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라의 자유를 許하라"
        2008년 12월 04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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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좀 그렇지만, 나는 ‘삐라돌이’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선생님이 졸업장을 건네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기표야 삐라 좀 뿌리지 마라!"

    "학생회장은 직선제로 해야 하고 교장선생님은 그만둬야 하고…" 뭐 그런 삐라를 여러 번 뿌리다 걸려서 겨우 졸업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당부차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철들고 난 이후의 내 삶에서 삐라는 좋은 친구였다. 내가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은 삐라의 자유가 사상의 자유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혼자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은 어차피 누구도 침범이 불가능한 자유다. 이것이 ‘삐라’로 외화될 때만 우리는 권력 기관과 사상의 자유를 다툴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삐라의 자유였던 것이다

    나는 도대체 무슨 권리로 한국진보연대 회원들이 북한으로 날리는 삐라를 몸으로 막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북한이 ‘딴 나라’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동네에 삐라를 뿌리는 것에 대해 그다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물론 국가가 주도하는 것은 아니지만)나는 이것을 일종의 외국에 대한 내정 간섭으로 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걸 몸으로 막는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민족주의자들이 볼 때는 남북한이 통일을 준비하는 하나의 특수 관계이기 때문에 이 상황은 더 이해가 안된다.

    우리 민족의 일원이 우리나라 땅에 삐라를 뿌리는 것은 엄연히 국내 정치활동이고, 언론 출판에 의한 의사표시의 자유에 해당한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것을 막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반론이 있다면 같은 수단 즉 똑같이 언론 출판 활동을 통해 반박했어야 했다.

    자기는 틈 만나면 정신이 사납도록 온갖 삐라를 다 뿌리고 돌아다니면서 정작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삐라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내가 뿌린 삐라는 ‘로맨스’고 남이 뿌린 삐라는 ‘불륜’이란 말인가?

    진보연대의 어리석은 행동

    더군다나 한국진보연대의 이 같은 어리석은 행동은 오히려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가서 몸으로 막으면 북한에 대한 삐라 살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바보 같은 판단은 누가 한 것인지? 정말 코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다. 이것은 HID가 진보신당에 와서 폭력을 휘두르면 진보신당이 찌그러질 것 이라고 생각한 것과 똑같은 발상이다.

    한국진보연대인지 뭔지의 이번 조치 덕분에 북한에 삐라 뿌리는 단체는 전국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잠자코 있던 보수단체들은 오히려 더 달라붙었다.

    내 생각에 가장 좋은 대응은 친북단체들이 같이 삐라를 뿌리는 것이다. "북한동포 여러분 힘내세요. 김정일 지도자는 잘하고 있습니다. 남한에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뭐 그런 삐라를 같이 뿌리는 것이 정답이지 물리적 충돌을 동원하는 것은 앞뒤가 뒤집혀도 한참 뒤집힌 것이다.

    나는 한국진보연대의 이번 조치를 보며, 말로 하다가 지겨우니까 되도록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옛날 꼴 보수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삐라의 자유’는 사람이 태어난 기념으로 사회가 모든 인간에게 건네주는 가장 중요한 자유다.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자유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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