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소리는 승리하였다"
        2008년 11월 28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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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 그들의 최대의 치적은 당선되었다는 사실에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명박 최대의 치적은, 길게 가보지 않더라도, 온 국민을 투사로 적어도 급격히 정치의식화된 세력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부세는 위헌이고, 간통죄는 합헌이다. 헌재의 이 두 판결은 이명박 시대를 간결하게 상징한다.

    맑스가 말했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란 말은 남근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조차 남근숭배, 가부장적인 가치에 휘둘리고, 두둔하며 살아가게 하는 현상까지도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적당한 수준의 여성비하 발언을 가끔씩 씹어주는 것이 마치 입당조건이라도 되는 듯, 의원들이 번갈아가며 저급한 성의식을 노출하여 우리의 머리를 띵하게 해주던 한나라당이 여당으로 재림한 이후, 한국의 양성평등 지수는 급전직하하는 주가지수 만큼이나 현기증 나는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결혼’만이 유일하게 이 사회가 제도적, 관습적으로 인정하는 한 커플의 결합방식이라면, 이 역겨운 수준의 남근주의사회에서! 그 결혼이란 제도가 옴팡 남성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라는 건 따져보지 않아도 명백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제도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도, 재산도 다 빼앗기고 옥에 갇혔다

    얼마 전 그들의 이혼과 관련한 선고에서 아이 양육권을 아비에게 건네야 하고, 오로지 그녀 혼자 구축한 재산의 절반을 그 아비에게 주어야 하며, 양육비도 일정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재판부는 내린 바 있다. 거기에 이어서, 오늘은 옥소리에게 이 너덜너덜한 결혼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를 ‘사랑’을 하였다는 이유로 재판부는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옥소리가 굳이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았어도, 그 동안 번 돈을 모조리 유흥가에서 탕진하고, 그도 모자라 빚까지 질 정도의 남자가 완벽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 성매매의 촘촘한 그물망을 얼마나 편리하고, 풍요롭게 누렸을지는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그녀의 변호사는 그 명백한 사실을 법정에서 입증하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맞고소를 하지 못했는지 의문일 뿐이다.

    사실 간통죄같은 법이 있는 나라에서, 그토록 동네방네 구석구석 잘 발달한 매춘의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건, 엄청난 모순이다. 마누라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나라 기혼남의 절반 정도는 죄다 감옥에서 한동안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많은 감옥을 짓느라고 한동안 건설업계가 호황을 누릴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매춘이 무지하게 발달한 이 가부장제의 마눌님들이 그 정도로는 지아비를 감옥에 쳐넣지 않는다는 상식(?)에 지독하게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다.

    종부세가 위헌임을 헌재가 선언하던 날 미네르바가 대한민국을 포기하였던 것처럼, 이 나라의 여성들은 옥소리의 징역을 재판부가 선고한 어제, 저 썩어빠진 이 나라 사법부의 면상에 피가 흥건하게 잠긴 생리대를, 구멍난 스타킹을, 닳아빠진 하이힐을 날렸어야 했다.

    여전히 남편이 바람 핀다고 자기도 바람 피는 건 잘 한 일이 아니라는 투의 이문열이나 좋아할 댓글을 남기는 아줌마(혹은 아가씨들)도 여전히 많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 도시 빈민으로 추락하는 일만 남은 세입자들이 재개발이란 말만 믿고, 한나라당 찍어주는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혼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후련하다는 옥소리는 결국 이 싸움에서의 승자이다. 그녀는 그토록 어리석고 못난 남자를 만나서, 남편이란 울타리 아래서 화초처럼 지내지 못하고 강인하게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했고, 아무 것도 지킬 것이 없는 결혼이라는 허물만 남은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 채 사랑을 만난 죄로, 간통죄의 허구를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 지난 27일 옥소리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나 당신에게 이렇게라도 벗어날 수 있어서 이젠 참 행복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올렸다. 옥소리는 "물론 앞으로 가야할 길이, 남아있는 길이 그리 순탄치 않다는 것도 알아..하지만 그동안 아프게 힘들게 살아온 11년간의 긴 세월에 비하면~이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이건.. 내가 잘 견뎌내야 할 또 다른 내 몫이겠지"라며 최근의 심경을 고백했다.

