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강의가 중립적이라면 거짓말
    김정일과 손잡으면 안 된다”
    By mywank
        2008년 11월 28일 0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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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7일 시작 첫날부터 ‘우편향’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공정택)의 ‘현대사 특강’이 28일에도 서울시내 일선 고등학교에서 계속되었다.

    특히 이날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 인창고등학교에서는 “일제시대 위안부 강제 동원은 증거가 없다”, “일본도 독도가 일본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교과서포럼 고문)가 강의를 맡아 관심을 모았다.

       
      ▲교육, 시민단체들이 안병직 교수의 강의를 막기 위해, 인창고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강의가 시작되기 전인 오전 9시 반부터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서울지부, 민주노총 서울지역 본부 등 교육사회단체들은 안 명예교수의 강의를 막기 위해, 학교 정문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히 이날 회견에는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참석

    참석자들은 ‘입만 열면 망언, 차라리 그 입을 다물라’, ‘청소년 무시하는 서울시교육청 규탄한다’, ‘우익 보수논리 강요하는 역사특강 중단하라’ 등의 피켓을 들며, 서울시교육청의 ‘현대사 특강’ 방침을 비판했다.

    정신대 피해자인 이용수 씨는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한테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나”며 “컴컴한 밤에 일본 군인이 집에 와서 제 등에 총을 들이대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는데, 무슨 위안부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말을 하나”고 말했다.

    박현미 참교육학부모회 서울 남부지부장은 “일제 세력들이 우리사회에서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들을 미화하려고 그런 망발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이런 생각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가 옆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참석자들이 학교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항의를 위해, 강의가 열리는 학교 2층 세미나실까지 온 정신대 피해 할머니. (사진=손기영 기자) 
     
     

    오전 9시 55분 교육사회단체들의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되던 중,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탄 차량은 이들을 피해 학교 옆문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사실을 확인한 참석자들은 학교 안으로 진입을 시도 했지만, 안 명예교수의 강의는 막지 못했다.

    명예교수의 옆문 입장

    이날 안병직 명예교수는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 가량 ‘대한민국 건국60년의 정치경제사’란 제목의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강의 시작부터 “나는 보수진영 입장에서 강의를 하겠다”며 “오늘 중립적인 강의를 하겠다고 말하면, 내가 학생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세미나실에 모인 100여 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강의가 시작된 지 5분도 되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청했다, 또 한쪽 벽에 붙어있는 시계만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다. 안 명예교수는 강의 중간마다 학생들에게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해가 됩니까?”라고 물으며 집중을 유도했고, 학생들은 마지못해 “예~”라는 외마디를 던졌다.

    안 명예교수는 이어 학생들에게 “진보진영에서는 ‘외세의 의존하는 비양심적인 인간들을 뜯어고쳐, 북한의 김정일하고 손잡는 좋은 사회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선진화’이지, 김정일하고 손잡고 어떻게 좋은 사회를 만들겠나”고 말했다.

       
      ▲강의를 하고 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또 “진보진영에서는 자주적인 힘으로 국가를 발전시키는 ‘내재적 발전론’을 강조하고 있다”며 “하지만 저개발국은 자기 힘으로만 발전할 수 없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외부의 선진국과 손잡는 방법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이승만 대통령은 권위를 가지고 자기 아니면 뽑을 사람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필요하면 ‘삼선개헌’도 마음대로 했던 것”이라며 “박정희 대통령은 ‘대외거래’에서 1등을 해서 경제권을 확보했고, 그런 제도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경대 2년 공부하니 생각 바꿔

    강의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서 조현욱 인창고등학교 근현대사 교사는 “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 안 교수에게 ‘한국경제사’를 강의를 들었는데, 오늘 강의에서는 그 때보다 더 우경화된 느낌을 받았다”며 “학자로서 그동안의 견해를 왜 바꾸게 되었나”고 물었다.

    이에 안병직 명예교수는 “1985년 전까지 ‘내재적 발전론’을 생각하는 대표적인 진보지식인이었다”며 “이후 1985년 일본 동경대학교에 가서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보니 ‘내재적 발전론’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고 답했다.

       
      ▲강의 시간 내내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청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하지만 질의응답 시간에 안 명예교수에게 질문을 던지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으며, 세미나실을 서둘러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학생들 "주장만 얘기, 불쾌했다"

    고3 학생인 윤 아무개 군은 “강의 내용이 따분하기도 했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도 들었다”며 “학교 선생님들은 역사를 가르칠 때 객관적인 사실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시는데, 교수님은 자기의 주장만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교수님들이 만든 교과서를 쓰기 전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채택여부를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역시 고3 학생인 황 아무개 군은 “‘현대사 특강’에서 양쪽의 입장을 아우르는 강의를 듣고 싶었지만, 오늘 교수님은 보수 쪽의 이야기만 한 것 같다”며 “자기의 생각과 주장만이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불쾌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교육청의 ‘현대사 특강’은 내년 2월까지 서울시내 302개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과 고1·2 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각각 한 차례씩 실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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