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줌마 힘이 절반 승리 원동력"
        2008년 11월 28일 12: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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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일 동안의 이랜드 투쟁은 징계 해고된 이랜드 일반노조 간부 12명(3명은 복직 포기)이 복직을 포기하는 조건을 달고 타결되었다. 언론들은 이를 ‘아름다운 희생’이라 불렀으며,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이제 그는 ‘백수’가 되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지난 몇 번 언론에서 잘못된 기사가 나와 곤욕을 많이 치렀다”며 또 한 번의 인터뷰를 앞두고 걱정을 표했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사진=정상근 기자)
     

    진보신당 비례후보 결정,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러나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고 그는 지난 500일이 넘는 오랜 싸움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조합원들과 함께 할 때”를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았고 “진보신당 비례후보 출마”를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또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투쟁 선봉에 서게 된 사연, 퇴직금 7천여만원을 투쟁사업장에 모두 밀어 넣었을 때의 일들도 풀어놨다. 투쟁하면서 느꼈던 아쉬움, 바램 등 다양한 얘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7일 오후 2시부터 영등포역 부근의 한 까페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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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협상 결과 ‘백수’가 되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낼 것인지 계획은 세웠나?

    = 복직을 포기하며 백수가 되었다기보다는 해고당한 것이다.(웃음) 이번 노사합의에 따라 노조가 이랜드 일반노조와 홈플러스 테스코 노조로 분리되었고, 현재 이랜드 노조는 40명 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든 자구책을 세워야 할 상황이다. 지금은 파업에 따른 후속 처리작업에 경황이 없다. 연말까지 후속작업이 정리가 되면, 개인 거취와 관련해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 복직을 포기한 다른 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지내나?

    = 정확하게 3명은 자진 사직이기 때문에 (복직 포기는) 9명이다. 그중 또 한 사람은 협상 결과를 받지 않고 해고투쟁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결국 8명이 자진사직을 한 것인데, 그 분들도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다. 

    지금은 홈플러스 노조가 차기지도부를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고, 파업에 따른 후속작업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각자 살 길 찾아야 할 것이다. 복직을 포기했기 때문에 복직투쟁을 할 수 없다. 다른 생업을 찾아야 한다.

    다만 홈플러스 노조 지도부가 들어서면, 자리를 못 잡거나 복직을 희망 하는 동지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비록 위로금을 받고 자진사직을 한 것이지만, 복직이 된다면 위로금이 문제겠나? 그리고 홈플러스 노조말고도 이랜드 노조에도 7명의 해고자가 있다. 그런데 이랜드와 교섭에 여전히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 분들은 다시 복직투쟁을 할 수 밖에 없다.

       
     
     
     

    – 다 끝난 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 홈플러스만 그렇다. 홈플러스 노조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일단락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랜드 노조는 현안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다.

    홈플러스가 인수한 홈에버만 가지고 교섭을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소수가 남아있던 이랜드 노조는 해고자 문제, 임금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다.

    – 언론에서는 주요 간부들의 ‘자기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또 이와 같은 결과를 감안했을 때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나?

    = ‘가슴 아픈 희생’이란 표현이 맞겠다. 그리고 이번 싸움의 결과를 놓고 나는 ‘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추가 외주화를 막았고, 임금 외의 차별조항이었던 공휴일 무급도 유급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런 결과는 현장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로서는 굉장한 성과이다. 임금도 안정되고 고용도 보장되었다. 애초 우리의 요구가 고용보장과 차별시정임을 봤을 때 이 부분은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 분회장들을 포함한 현장 간부들도 대부분 살려서 보냈다. 최소한 조직보전을 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었다. 이는 쉽지 않은 결과다. 때문에 일정부분 승리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다만 파업을 한 조합원 입장에서는 워낙 피해와 희생이 컸다. 그런 부분에서 조직적으로는 냉정하게 패배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 조합원 수도 많이 줄고, 간부들도 희생이 되었다. 조직력 측면에서 보면 패배한 대목이 있다.

