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유명인사 수원의 색소폰맨 '전영호'
        2008년 11월 29일 0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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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원이 된 사람들은 국민 가운데 극히 일부입니다. 진보정당 당원은 더 소수입니다. <레디앙>은 진보정당의 보통 당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당원들’이라는 꼭지를 만들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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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가요도 좋지만, 대중가요 한 곡조 뽑으면 다들 좋아해요. 촛불 때 내가 아는 레퍼토리 다 동원해서 즐겁게 했지요"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에서 조그만 꽃집을 운영하는 전영호씨(44)는 올 여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시위 현장에서 색소폰 하나로 이름이 알려진 동네 유명인사다.

    "민중가요도 좋지만…연주는 대중가요로"

       
     ▲색소폰을 연주하는 전영호씨.(사진=변경혜 기자)
     

    검은색 썬글러스를 쓰고 분홍모자에, 밤무대에서나 익숙한 화려한 의상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운동권 출신들이야 색소폰연주에 맞춰 옛 추억을 되살리는 민중가요에 취해보고도 싶었겠지만 광장에 나온 ‘이웃’을 위해 ‘사랑이여’ ‘만남’ ‘마이웨이’ 등을 일부러 연주했다는 그는 올해로 민주노동당 3년차의 평범한 당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촛불의 위력일까? 전씨는 이젠 당 행사는 물론 지역방송과 신문에도 소개될 정도가 됐다.

    촛불처럼 의미있는 행사에선 트럼펫 연주자이지만 꽃집 사장님으로선 꽃바구니와 샴페인에 음악을 곁들인 ‘사랑을 전하는 환상의 이벤트 기획자’라고 전씨는 말한다.

    때론 삐에로 복장으로, 때론 밤무대 연주자처럼 그의 무대의상은 참 화려하고 다양하다.

    꽃집 화원엔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그러는 사이, 그의 수원꽃화원은 금새 음악회장으로 변신했다. 화원 가운데 놓인 나무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즈넉한 의자에는 부인 지은영씨(40)가 기타를 갖고 자리를 같이하고 옆집화원에서도 구경나왔다. 따뜻한 국화차의 온기도 있고 아프다는 검둥이와 누렁이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작은음악회에 집중했다.

    전씨가 색소폰을 가방에서 꺼내며 그의 레퍼토리인 ‘사랑을 위하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볼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힘줄은 입술을 통해 멋진 리듬을 타고 전해지기 시작했고 이어 부인 지씨도 기타반주에 맞춰 ‘나같은 건 없는건가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막걸 리가 없을 뿐이라 게 전씨 부부의 설명. 하지만 곧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전투기 소음으로 음악회는 중단돼야 했다. 한 대가 지나가면 또다른 전투기 소음이 이어졌다.

    수원시에서 나고 자란 전씨는 전투기소음문제에 대해 "매일 이 소리를 듣고 있지만 나도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데 많이 시끄럽죠"라고 물으며 "우리 아이들은 이런 소음 없는 곳에서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한다.

    전투기는 왜 그리 귀를 찢어대는지

    "사실 저는 가방끈이 짧아서 거창한 진보논리는 잘 모르겠어요"라며 말을 이은 그는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이런 소음이 없는, 복지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당이 만들어 갈 거라고 믿습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전영호씨와 그의 아내 지은영씨.
     
     

    분위기를 전화시켜야겠다며 전씨는 민노당 당원이 됐던 일들을 찬찬히 설명해준다.

    "처음에 꽃집을 수원시위원회가 있는 수원성 북문 쪽에 가게를 냈었지요. 사실 그때는 내 아내가 그 근처 학원의 강사로 일 할 때여서 자연스레 민노당의 주문도 받게 되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접하면서 수원토박이 친구들도 만나게 되고, 민주노동당이 말하는 서민을 위한 정책들이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됐지요.

    우리나라 정치는 너무 심각하잖아요? 오죽했으면 ‘가장 더러워서 못먹는 회가 국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물론 생활에 쫓겨 당비 내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만, 민노당이 반드시 바른 정치를 만들어갈 거라고 확신합니다"

    늦깍이 대학생활하며 시작한 색소폰

    색소폰을 어떻게 배우게 됐냐는 질문에 전씨는 "제가 뒤늦게 대학생활을 했지요"라며 텃수염을 만지작 거리며 웃더니 "물론 저처럼 쉰대학생들도 있었지만 20대부터 3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도 있었고 그래서 ‘즐거운 캠퍼스생활을 해보자’ 싶어서 동아리를 물색했는데 그때 눈에 확 들어온 게 색소폰동아리였지요. 사실 그리 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지요"라고 말한다.

    그는 장안대 체육학과 04학번의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옆에 있던 부인 지씨가 남편의 일취월장 색소폰 연주실력을 설명했다.

    "이 사람이 색소폰을 처음 배우면서 학교 운동장으로 자꾸 불러내는 거예요. 첫날 갖은 폼을 다 잡고 연주한 게 ‘학교종’이었어요. 전 코웃음을 쳤죠. 저는 ‘언제까지 하나’하고 지켜봤는데, 그러더니 ‘에델바이스’를 연주하고 나중엔 ‘사랑을 위하여’를 연주해주는 거예요. 좀 눈물이 글썽거렸어요. 그리고 애정관계도 고기압이 흘렀고, 지금은 동호회활동도 열심이죠"

    꽃집 매출 격감

       
     
    ▲ 전영호씨가 자신이 연출한 이벤트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씨는 대학졸업 후 지역의 ‘한울림색소폰동호회’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동호회는 일종의 음악봉사단체다.

    노인정이나 복지단체를 찾아 연주회를 하기도 하고 일년에 한번 도청 주변에서 하는 벚꽃축제에선 단골연주단체다.

    전씨는 "부인을 위해 연주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데요. 꽃집하다 보니까, 우리나라 남자들 너무 무드가 없는 거예요. 너무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즐겁게 생활해야죠. 제 신조는 즐겁게 살기랍니다"라며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경기가 안좋으니까 꽃집부터 문닫게 생겼다"고 울상을 짓기도 한다. "매출이 작년보다 50%는 줄었다"는 그는 "이미 서민들은 외환위기때보다 더 어려게 생활하고 있는데, 꽃은 아직도 사치라는 인식이 많아서인지 가장 경기를 많이 타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진보정치는 서민들에게 희망주는 거죠"

    하지만 그는 "그래도 인생은 즐겁게 살아야죠. 그럴라면 저 처럼 뭔가 변화를 해야 하는데, 용기도 필요하고, 사실 제가 수염을 기르는 데도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를 거"라고 넌스레를 떤다.

    전씨는 "민주노동당도 그렇게 용기를 내고 활동하고 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서민들이 용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진보정치는 서민들에게 희망주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는다.

    전씨는 더 말을 했지만, 또 전투기소리에 대화는 끝을 맺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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