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공안당국의 한심한 '닭짓'
        2008년 12월 03일 02: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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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북한방송은 지난 2005년 12월 대한민국에서 개국한 민간대북방송 제1호로서 개시 이후 2006년 상반기까지는 자유북한방송, 자유조선방송 등의 프로그램 송출을 대행하는 대북방송 중계 사업자로 주된 기능을 하였으나, 2006년 말 방송 시간을 1시간으로 확대한 이후부터는 중계 사업을 중단하고 자체 제작한 방송과 외부 제공의 프로그램 등을 구성, 독자적인 방송을 북한을 향해 내보내고 있다.

    필자는 현재 ‘북한민주화’를 위한 사업을 하고 있는 과거 운동권 출신 인사로, 남북 공안기관들의 시대에 뒤진 부적응 사태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2008년의 공안사건 두 가지

    2008년 8월 두 가지 큰 공안 사건이 터졌다. 하나는 소위 탈북자 위장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 사건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얼핏 보면 직접적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남북한 공안 기관들의 부적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나씩 검토해 보도록 하자.

       
    ▲ 지난 9월 10일 진행된 첫 공판에 모습을 드러낸 원정화씨(사진=SBS 뉴스보드)

    원정화 사건은 여러 가지 의혹으로 계속 시끄럽다. 탈북자들조차도 저게 무슨 간첩이야 하며 믿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을까?

    간첩 같지 않은 간첩의 발생. 그 근본적 이유는 원정화가 전통적 의미의 간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첩은 북한의 노동당 대외연락부 등에서 파견하는 데 반해 원정화는 국가보위부에서 파견했다고 한다.

    북한 보위부는 한국의 국정원과 기능이 좀 다르다. 국정원은 간첩을 보낼 뿐만 아니라 간첩을 잡는 기관 두 역할을 다 한다. 하지만 원래 북한 보위부는 간첩을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라 북한에 거주하는 간첩을 잡는 기관이다. 북한에는 이 두 기관이 전통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그럼 왜 간첩을 잡는 기관에서 공작원을 남한에 파견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보위부가 왜 간첩을 파견했을까?

    정부 발표를 종합해 보면 원정화의 1차적 목표는 남한의 탈북자와 연계된 북한 내 주민 색출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남한의 탈북자와 연계된 북한 주민은 북한 보위부 입장에서 볼 때 간첩이다. 보위부 역할은 북한에서 남한과 내통하는 사람들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남한의 탈북자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탈북자를 통해 그들 정보를 역추적하기 위해 원정화가 내려온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 임무 외에 황장엽 같은, 국가보위부 입장에서 가시 같은 존재에 대한 소재 파악도 추가 임무로 부여 받은 것 같다.

    즉 원정화는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자가 1만 6천 명을 넘어서게 되고 이들 탈북자들이 북한 주민과 연계되는 북한의 새로운 안보 환경에서 생겨난 신종 간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신종 간첩은 전통적 간첩이라면 보안을 위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과감히 진행한다.

    간첩이라고 보기엔 너무 엉성한 활동들을 말이다. 가령, 군에 가서 친북 강연을 한다든지, 북한 제작 CD를 틀어주는 것은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전통적 간첩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한국에서 간첩 활동을 하면서 고향인 북한 온성에 있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두 번씩이나 출국한 것도 대담함을 넘어 무모한 짓이다.

    원정화가 이런 무모한 활동을 한 이유는 제대로 된 간첩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북한 공안 기관들 사이의 역할과 의사 소통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원래 보위부는 대남 간첩 양성 기능이 없다. 따라서 간첩 훈련 전문 프로그램도 없다. 그럼에도 보위부는 탈북자 1만 6천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공작원을 파견해야 하는 고충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보위부에는 체계적인 공작원 훈련 프로그램이 없기에 원정화 같이 몸뚱이 하나만 믿고 내려온 무모한 공작원이 탄생한 것이다.

    그럼 보위부가 대남 간첩 파견 기관인 대외연락부에 부탁해서 간첩 훈련 교육을 위탁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런 의문은 여타 국가와 근본적으로 다른 북한 정부 구조를 이해 못하는 사람에겐 당연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여타 국가의 정부 구조와 달리 기관들끼리 횡적 연계가 금지되어 있다. 김정일이 정권 유지와 반김정일 세력 조직화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 기관 사이의 수평적 협의를 철저히 금지한다. 철저히 수직 통제만 유지한다. 그리하여 보위부가 당 대외연락부에 직접 의뢰하여 공작원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은 수령님의 방침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보위부 입장에서는 탈북자와 연계된 북한 주민들은 갈수록 많아지니 이를 잡아야겠는데 그렇다고 직접 공작원 훈련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짜고 교육시키는 데는 너무 힘드니 이러한 무리수가 나온 것이다.

