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철에는 흑인, 대학에는 백인
        2008년 11월 28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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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함께 프랑스, 노르웨이를 방문하고 돌아온 박용진씨의 ‘유럽 동행기’를 게재한다. 박용진의 ‘유럽 동행기’는 3~4회 가량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에피소드 1. “왜 너냐?”

       
    ▲ 파리 도착 다음날 유럽지역 진보신당 당원들의 회의가 끝나고 우리 일행은 유럽당원들과 함께 파리에 있는 파리꾜뮨전사묘역을 찾았다

    유럽방문 일정의 대략이 확정된 후에 아내에게 유럽방문 예정을 말했을 때 아내가 내게 한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왜 당신이야?”

    경선 때 권영길 밀어 노회찬 떨어뜨린 박용진이 뭐가 이쁘다고 데려가느냐? 뭐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하긴 나도 이 부분에 대한 노회찬 대표의 입장이 궁금했지만 내 짐작이 맞을까봐 쪽팔려서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가 느끼는 이유는 분명한데 그 이유를 분명하게 듣자면 진짜 존심 상하게 될 것 같고, 미화해서 듣자면 서로 민망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처음 내게 유럽 일정을 이야기하고 같이 갈 것을 제안한 노회찬 대표는 분명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2010 특위 회의가 어수선하게 끝나고 난 뒤 개인적인 환담을 나누던 도중 서로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이야기 끝에 10년 만에 놀고 있다는 내 근황 소개가 끝나자 노 대표가 지나가듯이 말한 유럽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전 유럽 좌파정당들의 인터내셔날 대회에 오라는 최정규 선배의 권유에 응하지 못해 내가 삼켜야 했던 아쉬움 때문에 나는 노 대표의 인사치레 제안을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어쨌든 창당 전후부터 지금까지 진보신당 안팎에서 박용진에게 쏟아지는 온갖 비난의 내용들을 참고할 때 이번 동행길을 놓고 “박용진이 이번에는 노회찬에게 붙을 모양”이라거나 “환율이 엄청난데 돈 많은 모양”이라는 식의 조롱을 각오하고 떠난 길이다.

    공식수행이 아닌만큼 최소 비용은 모두 개인 부담이었다. 내 영혼을 뒤흔든 “왜 너냐?”는 한 마디를 던진 것 말고는 아내는 이번 일정에 협조적이었다. 비행기 삯만 153만 원이 넘는 비용은 IMF(아이러브 마누라 펀드)를 통해 해결했다. 네살바기 큰 아들의 용돈 통장을 깬 것이란다. 애가 더 크고 나서 눈치채기 전에 하루빨리 갚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장난이 아니다.

    에피소드 2. 파리의 순대국

    노회찬 대표의 일정에 맞춰 스위스에서 날아온 모 당원이 유럽당원모임에 참석한 동지들과 노 대표에게 대접하겠다면서 자리잡은 식당은 ‘유로식당’이라는 한인 식당이다.

    은근히 프랑스식 식사를 기대했지만 이틀째 일정까지는 어찌된 일인지 계속 한국식이어서 약간의 불만이 쌓이던 우리 일행이었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포와 당원들에게 찾아온 한국식 음식의 기회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가 시킨 것이 순대국이었는데 가격이 얼마인 줄 아시는가? 무려 18유로, 약 1,800원의 환율을 감안하면 32,000원이 넘는다. 게다가 소주 한 잔을 곁들였더니 무려 15유로, 약 27,000원이다. 순대국 한 그릇 만찬에 약 6만 원 돈을 쓰는 셈이었다. 수저 잡은 손 떨려 죽는 줄 알았다.

       
    ▲ <유로식당>에서 식사 전 담소를 나누는 장면. 돌솥비빔밥, 순대국 등을 시킨 이 자리에서 들어간 비용은 엄청났다. 내가 이런 걸 이렇게 비싸게 먹었다라고 한탄하려고 찍어놓은 순대국은 컴퓨터 고장으로 올리지 못해 아쉽다
     

    순대국도 우리식의 뽀얀 국물과 잘 삶은 머릿고기며 내장 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식 순대 비슷한 햄과 돼지고기 정도여서 모양과 맛도 달랐다. 최정규 선배가 괜히 남원 연수원 근처 곡성 장터 순대국의 환장할 맛을 자랑해가며 잃어버린 기억을 들쑤시는 바람에 일인당 6만 원짜리 순대국 만찬을 하는 내내 쏟아지는 한숨이 그칠 줄 몰랐다.

