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불 폐지라니
        2008년 12월 02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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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에 대한 제한을 충분한 사전예고 없이 폐지할 경우 고등학교 교육현장의 혼란과 사교육비 증가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불과 3개월 전에 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2010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을 발표하면서 보도자료에 언급한 문구입니다.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등 이른바 ‘3불’이 폐지되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충분한 사전예고 없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11월 30일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께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기여입학제는 모르지만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실시는 대학 자율로 둬도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셨나 봅니다. ‘사전예고’해야 하니까요.

    이왕이면 회장단이 말씀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그래도 발언자는 다소 부적절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박종렬 사무총장께서는 지방 국립대 기획실장 출신이고, 지방대는 3불 폐지의 은총은 커녕 저주만 받을 수 있으니까요.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를 실시되면, 아무래도 소위 일류대가 성적 좋고 돈 많은 학생들을 지금보다 더 쉽게 ‘싹쓸이’하게 되겠죠. 당연히 지방대나 서열 낮은 대학들에게는 불이익만 돌아갈 겁니다. 아, 국물효과(trickle down)로 인해, 남은 국물은 조금 있을 수 있겠네요.

    그래서 박종렬 사무총장의 입에서 3불 이야기가 나온 건 다소 아이러니합니다. 물론 대교협 사무총장이라면, 출신학교와 상관없이 공명정대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대교협의 발언 창구가 사무총장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교협 회장도 있고, 대교협 부회장이자 사립대학교육협의회 회장도 계시니 말입니다. 마침, 이 분들 모두 서울의 주요 사립대 총장으로, 3불 폐지의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받으니까요.

       
    ▲ 손병두 회장(서강대 총장), 박종렬 사무총장, 노동일 위원장(경북대 총장)을 비롯한 5명의 위원(대학 총장) 및 1명의 자문교수가 참석해 고등교육법 개정안 주요쟁점 등 대학자율화를 위한 여러 방안들에 대한 논의하고 있다 (사진=대교협)
     

    이기적인 욕망 앞에서는 사회도 없겠죠

    박종렬 사무처장이 발표한 2010학년도 대입전형계획 주요 사항에 따르면, 이른바 ‘기회균형선발’은 농어촌 학생 12,785명, 전문계고교 출신자 12,313명, 생활보호대상자 및 차상위계층 3,980명 등 도합 29,078명입니다. ‘입학정원의 9% 이내’가 기회균형선발제 기본계획이나 대교협의 기존 입장이었는데, 8.48%로 간신히 맞추셨군요.

    그런데 더 늘릴 수는 없었을까요. 이명박 정부가 대학입시 업무를 넘겨주고 대입자율화 정책을 추진하는 까닭에, 대학과 대교협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한 학생과 부유한 환경에서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받은 100점을 똑같은 100점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UCLA 입학부처장의 발언을 우리의 대학도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대학들은 3불 폐지 발언을 주로 하는군요. 11월 21일 사립대 총장들의 세미나 자리에서는 “대학본고사는 대학별 평가방법 개발로, 고교등급제는 개인 및 고교의 특성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30일에는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이 “서울에서 2010학년도부터 고교선택제가 시행되는데, 이 제도로 진학한 아이들이 대입을 치르는 2012년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고교등급제 금지 방침이 무너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권한을 가지자 마자, ‘싹쓸이’ 욕망만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사회적 책임감이나 도덕성 등의 덕목은 사치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초중고등학교가 더 황폐화되어도, 사교육비가 더 많이 늘어나도, 경제력이 없는 집 아이에게는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아도, 이기적인 욕망 앞에서는 모두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발등의 불부터 끄시죠

    고려대는 고교등급제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대학의 수시논술은 본고사 논란 중입니다. 대교협은 일단 발등의 불부터 끄는 게 순서일 겁니다. 내년 2월 이후에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학생의 피해를 생각해서라도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겠죠. 물론 회원대학과 학생 중에서 누구의 눈치를 볼 것인가는 대교협의 ‘자율’이지만 말입니다.

    3불도 비슷합니다. 대교협은 43개 국공립대학과 158개 사립대학 등 전국 201개 4년제 대학을 회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불 폐지에 대해서도 모든 회원 대학들이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의 주요 대학들과 지방대 사이에는 온도 차이가 있을 겁니다. ‘대학자율’의 취지에는 공감하겠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생각들은 다를 겁니다. 당장 대교협 내에서 입시의 기본 사항과 계획 등을 협의 및 조정하는 ‘대학입학전형위원회’도 합의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위원장과 대학 쪽 위원이 11명인데, 수도권과 지방이 각각 5명과 6명이니까요.

    그러니 3불에 대해 사회적으로 발언하기에 앞서, 대교협 회원대학의 입장부터 조율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 안에서만’ 일류인 대학들의 이기적인 욕망부터 조정하는 게 먼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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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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