    세상에 눈을 뜨고, 사랑을 얻다

    그것으로 그녀는 이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의 한 귀퉁이를 밟게 된 것이다. 김부선이 대마초 때문에 세상의 거대한 모순에 눈 뜨게 된 것처럼.

    그리고 치욕스런 법정에 서서 “그녀와의 사랑은 운명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증언할 수 있었던 사람과 잠시라도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또 승자이다. 그 남자의 증언은 이 질퍽한 전쟁터에서 잠시 울려퍼진 맑은 음악소리 같았다.

    이 나라의 지랄같은 법과 재판부가 무엇이라고 하든 또 어떤 판결을 내리든,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그대로 세상에 쏟아내고, 그녀가 원하던 사랑을 했고, 또 바라던 이혼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물론 대단한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빛난다. 눈물을 쏟아냈을 지언정, 재판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던, 김민석의 악어의 눈물과는 다른 것이었다.

    번 돈을 술과 여자를 사는 데 탕진하고, 십여년 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던 마누라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 사실을 꼬투리 잡아, 한몫 잡아 챙기는 박철은 그의 너절한 인생을 한 번 더 심하게 구겼을 뿐이다. 슬픈 건 그가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저 좀 못난 놈일 뿐이란 사실이다.

    그녀의 잘못은 진작 그런 인간과 이혼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녀가 아니면 먹고 사는 일조차 힘들었던 박철이 이혼을 한사코 거부했었기 때문이었기에 이렇게라도 이혼하게 된 게 기쁘다는 그녀의 고단한 어깨는 더 당당해 보인다.

    수천억씩 탈세를 해도 몇 년째 어쩌지 못하고 대책없이 그냥 보고만 있으면서, 한 여자가 사랑을 나누었다고 감옥에 가두는 그 잘난 법. 국가권력을 지탱하게 한다는 이 나라의 법이 얼마나 코미디인지. 이 어처구니 없는 악법들에 우리 삶의 질서를 맡기는 일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근엄한 표정으로 판결을 내리는 판사, 혹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대단한 권위를 지닌 듯 거만한 목소리를 내는 헌법재판소는 또 얼마나 구린 인간들인지. 우리가 이명박 시대를 통해, 세상의 허구적 권위들의 위선에 대해 하나 하나 다 깨달아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명박은 건국 최대의 치적을 쌓은 것이다.

    똥으로 가득찬 가부장 사회

    난 결혼을 하겠다는 주변의 여자 친구들에게 가급적이면 하지 말라고 하고, 그래도 해야 한다면 혼인신고는 하지 말라고 절박하게 조언한다. 결혼이 사랑하는 두 사람의 함께 하겠다는 서약이라면 둘 만의 마음 이외에 그 서약을 지탱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미 오래전 서로의 사랑도 믿음도 증발해버린 커플이(살다보면, 그런 날이 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법적인 구속으로 인해 마음과 법적인 서류 사이에 괴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그 괴리는 갈등과 파괴와 증오와 피눈물을 낳고 만다.

    물론 법을 양성평등하게 만드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까지 여전히 지배계급, 성으로 보자면 남성들을 위해서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이 법체계에 굳이 내 두 발을 덥썩 담글 필요는 없다. ‘결혼’은 혼인법이라고 하는 법에 의해서 나의 성생활을 감시당하게 하겠다는 증서나 마찬가지다.

    법은 언제나 강자를 위해서만 작용해왔다. 소위 변호사라는 직업이 있고, 그들의 역량, 또 그들을 살 수 있는 역량이 재판의 결과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은 사법시스템 자체가 개그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혼하지 못하여 안달하는, 구박받는 여인들이 있다면 당신들을 구박하고, 걱정하는 그들이 단지 지배이데올로기를 아무 생각없이 반복해 대는 원자화된 <조선일보>라고 생각하고, 저항하시기 바란다.

    사랑하고, 너무 사랑하여 낮이고 밤이고 함께 있고 싶으면 그리 할 일이다. 그리하여 사랑이 잉태한 생명이 둘 사이에서 생겨나거든 고맙게 키울 일이다. 가급적 두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하여.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는 데, 혼인증서가 해주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혼인신고 없이 사는 일, 그것은 인륜을 거스르는 일도 아니고, 무책임한 일도 아니다. 단지 똥으로 가득찬 가부장 사회의 기틀을 야금야금 갉아먹어주는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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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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