3파

    다음은 ‘속도조절파’.
    대표적인 인물이 권영길 비대위원장이었다. 그는 원칙강경파의 단호함이 원칙적으로 옳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해일처럼 당에 밀어닥치는 황빠들의 공격과 황우석에게 우호적이고 당에 대해 짜증스러워 하는 국민여론 사이에서 곤혹스러워 했다.

    몇몇 최고위원들과 의원들은 정책연구원 명의의 보도자료가 아무런 사전 논의없이 발표되고 그것이 곧바로 당론으로 인식되면서 지도부나 의원들도 모르는 사이에 당의 입장으로 규정되고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짜증스러워했다’.

    정책논평은 정책위원회를 거쳐 대변인실에 넘어 오면 특별한 문제가 아닐 경우 그대로 발표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황우석 사태 당시 발표되는 정책논평의 파장은 하나하나마다 엄청난 것이어서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절차상의 새삼스런 문제 제기를 중심으로 비대위원회 논의가 흘러간 것이다.

    이것이 비대위원회에서의 논의를 거쳐 대변인실과 엄중 논의 후 발표라는 틀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 때문에 나중에 권영길 의원은 “사실상 재갈을 물리고 논의를 가로막은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12월 8일 비대위(지금의 최고위원회) 12차 회의는 이러한 인식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판파’
    비판파는 여러 종류였다. 황우석 지지파도 있었고(대부분이 탈당했다.), 괜한 논쟁에 우리가 왜 휘말리냐는 만사 귀찮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재각 동지에 대해 당의 지지율을 깍아먹는다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다.

    "책상물림 vs 비겁한 자들"

    어쩌면, ‘속도조절파’와 ‘비판파’가 표현은 달라도 결은 같이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원칙강강파’의 지적이 올바른 것임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그 지적에 관심조차 없다!)에 따라 나뉘는 것이지만 당내에서 ‘대황우석 전선’을 책임지고 있던 한재각 연구원을 비롯한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2004년 11월 14일 한재각 정책연구원의 정책논평이 나간 이후 노성일 원장의 증언이 나올 때까지 당이 내보낸 황우석 관련 언론대응(논평, 보도자료, 성명, 브리핑 포함)은 모두 26개이고 이 중 ‘당의 입장’을 담은 것은 19개인데, 그 가운데 한재각의 책임 아래 나간 것이 대략 11개 정도의 논평과 정책자료였다.

    대변인인 내 책임 하에 정리되고 나간 논평과 브리핑이 겨우 4개였던 점을 비교하면 그 열정과 전문성이 분량면에서부터 압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변인실과 협의하라는 12차 비대위 회의의 결과는 한재각 동지의 이런 노력에 발목잡기가 된 셈이다. 이를 두고 당내가 한바탕 시끄러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원게시판과 자유게시판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책상 물림들’이라는 비판과 ‘원칙을 저버린 비겁한 태도’라는 반박이 들끓고 있었다. (계속)

                                                      * * *

    참고 자료 1. 비대위 12차 회의 결과

    ○ 권영길 대표 모두발언

    황우석 박사를 둘러싼 관심과 논란이 상상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당의 일부 당원들이 황우석 문제와 관련해 개별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이 몇몇 언론에 의해 부분적으로 소개되면서 당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당은 그동안 황우석 연구팀의 연구가 보여준 빛나는 성과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왔으나 과학윤리와 관련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당의 이런 입장은 1년 전부터 확고했다.

    MBC 취재과정의 취재윤리 위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적이다. 그러나 연구성과의 진위 여부는 정치권이 아닌 과학계의 몫임을 분명하게 해왔다.

    당원들이 당론 이외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직을 맡고 있는 일부 당원들이 적절하지 못한 비유와 방식을 통해 개인 의견을 밝히고 그것이 당의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당직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신중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런 일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에게 당부한다. 모든 당원들은 자신이 당 대표라는 생각으로 모든 발언과 의견 제시에 있어 신중했으면 한다. 4천 5백만 국민들이 8만 당원 모두를 지켜보고 있다.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민중과 대화하는 방식을 잘 설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 황우석 관련 당직자 발언에 대해

    노00 당원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중앙당의 노력을 받아들여 오늘 오전 부평구위원회 상임집행위원회에서 공식의사를 밝히고 사퇴했다. 노00 당원은 “표현의 문제로 진의가 왜곡되어 안타깝다”면서 "물의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고 밝혔다.

    노00 당원의 발언 논란과 관련한 권영길 대표의 발언에 모든 비상대책위원들이 동감을 표시했고 당은 노00 당원의 당직 사퇴를 수리키로 했다. 당은 또한 정대협과 난자기증재단 측에 유감을 뜻을 전달했다.

    참고 자료 2. 황우석 일지(YTN 보도참조)

    1. 2005년 11월 12일
    미국 피츠버그대 섀튼 박사가 돌연 황 교수와 결별을 선언.

    2. 2005년 11월 22일
    MBC PD수첩 황우석 교수의 난자 확보에 대해 의혹을 제기, 황 교수 사태 국내외 과학계를 강타.

    3. 2005년 11월 24일
    황우석 교수, 연구원의 난자 사용 사실을 시인 모든 공직에서 사퇴.

    이후, PD 수첩팀과 황 교수팀 사이에 줄기세포 재검증과 논문조작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짐.

    4. 2005년 12월 4일
    YTN이 미국 피츠버그대에 파견된 김선종, 박종혁 연구원과 인터뷰 내용 방송 통해 ‘PD수첩’의 비윤리적인 취재행태를 비판. MBC 6시간 뒤 뉴스데스크 통해 대국민 사과 발표.

    6.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내 게시판에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이 인위적인 조작이었을 것이라는 의혹 제기.

    7. 2005년 12월 7일.
    황우석 교수, 수면장애와 스트레스로 인한 탈진 이유로 서울대 병원에 입원.

    8. 2005년 12월 12일.
    서울대 조사위원회 설치.

    9. 2005년 12월 15일.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황 교수로부터 ‘줄기세포는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힘.

    10. 2005년 12월 17일.
    황우석 교수, 서울대에 보관 중인 줄기세포 가운데 상당수가 미즈메디 세포로 바뀐 것을 확인했다며 ‘바꿔치기’ 의혹 제기.

    11. 2005년 12월 20일.
    노성일 이사장 지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황 교수팀에게 난자 1천2백여 개를 제공했다고 주장.

    12. 2005년 12월 22일.
    황 교수, 검찰에 ‘바꿔치기’의혹에 대한 수사 요청.

    13. 2005년 12월 24일.
    서울대 조사위가 2005년 논문이 고의로 조작됐다고 결론을 내리자 황 교수는 교수직을 사퇴.
    24일 김선종 연구원이 입국해 서울대 조사위의 조사를 받으면서 바꿔치기 의혹 부인.

    14. 2005년 12월 29일.
    서울대 조사위, ‘2005년 논문의 맞춤형 줄기세포가 없다’고 발표한 데 이어 12일 만에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주가 존재했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최종 결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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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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