    결국 승패는 현장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이후 민주노조를 어떻게 사수하고, 재건하고, 강화하는 것인지에 달려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지면 우리가 지는 거고 승리하면 우리도 승리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최소 2~3년 정도는 걸릴 것이다. 지금 510일 파업 투쟁의 승패를 논하는 것은 성급하다. 다만 절반의 승리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이랜드에서 원래 정규직으로 근무해왔다. 솔직히 정규직 입장으로서는 외면을 할 수도 있는 싸움이었다. 참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이랜드 노조 같은 경우는 길게 보면 97년, 비정규직이 뭔지 몰랐던 시절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했던 전력이 있고,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업장의 약자들’ 편에 서서 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또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 아닌가? 이랜드 조합간부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많았다. 나는 좀 사이비고(웃음), 그런 관점에서 노조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힘든 곳,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노조활동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때문에 대졸 공채 정규직이면서도 비정규직들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들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김경욱 위원장 등이 속해있던 까르푸의 경우는, 워낙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과 고통이 일상적이어서 정규직 노동자들도 문제의식이 있었다. 김경욱 위원장도 아랫사람을 자르라는 부당 지시에 대한 항명으로 노조를 가입하게 된 것이다. 애초 비정규직 문제를 매개로 노조에 가입했던 지도부가 있었기 때문에 정규직이 조금 양보하면서도 비정규직 18개월 고용보장 요구를 따낸 바 있다.

    이처럼 양 노조가 모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정규직 출신 간부들이 헌신하고, 일상 활동 속에서 실천하고 성과를 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노조끼리 통합이 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컸다. 거기에 뉴코아 노조까지 함께하지 않았나? 뉴코아 노조는 우리보다 크고 뛰어났다. 그 힘들이 공동투쟁으로 만들어지면서 강력해졌다. 

    사실 정규직 싸움은 비정규직 투쟁보다 더 여유가 있다. 비정규직은 싸우면 당장 생계해결이 쉽지 않은 반면 정규직은 사내에서의 지위도 그렇고, 개인적인 조건에서도 훨씬 버티기 좋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부담스런 싸움이 된다. 정규직이 나서야 비정규직이 싸울 수 있다. 특히 이랜드가 악랄했지 않나?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정규직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해결하지 않는다면 민주노조란 말에서 민주자를 떼야 한다. 또 7~80%가 비정규직인데 정규직만으로 파업도 못한다.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것은 비정규직을 위한 것만이 아닌 정규직 노조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 종교적 관점에서 노조활동이라니, 이랜드 박성수 회장도 같은 종교 아닌가?

    = (웃음)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나 똑같다.

    – 그거 말고도 정말 궁금한 것이 있었다. 예전에 퇴직하면서 이번 투쟁에 퇴직금을 모두 넣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집에서 허락을 어떻게 받았나? 쉽지 않았을 텐데.

       
     
     

    = 이게 기사가 잘못 나갔다. 기증이 아니라 채권으로서 변제받는 조건으로 준 것이다. 물론 노조가 망하면 못 받겠지만. 정확히 기증이 아니라 빌려준 것이 맞다. 사실 쉽진 않았다. 집사람이 있으니까.

    지난 2000년 투쟁 때도 투쟁기금 마련을 위해 집 담보대출을 받으면서 심각한 지경에까지 간 적이 있었다. 내가 구속되고, 집 담보 대출까지 받자 2000년의 아내는 완전히 공황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퇴직금을 전부 내놓은 것 아닌가? 당장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워낙 급하니까 내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차마 아내에게 말을 못했다.

    일주일을 고민했다. 이혼 사유 아닌가? 이미 2000년에 아내가 마음 고생이 너무 심해 이혼까지 고민했다고 하더라, 난 그걸 나중에 알았다.

    그런데 그때처럼 우격다짐으로 숨기고 가면 이건 용납이 안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입이 안 떨어지더라. 결국 얘기를 못했다. 그런데 퇴직하면 직장의료보험이 해제돼 통지서가 날아오지 않나? 그때 아내가 “해고됐어?”라며 퇴직금을 물어보더라.

