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전평화와 반신자유주의는 하나”
        2008년 12월 09일 11: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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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노동자교류센터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철도, 운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기구이며 현재 8개국 15개 노조가 참여하고 있다. 국제노동자교류센터는 2005년 1월 세계사회포럼에서 출범을 했고 그동안 서울, 필리핀, 태국에서 매년 1회씩 포럼을 진행했다. 포럼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을 공유하고 노동조합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는 ‘반전 평화와 신자유주의 대응전략’을 주제로 오키나와에서 개최되었고 한국, 필리핀, 버마, 호주, 뉴질랜드, 일본, 대만 등에서 250여 명이 참석했다. 태국의 경우 태국철도노조가 반정부 투쟁을 진행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 편집자 주

    “멘소레 오키나와! (오키나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달랐다. 환영인사부터 일본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일본사람이 아닙니다. 오키나와 사람입니다”라는 지치로 우레소에시 노조 쿠다카 부위원장의 말처럼 오키나와는 말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2차 대전에 대한 생각도, 미군기지에 대한 입장도 일본 본토와 달랐다.

    지난 11월 29~30일 일본 오키나와(*필자 미주) 키노완시에서 ‘오키나와 포럼 2008’이 열렸다. 국제노동자교류센터(ICLS)와 오키나와 포럼 실행 위원회(오키나와 지역의 노조, 평화운동 단체)가 주최한 포럼에는 250여 명의 노동자, 시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포럼의 주제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바라본 일본 헌법 9조(*필자 미주)와 평화를 위한 투쟁’, ‘신자유주에 대항하는 운동의 방향과 진로’였다.

    키노완시 이나미 요이치(伊波洋一) 시장은 포럼 환영인사에서 “미 국무장관도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후텐마 비행장이 오키나와에 있는 것을 반대하고, 오키나와의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우리는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 아름다운 헤노코 바다를 메우는 데 반대한다. 평화가 지켜지고 평화헌법 9조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

    오키나와 후텐마 비행장은 도시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헬리콥터가 비행장 주변의 대학교에 추락한 사고가 발생했을 정도로 위험한 비행장이다. 사고 당시 일본 경찰을 물론 시장도 현장접근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 후텐마 기지와 주택 (사진=공공운수연맹)

    비행장 주변의 주민들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뜨고 내리는 전투기 굉음에 시달리고 있다. 오키나와에 종전이 되고 60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전쟁의 땅이었다.

    석치순 ICLS 대표는 “반전 평화의 상징인 오키나와에서 포럼을 개최해 기쁘다. 오키나와의 아픔은 오키나와만의 아픔이 아니다. 일본 평화헌법 9조는 일본만의 가치가 아니다. 인류의 자산이고 세계의 자산이다”라며 포럼을 통해 전쟁 없는 세계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만드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포럼 첫날은 ‘아시아 태평양으로부터 창조해가는 평화’라는 주제로 필리핀 미군기지 철수 운동에 앞장섰던 필리핀대학교의 로랜드 심블란 교수가 개막 강연을 했다. 심블란 교수는 1991년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역사적 국민 투표에 의해 미군기지 폐쇄 결정을 내린 과정을 소개했다.

    심블란 교수는 “현재는 기지 대신 상업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클리크, 수빅 지역 미군기지 시절보다 3배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면서 기지 폐쇄 이후 노동자 고용이 늘고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얘기했다.

    나아가 “국제적 노동운동은 반세계화, 반전평화 운동이며 우리의 세계를 다시 만드는 운동이어야 한다. 변화를 위한 가능성은 미국 오바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는 대중, 사회 운동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키나와현의 오타 전 지사가 나서 오키나와의 역사와 2차 대전 오키나와 전쟁 당시의 참상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전쟁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평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둘러본 평화의 기념공원, 히메유리 기념관에는 어린 여학생까지 학도병으로 동원돼 많은 희생자가 났음을 보여주는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당시 오키나와에서만 24만여 명이 죽었는데 대부분이 민간인이었고 그 중에는 조선, 대만 등에서 강제로 끌려온 민중들도 있었다.

    24만 명의 죽음…또 다시 전쟁을 부르는 미군기지

       
      ▲ 오키나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절벽 (사진=공공운수연맹)

    막바지엔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많은 민중들이 일본군의 명령에 의해서 수류탄으로 자살하거나 미군을 피해 오키나와의 아득한 절벽 위에서 눈부시게 맑은 바다로 뛰어 내렸다고 한다.

    물론 이런 사실은 일본 정부에 의해 가려지고 있어 젊은이들은 알지도 못한다고 오키나와 지치로 젊은 간부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얘기했다.

    오후에는 일본 평화헌법 9조의 소중함과 일미 안보조약의 문제점에 대한 패널 토론을 했다. 전 세계에서 신경가스가 비축된 활주로가 있는 비행장은 오키나와가 유일하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면서 1970년대 미군의 점령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복귀되면 당연히 미군이 물러갈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일미안보조약’을 맺어 오키나와는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의 75%을 떠안고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 정부로부터 배반당한 것이다. 카테나 기지가 있는 도시 면적의 83%가 미군기지다. 주민들이 맘 편히 살 수 있는 도시의 기능이 보장될 리가 없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2010년까지 14개의 기지를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오키나와에 기지가 없으면 경제 파탄이 올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재개발 등으로 고용도 늘고 소득도 늘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새롭게 미군이 이전하고자 하는 헤노코 기지를 ‘환경 투어’로 방문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평화 헌법 9조의 실현이 중요하다.”

