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에는 왜 러브호텔이 없을까?“
        2008년 12월 05일 1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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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인 뮬랭호텔 근처 카페에서.

    에피소드 6.

    왜 러브호텔이 없을까?

    러브호텔 이야기가 나온 것은 프랑스의 호텔이 너무 단촐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묵었던 몽마르뜨 근처의 파리 호텔은 달랑 침대 두개가 놓여 있는데 99유로가 넘었다. 우리 돈으로 약 18만원 가량 하는 셈이다. 그나마 우리는 호텔 ‘사장님’이 한국인이고 진보정치 운동에 대한 애정, 노회찬 대표에 대한 관심 덕분에 싸게 투숙했지만 그 시설이란 게 냉장고조차 없다.

    오슬로에서의 호텔도 마찬가지이다. 냉장고는 물론 물조차 없는 작은 방이었지만 25만원 가량을 지급해야 했다. 특별히 우리가 묵었던 곳들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호텔이 이렇게 작고 시설이 ‘간단명료’한 모양이다.

    지방 강연이나 출장을 갔을 때 지역위원회에서 잡아 준 지역의 ‘장급호텔’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서비스 기능(월풀 기능, 100인치 TV, 냉장고, 에어컨, 다양한 조명, 넓은 티테이블)을 생각해보면 치약 칫솔도 주지 않는 외국의 호텔이란 것이 영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외국호텔에 대한 우리의 불만은 당연히 ‘러브호텔 예찬론’으로 이어졌다. 시앙스포 강연을 주관한 김신동 교수도 광주지역 모 ‘러브호텔’ 밀집지역을 국제회의 참가자들의 숙박시설로 활용했는데 그 평가가 ‘원더풀’이었다는 말을 보탰다. 그 싼 가격에 그만한 숙박시설을 제공받는 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눈치였다고 한다. 이름도 좋다. 국제적으로 다정다감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러브(Love~)가 아닌가!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그런데 갑자기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볼 수 있는 이른바 ‘러브호텔’이 왜 파리 거리에서는 보이지 않을까? 프랑스 사람들은 남의 눈을 피해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일이 없거나 결혼 전 연인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일까?

    답은 러브호텔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와 달리 파리의 시민들은 그런 관계를 자기 집에서 맺는다. 집에서 가능한 일을 굳이 돈 치러가며 찾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2006년 파리의 15세 이상의 남녀 인구 중 독립하여 혼자 사는 독신자 비율은 무려 49%라고 한다. 즉, 성인인구의 절반 가량이 독신자라는 이야기 이다.

       
      ▲ 노틀담 성당 근처 노상 가판대에서 판매하고 있던 독특한 문양(?)의 주사위. 이걸 발견하고 한참을 낄낄거렸는데, 이런 주사위는 어디에 쓰는 걸까? 활용법은 각자 상상플러스~

    기혼자 비율은 37%, 확률상 독신자끼리의 만남이나 독신자와 기혼자와의 만남이 ‘집 이외의 장소’가 필요한 기혼자들 사이에 정분날 확률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만일에 커플들끼리 정분이 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유학생 동포의 말은 확고했다. “그럼 그 커플은 깨지는 거다. 여기 사람들 그건 확실한 것 같다.”

    한참 러브호텔과 사회문화적 관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던 중 우리 일행의 일일 안내를 맡아 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출신의 한 동지가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여기도 있어… 내가 봤거든”

    ‘그럼 그렇지 왜 없겠어’하며 괜히 들뜬 나와 ‘그냥 보기만 한 거냐?’는 발목잡기식 질문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날 이야기는 정리되었다.

    한밤에 알콜 보급 임무를 띠고 호텔 밖으로 나갔다가 섹스숍이 즐비한 뮬랭루즈 근처의 바 앞에서 마주친, 나에게 ‘즐겨볼 것’을 권하던 아저씨나 스트립 바를 버젓이 공개 운영하는 오슬로 시내 밤거리에 매춘호객을 하던 아가씨들.

    서울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유럽의 낯선 풍경들과 서울의 넘쳐나는 유흥 문화들을 비교하면서 유럽, 혹은 사회복지국가 사회의 그 무엇도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봤다. 그들의 많은 것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절대부족의 처지이지만 말이다.

