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춥고 긴 '경제 겨울'이 시작됐다
    10년 전보다 혹독한 이유 5가지
        2008년 11월 28일 11: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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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외환위기와 현재 도래하고 있는 위기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전반적 소득감소, 자산가치의 하락, 구조조정, 실업증대 등은 위기의 결과로 발생하는 공통점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과거와 지금의 차이이다.

    97년과 08년, 같은 점과 다른 점

    과거의 위기와 지금 위기의 차이를 인식하는 문제는 현재의 위기에 대한 대응방향을 정하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문제다. 필자는 현재의 위기가 과거보다 훨씬 혹독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로 발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과거의 위기는 한국경제만의 위기였지만 지금은 글로벌 위기라는 점이다. 과거 한국의 재벌들은 구조조정으로 조성된 새로운 조건에서 값싼 인건비와 고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 회복 등의 이점을 활용하여 당시 잘나가고 있던 선진국과 새로이 성장하고 있던 중국 등 개도국에로의 수출을 크게 증대시킬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몇몇 재벌은 글로벌 기업의 수준으로 나갈 수 있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MBC뉴스보도
     

    경쟁력을 회복한 재벌자본 중심의 수출 활황은 당시 위기의 한국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글로벌 위기이며,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회복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번째로, 과거에는 존재했었던 내수부양을 위한 정책수단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내수부양의 주요한 수단이 되었던 건설경기 부양이나 신용카드, 할부금융 등의 소비자신용 확대수단과 같은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수단들이 지금은 고갈된 상태이다.

    이미 한국의 건설업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구조조정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의 재고와 건설예정인 주택만으로도 주택보급율이 110%에 달하고 있고, 도로 등 인프라건설도 포화상태일 뿐만 아니라 토목건설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수준이 현저히 약화되었기 때문에 건설경기를 통한 경기부양은 기대하기 어렵다.

    내수부양, 소비자신용 창출 불가능

    민간의 부채비율이 높아 추가적인 소비자신용의 창출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와 같이 수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내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수단마저 부재하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는 과거보다 혹독하고도 장기적인 고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로, 과거에는 위기 이후 자산가치가 빠르게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상승했지만 현재의 위기는 장기적으로 자산가치를 하락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금은 과거처럼 자산가치 회복에 따른 부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미 주식은 최고점 대비 반값 수준이고, 달러 대비로는 30% 수준으로 하락한 상황이다. 아파트 값 역시 최고점 대비 반값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부실채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은행들의 대출여력은 고갈된 상태이며, 오히려 은행들은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대출을 회수해야 하는 처지이다.

    네 번째로, 과거에는 구조조정 이후 기업과 가계의 부채 수준이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가계를 중심으로 부채증가를 통한 투자와 소비 증가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반대이다. 가계와 중소기업은 소득감소, 영업부진 상황에서 오히려 과도하게 끌어다 쓴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부채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소득창출능력은 약화되고 있고, 담보가 되는 자산의 가치도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부채를 정리하는 과정은 모든 경제주체에게 혹독한 구조조정과 절약을 강요하고 있다.

    구조조정 충격 완충지대 실종

    다섯 번째로, 과거에는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사람들이 퇴직금과 보유주택 등의 자산을 활용하여 자영업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규모의 국가적인 정책 없이도 경제 주체 스스로 구조조정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이를 통해 자영업 종사자 비중이 위기 전에 비해 10% 정도 상승하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자영업은 그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일 뿐만 아니라 이미 포화상태여서 오히려 구조조정을 통해 실업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정부에게 남아 있는 정책수단이라곤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내년에 10조원 규모의 적자예산을 편성해놓고 있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국채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10조원 정도의 적자재정 수준으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될 실업과 일자리 부족사태에 대처하거나 내수부양을 통해 경제위기를 완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정책 역시 투자와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는 상황에서 그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도 재벌 중심의 성장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가 지속된다면 한국사회는 매우 암울한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한국사회의 시스템 전환에 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기회일 수도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화된다.

    이러한 구성원의 의지를 바탕으로 현재 분열되어 있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기존 시스템의 전환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지점들은 시스템 전환을 위한 논의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대외적 안정성을 고려할 때 적자국채 발행은 한계가 있으므로 사회안전망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가 행해져야 한다. 일시적 위기라면 적자국채를 발행해서 대처할 수 있겠으나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 위기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고용보험제도를 선진국형으로 전환하는 과제를 추진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영세자영업자를 포함시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급여의 지급수준을 높이며, 지급기간을 대폭 늘리는 등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시스템 전환 논의의 필요성과 가능성

    셋째, 산업구조조정에 맞추어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시스템에 대대적인 공적투자가 필요하다.

    넷째,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적자원에 대한 장기투자효과를 가진 분야, 예를 들면 교육이나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조세부담에 의해 대량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재생에너지 분야에도 대대적인 투자가 행해질 필요가 있다.

    다섯째, 기존 취업자들의 노동시간을 합리적으로 분할, 재배치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다각도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여섯째,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조조직률을 높이고, 산별노조의 단체협약 효력을 확대함으로써 하후상박의 연대임금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고, 최저임금수준을 높임으로써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일곱째, 위와 같은 시스템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과거의 노사정위원회보다 더 포괄적인 규모의 사회적 협의기구가 가동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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