    사실 그때도 ‘속일까’ 하는 유혹을 느꼈지만, 결국 실토했다. 그 때 아내의 표정이 잊혀 지지 않는다. 더구나 기증 희사가 아니고 빌려준 것인데 기사에 ‘기증했다’고 나서 저희 어머님을 비롯해 모르던 친척까지 다 알게 되어 좀 곤혹스러웠다.

    사실 아내가 나보다 훨씬 마음이 넓다. 몇 일 동안 ‘쌩’했지만(웃음). 그래도 예전에는 투쟁이나 노조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는데 이번 투쟁만큼은 아내가 지지를 했다. 아줌마들의 싸움이 눈물겹고 우리 요구가 정당하다고 했다. 아내가 또 이랜드출신이고, 내 직장 선배였다. 아내가 박성수를 잘 알고 있다. 결국 조합원들 덕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고 넘어갔다.

    – 복직된 조합원들이 출근을 시작하지 않았나? 조합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새로운 노조를 구성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조합원들이 복직할 때 걱정을 많이 했으나 홈플러스가 노사합의 한 직후이고 더 이상 이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아 대부분 원직으로 복직이 되었다. 우리가 우려했던 문제가 안 생기고 있고,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홈플러스 노조의 차기 지도부 구성이 만만치 않다.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 핵심간부들이 자진사직을 하고 법적으로는 조합원 자격이 없다. 다른 사람들로 지도부 꾸려야 하는데, 복직한 조합원 간부들 중에서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고, 이랜드 노조에서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고민을 하고 있다.

    양 노조가 분리가 되어 지금은 자기 코가 석자다. 일단 살아남아야 하고, 이는 뉴코아 노조도 마찬가지다. 세 노조가 일단 각자 살아 남아서 이후에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함께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통업 특성상, 자연스럽게 힘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노조가 힘을 잃어버리면 미래를 도모할 수 없을 것이다.

    – 협상 타결 이후, 조합원들과는 술 한 잔 했나?

    = 지금은 정신이 없다. 파업에 따른 후속작업이 만만치 않다. 노사 간의 민원소송이 많아 취하도 해야 하고, 탄원서 낼 것도 있다. 또 노조 분리에 따르는 후속작업인 총회, 선거 등도 준비해야 한다. 조합원들도 현장 적응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사실 파업만큼은 아닌데 너무 바빠서 그런 자리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얼마 전, 월드컵 분회와는 같이 하는 자리를 만들었었다. 앞으로 다른 분회들과도 여유가 생기면 자리를 만들 생각이다. 마침 곧 송년도 다가오고, 12월 중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500일이 넘는 투쟁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

    = 상암 월드컵점에서 21일간의 농성이 정점이었다.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원래 1박 2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도하지 않게 21일이나 농성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조합원들과 하나가 되어서 움직였던 기억이 가장 좋은 기억이다.

    사실 돈이 없어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조합원들 밥 사줄 돈이 없어서 고민 끝에 조합원들에게 도시락 싸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정말 미안했다. 사실 당시 조합원들이 5~600명이었는데 도저히 식비감당을 할 수 없어 그런 문자를 보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조합원들이 모두 도시락들을 싸왔는데, 정말 진수성찬이었다. 연대한 동지들도 시켜서 먹는 것보다 같이 어울려 먹는 밥이 훨씬 맛있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주부들이다 보니 반찬을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왔다. 그 것을 보면서 우린 정말 감동했다. 우리 조합원들이 대단하다.

    투쟁 기간 동안 노조에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어머니들이 돌파했다. 돈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정면 돌파했다. 밥도 해먹고, 그때 기세가 참 대단했다. 당장 타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 21일 간의 투쟁이 위원장 이하 우리 조합원들이 500일이 넘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연대단위 동지들의 여러 헌신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내가 구속되어 있을 때 민주노총에서 생계비를 지원 했는데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비록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해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이랜드-뉴코아에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게 참 오랜만에 자랑스러웠다.(웃음)

    그게 우리를 도와서라기보다는 민주노총이 제대로 비정규직문제와 관련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 투쟁 때문에 민주노총 전남지역, 울산지역, 경북지역 본부는 상근자들이 다 구속, 수배되어 거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어렵게 싸운 분들이 우리 투쟁에 대해 더 미안해한다.