    에피소드 7.

    “그가 국회의원이었는지 우린 미처 몰랐네”

    이번 일정을 통해 나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MB식의 엉뚱한 영어몰입 교육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정도의 회화 실력은 꼭 필요하다는 각성이었다.

    국내 최고 수준인 노회찬 대표의 고급 정치유머가 통역을 통해 전달되면서 그 맛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각오했던 것은 물론, 일상의 대화에서 조차 갑갑함을 느끼는 수준은 단순 여행이 아닐 때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짙게 내리고 추위가 엄습하기 시작한 오슬로 거리를 돌아다니던 우리는(그래봐야 6시쯤이었다) 오슬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일군의 무리들이 횃불 비슷한 것을 들고 모이는 것을 발견했다. 수십 년 집회 시위 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이 이 무리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 집회가 우익들의 집회일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사회주의좌파당의 오슬로 사무실 입구의 당 마크와 그들의 선거전단지. 문화, 여성, 아동, 국제연대 등의 선거강령을 유권자들에게 전단지 형식으로 배포하는 모양이다.

    일단,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비에트 깃발이 보였다. 이곳 공산당인가 보다. 잠시 뒤 ‘사회주의청년동맹’이라는 현수막을 찾아낼 수 있었고 ‘사회주의좌파당’을 상징하는 ‘SV’의 문양이 든 깃발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좌파들의 ‘연대집회’인 모양이다.

    이때 이 집회가 무엇을 주장하는 집회냐고 확인해야 하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 다가왔다. 같은 좌파끼리 ‘연대감’도 느끼고 싶은데 그걸 서로 느낄 수 있는 영어실력이 되느냐가 중요한 순간이다. 우리는 과감했지만 그 집회장에서 오고간 수준의 대화라는 게 완전 단답형이었고 그들로서는 대놓고 반말짓거리를 하는 외국인을 만난 것이리라.

    단어와 몸짓으로 이어진 좌파들의 소통

    Good evening. We are come from Korea. We are socialist! What are you doing now?(문법에 안 맞는 표현도 그대로 놔뒀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socialist"라는 말에 그들이 얼굴이 밝아졌다. 오호~ 연대감이 꿈틀거린다. (여기서 "progressive"라고 말하면 진보가 아니라 우익으로 의심받는다. 그놈의 인종주의 극우정당의 이름이 바로 진보당이기 때문이란다)

    이 정도로 시작해 놓고는 그 다음부터는 단어와 몸짓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니가 들고 있는 플랑카드엔 뭐라고 적혀있냐?”고는 어떻게 물어봤을까? 간단하다. 플랑카드를 가르키면서 “What’s mean?"라고 했다. 이거 곰곰 생각해보면 완전 틀린 영어표현이다. 근데 알아듣는 게 신기했다.

    간간이 들리는 익숙한 단어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대답을 정리하면 “임금과 노동권에 대한 후퇴를 막기 위해, 의회에서 저지되어야 한다”였다. 그 이상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들리지도 않고 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일 박노자 교수에게 물어보면 된지 뭐~’

       
      ▲집회장에서 연사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좌파연대집회 참석자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한기가 옷속을 파고 드는 몹시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별 흐트러짐이 없어 보였다. 우리 같으면 소주 한잔 마시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을텐데…

    박노자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그날 밤 집회는 의회에서 논의 중인 ‘서비스 분야 개방에 대한 지침’ 통과를 반대하기 위한 집회라는 것이다. ‘지침’의 핵심 내용은 유럽연합 지역에 와 있는 동유럽 출신의 노동자들에게 ‘동유럽식 임금체계 적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말은 좋아서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라고는 하는데 결국 서유럽 지역에 비해 엄청나게 인건비가 낮은 동유럽의 노동력을 서유럽 지역에서도 그대로 적용시키겠다는 것인데 언뜻 생각해봐도 꽤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 뻔하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이 더 필요하다. 단순 임금 문제뿐 아니라 동유럽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활용하기 위해 자본측에게 다양한 편의가 제공되는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 나간 노르웨이 노동당

    먼저 최저임금제도가 사실상 붕괴되는 것일 테고 동유럽 출신 노동이민자들도 당장 취업에는 유리해도 몸은 고물가 지역에서 사는데 저임금 구조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사실상 버틸 수가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노르웨이의 저임금, 비정규,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이 올 수밖에 없고 노동권과 임금의 괴멸적 후퇴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 일이다.

