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국 온다, 재벌이 돈 내라
        2008년 12월 04일 04:39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미국 경제위기가 어찌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경제위기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지금 한국의 나쁜 경제 지표는 주로 미국 등 외국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지, 한국 안의 폭탄이 터진 것은 아니다. 외국의 경제위기가 한국의 경제 폭탄에 불을 당기고 있고, 곧 부동산가 대폭락에서 시작되는 연쇄 파국이 닥칠 것이다.

    우리 나라 부동산가가 높다, 높다 하면서도 그치지 않고 오를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근로소득, 사업소득이나 다른 투자보다 더 큰 벌이가 보장되다 보니 가수요가 끊이지 않고 몰린 데 한 원인이 있고, 그런 수요를 뒷받침할 만한 투자 대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이 두 요인이 사라진다.

       
      

    외환 수급난에서 은행 부실화까지

    외환 수급이 어려워지고 외국에서 빌려오는 외자의 이자율이 높아지면, 한국 은행들은 대출 이자율을 올리거나 자금 회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 1998년 지급준비율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퇴출을 경험했던 데다, 내년부터 강화된 지급준비율이 적용되게 되므로 은행들이 막무가내로 돈을 거두어 들여 쟁여두려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높아진 금리 부담이 부동산 기대수익보다 클 때, 값싼 매물이 쏟아질 테고, 대폭락이 시작될 것이다. 아마도 그 시점은 내년 봄 이사철에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시장에서 확인된 직후인 여름께가 될 것 같다. 저축에 의존하는 실수요의 소형주택 가격은 낙폭이 비교적 작겠지만, 대출에 의존하는 투기성 대형주택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떨어질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은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부동산가의 폭락이 불러올 가계 파산과 부실채권 확대, 은행 부실화는 한국 경제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경제 파국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위기보다는 1990년대 초 스웨덴의 파국과 더 비슷하다. 파생상품이 아니라 시중은행이 직격탄을 맞게 되는 점에서도 한국은 스웨덴과 비슷하다. 당시의 스웨덴도 금융개방과 민영화로 소비자금융이 급증하고, 부동산 부양 정책을 펴다 결국 파국을 맞았다.

    한국의 근로자가구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89%에 이르고, 시장 조정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파국은 스웨덴의 수십 배 규모일 것 같다.

    물론 이런 파국 행진은 이명박 정부의 부양 정책에 의해 다소 연기되거나 모면될 수도 있다. 그리고 획기적 예방조치를 통해 아예 회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설과 금융에서 묻지마 투기를 계속하고 있는 현 정부의 기조가 계속되는 한, 위기 회피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공공사회서비스 통한 시장 조정 필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파국에 임해서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대책은 공공사회서비스 분야의 확대다. 자동차, 조선 같은 대규모 제조업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고, 판매서비스업의 몰락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경기 조정효과를 낳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는 공공사회서비스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공 영역을 늘릴 것인가는 토론하면 된다.

    그리고 공공요금도 인하해야 한다. 준조세 격인 공공요금 부담을 줄여줘야 가계 지출과 내수를 살릴 수 있다. 많은 돈이 들겠지만, 재정 적자라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협박처럼 위험한 실재가 아니라 장부상의 허구라는 사실은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미국 경제가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국가 재정 외에도 엄청난 규모의 여윳돈을 가지고 있다. 166조 원에 달하는 10대 재벌의 잉여금이 바로 그것이다. 원리원칙대로 따지자면 재벌의 잉여금은 재투자에 쓰여야 하는 돈이다. 그러나 그동안 그리 쓰이지 않은 것이 재벌 잉여금이다.

    재벌 일족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주식소각에 낭비되거나, 비업무용토지 매입을 통한 부동산 투기에 쓰이거나, 돈놀이하는 데 쓰였다. 그리고 지금은 금산분리 폐지 후 금융업 진출에 쓰려 한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에서 재벌의 금융업 진출은 삼성자동차나 현대전자 꼴 되기 십상이다.

    166조 원 모두 뱉어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기업의 유지와 확대에 필요한 어느 만큼은 제하고 나머지를 사회에 투자하는 것은 그동안 재벌이 누린 특혜에 대한 보상이고, 계속 한국에서 장사하기 위한 최소 보험이다. 경제가 나아진 후에 일정한 수익률을 보태 거두어 갈 수도 있다.

    방법이 없다는 둥 핑계대지 말라. 총수 한 명 감옥살이 막으려 1조씩 갖다 바치던 옛 일을 보면, 지금의 위기에서 재벌이 수십 조 내놓지 말라는 법 없다. 사회적 합의라는 유럽식 방식을 쓸 수도 있고, 대통령 긴급재정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그도 안 되면, 구속과 헌납이라는 구식 방법이라도 쓸 수밖에.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