       
      ▲ 새로 미군이 이전하려고 하는 아름다운 헤노코 해변 (사진=공공운수연맹) 

       
      ▲ 오키나와 헤코노의 투쟁 농성장 (사진=공공운수연맹) 

    한 패널은 “오키나와는 미군기지가 있어서 전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미군기지 때문에 공격받을 위험이 전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은 곳이다.”라며 오키나와의 현실을 얘기했다.

    오키나와 포럼 이틀째 ‘신자유주에 대항하는 운동의 방향과 진로’에 대해 노르웨이 공무원노조 아스비욘 볼씨가 기념강연을 했다. 아스비욘은 초국적 자본이 비전형적인 고용불안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신자유주의 재앙에 맞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유럽 노조가 사회적 파트너십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과거에나 통했지 지금처럼 노조가 수세적인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즉 이전의 급진적 노동운동이 사회타협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아스비욘은 사회적 공공성과 인간적 노동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ILO 등 3자 협의기구가 아니라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위기가 기회다. 위기가 곧 우리의 정책을 사람들에게 전파할 기회다. 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조직적 힘이 노조다. 새로운 사회 모델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 파트너십 파괴하고, 새 연대 만들어야

    나아가 그는 위기의 시대에 노조가 책임져야 할 다섯 가지 임무를 제시했다. 우선은 노조 내부의 ‘사회적 동반자 이데올로기’를 파괴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로 노동자 사이 간극이 벌어져 있는 비정규직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 셋째, 이주노동자와 단결 연대해야 한다는 것.

    넷째, 각국의 힘을 전 세계적 차원의 투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노동자․시민 과 함께 사회적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회적 연대가 절실함을 강조한 아스비욘은 “자신의 위기는 자신이 책임지게 하라”며 이것이 가장 공격적인 위기 탈출구라고 말했다.

       
      ▲ 오키나와 포럼이 열린 키노완시 컨벤션센터 (사진=공공운수연맹)

    강연에 이어 요모노 ICLS 사무국장은 아시아 태평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세계화 투쟁에 대해 소개했다. 특히 민영화되었던 뉴질랜드 철도가 올해 초 재국유화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했다. 뉴질랜드 철도는 1993년부터 민간 기업에 매각되었는데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선로 보수가 제대로 안 되면서 다리가 무너지는 등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재국유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필리핀에서 지난 1년 동안 3륜택시 운전사를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 5천여 명을 조직한 사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격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강연에 이어 계속 된 오후의 패널 토론에서 필리핀 BMP(노총 중 하나)의 소니 말레시오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사민주의를 시도했으나 대안은 아니다. 한 가지 해결책은 자본주의를 재편하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실패한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해 필리핀 노조는 새로운 정당을 조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양경규 전 공공연맹위원장은 “자본의 위기, 공황시기에 추락하는 노동자의 분노를 묶어 보다 힘찬 투쟁을 만들어 갈 좋은 기회라고 말하지만 세계 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돌아 볼 때 이 시기에 노동운동은 오히려 움츠러들고 별다른 전략도 없이 자본의 통제 하에 완전히 지배되어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자본의 위기를 뛰어넘을 전략과 투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런 상처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이번 오키나와 포럼은 신자유주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노동조합의 전략적 대응, 현장의 조직화에 대한 폭넓은 의견이 교류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자본은 위기의 끝에서 전쟁을 선택하며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했던 것처럼 반전 평화를 지키는 투쟁과 신자유의에 대응하는 투쟁은 결코 떨어질 수 없음을 확인했다.

    오키나와를 통해 본 평화와 자본의 위기를 뛰어넘을 새로운 질서는 노동계급 내부의 단결만이 아닌 전사회적 연대, 전 세계적 연대를 구축할 때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에 다 같이 공감하였다.

       
      ▲ 오키나와 기념공원의 위령비는 민간인, 일본군, 미군 구별 없이 모두를 추모하는 것으로 미래의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사진=공공운수연맹)

    포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꾸 ‘도라지 꽃’이라는 노래가 맴돈다. 오키나와 민중가수 유타카씨가⅝ 2차 대전 당시 종군 위안부로 끌려와 종전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오키나와에서 생을 마친 배봉귀 님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꽃이라면 꽃처럼, 사람이라면 사람처럼. 태어나서 피고 싶었던 을녀는 도라지. … 돌아갈 수 없네. 아이고, 아이고 돌아갈 수 없네.” 그런 상처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 * *

    □ 오키나와
    오키나와는 일본 열도보다 서울이나 대만에 더 가까운 160개의 섬으로 구성되었다. 역사적으로 ‘류큐(琉球)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으나 1609년에 당시 가고시마(鹿兒島) 지방의 영주(領主) 시마즈씨[島津氏]에 의해 정복되었다. 1879년에서야 일본의 현(縣)이 되었다.

    1945년 3월 26일 미군이 상륙하면서 전쟁에 휘말려 들게 되어 오키나와 전쟁 사망자 24만명 중 절반이 무고한 주민이었다. 종전 후 60년이 지났지만 ‘일미 안보조약’에 의해 여전히 미국의 아시아 방어 기지로서 섬 전체가 기지화되어 있고 전쟁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 일본 평화헌법 9조
    일본 평화헌법 9조는 1947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일본의 전쟁 포기, 전력(戰力)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이다. 하지만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과 우익 지배세력들은 9조를 개정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9조 전문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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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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