    문제는 이 일에 대해 집권 노르웨이 노동당이 적극 찬성을 하고 통과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신 나간 태도에 노르웨이 우익정당들이 찬성하고 좌파들과 농민당은 반대하고 있는데 그날 밤 집회는 이 좌파들의 연대집회인 것이다.

       
      ▲ 엔스 쉬톨텐베르크 수상. 노르웨이 노동당 출신(사진=진보신당 게시판)

    그런데 왜 명색이 노동당인데 노르웨이 노동당은 이 정신나간 정책에 찬성할까? 박노자 교수의 첫 번째 설명, “노동당은 이제 진보정당이 아니다. 맛이 완전히 갔다. 현 총리의 아버지도 당수였다. 권력세습하는 셈이다.”

    두 번째 설명, “최대 지지세력인 노총의 핵심인 대기업 노조는 이 정책으로부터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는다. 서비스, 미조직 노동자들이 불리할 뿐이다.”

    뼈 아픈 대목이다. 노동계급이 단일화되지 못하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익집단화 했을 때 ‘노동자 정치세력’ 역시도 ‘대의’가 아닌 ‘이익’에 순종하는 타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뼈 아픈 사례인 것이다.

    지겹도록 이어지는 발언, 우리와 비슷

    사회주의좌파당은 연립정부에 가담하고 있으면서도 이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모양이다. 노회찬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그들은 연립정부의 구성원으로서 일상적인 갈등구조에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집회장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설픈 영어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대해 갖는 적극적인 관심에 흥미있어 하는 한 젊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동권이 대부분 그렇지만) 똑똑해보였고, 분명한 목소리에 자신감 있는 태도였다. 가슴에 SV(사회주의좌파당의 뺏지)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그쪽 간부정도로 알았다.

    그는 노회찬 대표에게 붙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이 집회에 대해 설명하고, 발언자들의 발언 내용에 따라서 이런저런 설명을 자세하게 덧붙이는 듯했다. 그쪽 집회도 우리랑 별 다를 게 없어서 발언자들의 발언은 지겹도록 이어졌고 발언자가 흥분을 하다가 말이 막혀 머뭇거리면 참석자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문화공연은 영 없는 듯했고 우리처럼 구호가 난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노르웨이 국회 앞 집회에서 함께 한 사회주의좌파당 소속의 현직 국회의원 하이끼 홀모스와 진보신당의 대표 노회찬의 사진. 노회찬 대표가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어서 참 아쉬운 것이 많았던 방문이었다. 현직 의원이었다면 사회주의좌파당의 차기 대표감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약속하고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가 준 명함을 받아 별 생각없이 주머니에 넣었는데(본들 뭘 알겠냐 싶어서였다) 나중에 다시 보니 그는 사회주의좌파당 소속의 노르웨이 국회의원이었다. 박노자 교수는 이 노르웨이 국회의원인 ‘하이끼 홀모스(Heikki Holmås)’에 대해 ‘주목할 만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SV가 내년 총선에서 대패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현 당대표가 물러나게 될 것이고, 하이끼 홀모스가 당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SV내 좌파여서 더 원칙적이고 분명하게 현안에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덧붙였다.

       
      ▲집회의 전체 장면. 약 100여명이 넘는 적은 수였는데 제각각 선전물을 하나씩 들고 나왔고 촛불대신 횃불을 들었다. 오른쪽 하단에서 하이끼 홀모스 의원이 노회찬 대표의 귀에 대고 집회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보인다.

    국회의원 홀모스는 우리에게 자신이 일정을 확인하고 국회의사당 내부를 안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불행히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에게 진보신당을 짧게 설명하고 그와 실컷 이야기 하고 나서도 우리는 그가 국회의원인지, 그가 어떤 정치적 지위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물론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그 밤에 만난 둥근 얼굴에 머리숱이 적은 한국에서 온 사람이 한국에서 제법 유명한 정치인이고 한국에서 자신들과 이념적 지향이나 걷는 행보가 (상대적으로) 가장 비슷한 정당의 대표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박용진 홈페이지 : http://www.gangbu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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