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만원짜리 노동자의 영혼과 눈물
        2008년 12월 11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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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식이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일하는 잘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엔진공장에서 생산된 엔진을 의장라인에서 차에 장착할 수 있게 서브작업을 해주는 일을 했다. 엔진서브라인은 의장 공장의 가장 앞쪽으로 전원 비정규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기식이는 그 라인의 키퍼였다.

    보통 사내하청업체들은 사장 밑에 소장, 반장, 조장, 키퍼 이런 식의 관리체계를 운영하니까 가장 말단 관리자였던 셈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기식이

    지금도 가끔 소주 한 잔 할 때면 기식이는 현대자동차가 중국 현지공장을 만들어 라인을 깔고 시운전을 할 때, 몇 달 동안 중국에 가서 중국 노동자들에게 일을 가르쳐주며 관리자 비슷한 일을 했었다며 자랑을 한다.

    중국의 음식과 추위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산업화 풍경보다는 주로 자기가 현대자동차의 그 많은 노동자들 중에 뽑혀서 중국으로 파견될 정도로 성실하고 일을 잘했다는 것을 뿌듯해하며 자랑한다.

    자랑할 만하다. 불량이 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멀리서 보고도 달려가 어떻게든 고쳐야 하고, 자기 일을 손 빠르게 할뿐 아니라 라인 속도에 못 따라오는 사람 일까지도 하고, 그러다가 화가 나면 주변의 노동자들을 다그치며 일 좀 잘하라고 성질내고, 그런 날은 소주도 사고, 원청 관리자들이라도 일을 대충하는 것을 보면 못 참고 한마디 해서, 극성스럽다는 평가를 듣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노동자.

    그런가하면 중국에 파견돼 일을 하고 온 뒤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주는 임금을 중간에서 하청사장이 몰래 떼먹으려는 걸 며칠을 사장실로 쫓아가 “내 돈 아직 입금 안 됐어요?” 보채서 기어코 받아냈던 기식이.

    “왜냐면, 차는 엔진이 생명이거든 그런데 엔진에 이상이 있어봐. 잘못하면 사람이 다친다니까. 그리고 일은 열심히 해야 재밌어요. 그래도 내 돈은 떼먹으면 안 되지. 그건 엄연히 내가 중국 가서 고생한 돈인데.

    받아야 할 임금이 더 있는 걸 내가 계산 못할 줄 알고 글쎄 그걸 안 주고 입 닦을라고 그러더라니까. 그 돈을 내주던 사장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똥 씹은 표정이더라고. 내, 참 지 돈 주는 거야? 현대자동차에서 나한테 주는 돈인데”

    노조 탈퇴가 시작될 때 가입한 기식이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후 한동안 기식이는 지회에 가입하지 않았었다. 초기 가입서를 썼던 조합원들이 탈퇴를 시작하는 시기 지회에 가입했고, 가입하면서는 엔진서브라인의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했다. 가장 앞에서 가장 힘차게 투쟁했던 기식이는 가끔 눈물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한꺼번에 지회에 가입하고 나니까 엔진서브장이 난리가 났었어요. 업체 사장, 정규직 관리자들이 일없이 와서 힐끗거리고, 소장은 와서 삿대질하고 욕하면서 지회조끼 벗으라 그러고, 그런데 내가 제일 화가 났던 게 뭔지 알아요? 2만 원이예요. 2만 원.”

    지회를 탈퇴하지 않으면 너만 다친다는 면담을 수차례하고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일하면 징계하겠다는 말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조끼 벗길 원하면 우리 지회장한테 가서 지침을 철회하라고 말해라. 나는 조합원이기 때문에 지회장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와서 다음 타임에는 엔진서브라인의 전체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조끼를 벗기는커녕 붉은 머리띠까지 두르고 일을 하는 바람에 원하청 회사 관리자들의 기를 질리게 했던 기식이가 눈물에 대해 말한다.

    “하루는 회사에서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또 뭔 면담을 하자고 하나, 머리띠 사건 이후에 한동안 아무도 귀찮게 안 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하나 가봤죠. 그랬더니 글쎄 나보고 다른 조합원들이랑 같이 지회만 탈퇴해주면 조장시켜주고 2만 원 더 준대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의 값

    아무 대답을 못하고 사장 얼굴만 쳐다보다가 나왔단다.
    “하여튼 일이 끝나고 혼자 술을 왕창 먹었어요. 술을 먹고 집에 가서 마누라 얼굴을 봤는데 눈물이 막 나와요. 마누라 끌어안고 울었어요. 내가 2만 원짜리다. 내가 2만 원짜리야. 이 말만 계속 하면서 울었어요.”

    5년이 흐른 후, 지금 동희오토에는 3만 원짜리 노동자들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조장 대우해준다고 3만원씩 더 받는 키퍼들.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동료들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사장과 약속을 한 키퍼들이 그 대가로 받는 몸값이 3만 원이다.

    작년 한해 880억의 매출을 올린 기아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의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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