    나를 더 떨게 했던 것은 파리 물가를 애들 장난 정도로 친다는 노르웨이 오슬로 물가에 대한 사람들의 ‘협박성 증언’이었다. 파리 물가에서부터 오금이 저린 나는 순대국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수저질만 꾸역거릴 뿐이었다. 오슬로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에피소드 3. 유럽의 우울

    유럽 일정 내내 나는 많이 우울했다. 나는 파리의 아름다움이 좋았지만 이맘때의 파리 날씨는 영 내 타입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흐렸고, 분무기로 뿌려대는 듯한 희미한 빗줄기를 자주 만나야 했다.

    오슬로의 정연함과 복지국가의 자신감은 좋았으나 오후 3시가 넘어서면 시작되는 일몰과 너무 짧은 낮은 싫었다. 파리와 오슬로에서도 겨울 시즌에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나만 그 곳 날씨에 민감하고 우울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내 유럽 우울의 이유는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종주의 문제였고, 정치 문제였다.
    홍세화와 박노자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 보았던 프랑스와 노르웨이 사회는 온갖 복닥거림에도 불구하고 ‘똘레랑스’와 ‘합리적 이성’으로 움직여 가는 사회였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의 희망과 기대 가득한 눈길을 받기에 충분했다.

    유럽에서 인종주의적 갈등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지만 이번에 가서 몸으로 느끼는 것은 더 심각했다.

       
    ▲ 시앙스포 건물 앞 학생들의 모습. 약 20여분을 이 앞에 서서 노회찬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색인종 학생은 거의 눈에 띄이지 않았다. 학생 휴게실에 들어서서는 이 보이지 않는 인종간 분리 현상은 더 분명해졌다
     

    파리는 내가 느끼고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유색인종이 넘쳐났고,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수는 엄청난 것으로 보였다. 지하철을 타면 3분의 2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앙스포 강연 때 나는 심각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앙스포 건물 입구에서부터 인종적으로 백인이 압도적이었다. 유색인종은 열에 하나를 넘지 못했다. 강연이 끝난 뒤 찾아간 인근의 카페에서 우리는 수십 명의 손님 중에서 유색인종이 우리들 뿐임을 깨달았다.

    시앙스포 강연을 주관한 김신동 교수는 말했다.

    “공화주의를 주장하고 ‘모두가 프랑스!’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 나라에서 인종주의 문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지 없는 문제가 아니다. 이곳을 봐라. 좀 비싸고 좋은 곳에 그들은 없다. 못 오게 법으로 막는 것이 아니지만 사실상 격리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미국이 더 올바르게 문제 해결에 접근하고 있는지 모른다. 법으로 막고 폭동이 벌어지고 죽이고 하더라도 문제를 드러내놓고 말한다는 점에서 유럽과 다르다. 오바마 당선이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가져다 준 충격은 엄청나다. 이게 뭐냐 말이지? 미국은, 저따위 미국은 흑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있는데 프랑스는 뭐냐? 이런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우리가 프랑스 사회에 유색인종이 많다는 것을 아는 것은 프랑스의 축구대표팀 경기를 볼 때 뿐이다. 그들의 의회나 그들의 예술계 소식을 전하는 화면에서 프랑스 사회의 인종구성을 반영하는 화면을 찾기는 어려웠다.

    프랑스 정부가 통치를 포기했다고까지 이야기되는 파리의 변두리 지역은 그야말로 똘레랑스 사회의 버려진 구역이라고 한다. 정부와 지역거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도 기대로 저버린 곳이다.

    대낮에도 백인이 혼자 돌아다니면 범죄의 대상이 되고 만다고 한다. 이런 슬픈 곳에서 정당 지지율 2%대의 공산당이 늘 이긴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슬프게 했다. 희망을 말해주는 승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인종주의 정당은 이제 30%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엉뚱하게도 ‘진보당’이다. 뭐가 진보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노르웨이 방문 내내 우리는 진보신당의 영문 당명을 말하고 나면 반드시 ‘socialist party’라고 말해주어야 했다. 그 동네에서 우리 진보신당 정도는 이런 정도의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MB정부에서는 거품을 물고 우리가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말한 사실에 대해 뒷조사를 하겠다고 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촘스키 책을 금서목록에 올렸다는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이 웃던 그곳 사람들의 얼굴을 MB도 봤어야 했다.