    아무튼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위부 간부들이 경질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새로운 첩보 환경에서 북한 공안 기관들을 어떻게 구조조정해야 하는지 내부 논의가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있어야 되는데 세상 밖에 나온 사노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안기관이 북한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노련 사건을 보면 남한의 공안 기관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여전히 시대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오세철 교수가 주도한 사노련이라는 조직은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다. 20세기 초 레닌이 들었던 기치를 21세기 선진국 문턱에 선 한국에 그대로 들이밀고 있다. 한때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좌파를 보수 좌파, 수구 좌파로 나눈 적이 있다.

    1960~70년대 복지국가형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좌파가 보수 좌파이고, 스탈린적 또는 주체사상적 국가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좌파를 수구 좌파로 불렀다.

    그럼 사노련은 어떤 좌파일까? 필자가 볼 때 천연기념물적 좌파이다. 즉 박물관에 있어야 할 존재가 세상 밖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사노련은 여전히 소비에트 계급의 민병대적 사고를 하고 있다.

    또 의회적 방식이 아닌 여전히 ‘혁명적’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혁명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이들이 혁명을 하기 위해 무장 투쟁을 준비한 흔적도 전혀 없어 보인다. 즉 사노련은 80년대에 수없이 즐비했던 혁명적 맑스레닌주의 사상 서클 정도의 지극히 아마추어적 조직이라는 것이다.

    사노련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현재 오세철 교수를 비롯한 사노련의 주요 회원들은 국가보안법 7조 이적단체 구성 및 이적 표현물 배포 혐의로 구속되었다. 즉 이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시대착오적이지만, 처벌해서는 안 돼

    국가보안법에 적(敵)이 누군인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감대이다. 그러면 사노련과 김정일 정권은 어떤 관계일까? 80년대 사회주의 세력 중에서도 북한을 보는 시각은 뚜렷이 갈려 있었다.

    북한을 동지로서 연대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북한 정권을 노동계급의 적으로 규정하여 싸워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도 소수 있었다. 사노련은 북한 정권을 자신들의 동지가 아닌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노련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1930년대 이후 옛 소련, 동유럽,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사회체제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반(反)노동자계급적 사회체제로, 노동자 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체제로 규정한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 사노련은 홈페이지 소개글을 통해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1930년대 이후 옛 소련, 동유럽,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사회체제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반(反)노동자계급적 사회체제로,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체제로 규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무리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북한을 적으로 놓고 있는데 국보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그리고 국보법 제1조 2항에도 국보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주 엄격히 적용되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 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미국 사법 역사에서도 사노련과 같은 소위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어떻게 법적으로 다루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논란 거리가 되었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현재의 남북관계처럼 전시가 아닌 장기 대치 시기에는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되 폭력을 동반한 행동의 자유는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로 상충되는 판례가 있는데, 하나는 1951년 유진 데니스(Eugene Dennis) 건이고 다른 하나는 1957년 예이츠(Yates) 건이다.

    유진 데니스는 미국 공산당 총비서로서 스미스법(한국의 보안법과 유사한 법)에 의해 미국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하려 한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본인은 부인했지만 구공산당 동료들이 데니스가 폭력을 통한 정부 전복을 옹호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유죄 인정을 받았다.

    "표현의 자유 Yes, 행동의 자유 No"

    그러나 1957년 예이츠 건은 전혀 다른 판결이 나온다. 예이츠 건은 오세철 교수의 사노련 건과 같이 14명의 미국 공산당원들에 대한 판결이다. 이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폭력 사용을 선동(incitement)하는 것과 폭력 혁명 개념을 학습(education of concept)하는 것을 명백히 구분한다.

    즉 폭력 사용을 선동하고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처벌되어야 하지만 단지 마르크스 레닌 등 폭력혁명 개념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14명의 공산당원들은 일종의 학습 모임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전원 무죄 판결이 나온다.

    위의 미국 판례를 보면 표현의 자유와 공공질서 보장은 항상 긴장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로 올수록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에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다분히 보인다.

    사노련도 미국 공산당처럼 아주 과격한 혁명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고는 있으나 폭력을 쓰거나 무장을 준비한 증거가 전혀 없다. 즉 사상 표현은 했으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두 가지 점에서 사노련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노련이 북한을 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에서 이적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노련 정도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용인될 수 있지 않느냐는 하는 점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를 표방하고 있다. 선진화는 단지 1인당 GDP의 성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상, 문화의 선진화도 아우르는 개념이다. 사상, 문화 선진 국가들은 예외 없이 사상적 표현의 자유에 관대하다.

    한국도 서로 용인하기 힘든 사상이라도 물리적 행동으로 표출되지 않는 이상 관용을 베푸는 미덕을 길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8월 28일 서울중앙지법의 사노련 관계자 7명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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