       
    ▲ 노르웨이 우익당의 당사가 입주해있는 오슬로 번화가의 한 건물. 그 건물의 삼성광고판을 본 우리들은 참 절묘한 만남이라고 웃어줬다
     

    이민자 추방, 차별주의 정책 등을 과감하게 앞세운 이 극우 인종주의 정당이 집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최대 지지계층이 바로 노동자계급이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게다가 우리가 방문한 사회주의좌파당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은 노르웨이 노동당을 굳건하게 지지하고 이민 노동자들에 의해 일자리가 불안한 중소, 영세, 비정규 노동자층은 자신들의 일자를 지켜줄 것으로 보이는 인종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좌파당은 지난 30년 동안 7~12%대의 지지율에 고정되어 있고 스스로 “우리는 배운 여성들과 인텔리들의 지지정당”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기 위한 노력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와 함께 노르웨이에서 노동당과 사회주의좌파당의 입지가 우리와 민주노동당의 그것과 얼핏 비슷하다는 생각을 같게 했다.

    고로 진보신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정치세력들이 사실상 정체에 머물고 있는 한국에서의 노동계급 정치를 어떻게 복원하느냐, 어떻게 확장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된다.

       
    ▲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 홀 벽면은 오슬로시를 장악했던 노동당에서 건립했을 당시 역사 사회 인식을 반영하는 벽화로 가득했다. 우울하게도 오슬로시는 이제 우파들의 집권해서 그들이 권력과 시청 건물을 쥐고 있다

    프랑스의 똘레랑스와 노르웨이의 복지사회 구현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가 내면화되어 있고 정치적 변화를 끌어내고 있는 힘이라면 이건 너무 무서운 일이다.

    나찌즘에 대한 반성과 기억 때문에 감히 인종주의적 태도를 표명하지는 못하지만 조용히 투표장에 들어가 인종주의 정당과 극우 정치인을 찍고 나오는 유권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인종주의 문제가 유럽인들에게 얼마나 내재된 문제인가를 잘 보여주는 일이다.

    더 우울한 것은 이 문제를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면 암담하다는 사실이다. 이미 강력한 노동이민 통제 및 추방정책을 쓰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러나 아직 인종문제가 사회 전면화된 것은 아니다. 극우정치세력들일지라도 아직은 대북문제를 중심으로 히스테리컬한 태도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일자리 문제와 인종문제가 유럽에서처럼 맞물려 돌아가면 우리사회는 유럽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더 암담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사회는 어쨌든 ‘반인종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고 공동의 정치인식이 있기 때문에 좌파 정당이나 지식인들이 분명하게 인종주의 흐름에 대해 공격하고 비판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게 가능할까?

       
    ▲ 파리의 아가씨 걸인. 개를 세 마리나 데리고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파리는 개 한 마리당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그 금액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누구는 이것이 노숙인들에 대한 통제와 관리 측면도 있는 게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했다

    좌파정치세력이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시민사회는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민 노동자들 문제가 선거기간 보수 우파측에 의해 강력한 이슈로 등장했을때 우리는 ‘인종주의에 맞서는 인정적 주장’말고 무슨 정책과 반박이 준비되어 있을까?

    한나라당이 외국인 노동자 추방해서 한국 노동자들, 특히 영세, 미조직, 저소득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지키겠다고 주장할 때 우리에게 프랑스처럼 똘레랑스를 호소할 시민사회가 있지도 않고, 노르웨이처럼 강력한 좌파정치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 현실이 우울하다.

    변형 나찌즘적 정치세력들이 대통령 결선투표에 가고, 집권을 앞두고 있는 유럽의 현실과 늘어가는 외국인 노동자와 농촌지역의 외국인 신부들과 그 2세들의 성장, 다가오는 사회적 갈등에 아무런 대비도 없는 한국의 진보. 나의 유럽일정 내내 머리를 짓누르는 우울한 현실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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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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