    기륭, 코스콤 등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홍콩 원정투쟁 가기전, 신촌 (이랜드)본사 앞에서 기자회견 했는데 기륭동지들이 왔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쭈뼛쭈볏 다가오더니 “잘 다녀오라”며 돈 봉투를 주더라, 우리도 다급했을 때지만, 기륭돈은 못 받는다고 했다. 그래도 끝까지 주더라. 10만원 정도 되었는데 ‘이것이 정말 동지애구나’라고 느꼈다.

       
     
     
     

    –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 진보신당으로 총선에 출마했을 때다. 그때 한 10년치 마음고생을 한 것 같다. 그 기간이 지나고 많이 늙었다. 실제로 많이 늙지 않았나?(웃음)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운동판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그 경험에서도 얻을 게 많더라.

    그밖에도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결국 조합원들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정말 평범한 주부들이 마지막까지 지도부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큰 힘을 얻었다.

    어떻게 보면 지도부보다 조합원들의 결의가 더 높았다. 지도부가 흔들릴 때마다 그들이 우리를 붙들어 안고, 힘을 내게 했다.

    개인적으로 조합원들의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고 소박했다. 그게 날 버티게 한 힘이 되었다. 연대를 위해 함께 해준 사람들도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은 비장한 면이 있는데, 우리 투쟁에 오면 웃음도 되찾는다고 얘기하더라. 충분히 공감이 된다. 어머니들, 주부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그나마 절반의 승리로 만들어냈던 주인공들이다.

    –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 때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 예전에 민주노총 부위원장 선거에 전국 비정규 노동자 연대회의 추천으로 출마해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 때가 완전히 정파별 구도 속에서 이루어진 선거였다. 사실 이전에도 모르진 않았지만 선거를 치르면서 민주노총 내의 정파대결 구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인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때문에 진보신당 비례후보로 나갔을 때는 어떤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건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이란 것도 있고, 때문에 난 개인적으로 진보신당 비례후보 출마는 전술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김경욱 위원장과 격론을 많이 벌였다.

    1차 총회에서 압도적으로 진보신당 출마가 결정된 후 나는 “벼랑 끝에서 서 있는 것과 한 발 내딛는 것은 천양지차”라며 “진보신당으로의 비례후보 출마는 한 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총회에 붙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2차 총회 결과는 승복하겠다고 했다.

    2차 총회는 눈물바다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가결되었다. 그때부터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내가 가장 믿는 비정규 대표자들은 한결같이 반대했다.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투쟁사업장엔 부정적이며, 아무리 절박해도 안된다고 했다. 그래도 총회 결정이니 흔쾌히 승복하고 진보신당 선거 끝날 때 까지 열심히 뛰었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납덩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진보신당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현장을 많이 돌았다. 나에게 진보신당의 노동자 대표라는 역할이 주어졌었다. 당시 조합원 정서는 “둘 다 망해라”였다. 비록 불가피하게 진보신당으로 선거운동을 했지만 나 스스로 오히려 민주노총의 단결을 해치는데 기름을 붓는 것 아니냐는 고민이 있었다.

    조합원들은 왜 분당되었는지 관심도 없다. 예전 민주노동당 하나 있었을 때는 진정성을 갖고 봐 주었는데 분열 이후 눈초리는 의혹에 차 있었다. ‘이랜드 수석부위원장’이라면 관심을 갖고 보지만, ‘진보신당 비례후보’라고 소개하면 뜨악해 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 땐 현장에서 분당에 대해 항의하는 분도 계셨고, 문전박대 당한 적도 있었다.

    물론 도와준 동지들도 많았지만, 현장이 너무 가라앉아 있었다. 열심히는 뛰었으나, 분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솔직히 나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비례후보 투표를 기권하겠다는 분도 꽤 많았다. 때문에 민주노동당도 좋고 진보신당도 좋으니 제발 투표만 해달라고 당부부터 했다.

    어려웠지만 사업장을 도는 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당시 나 아니면 누가 전국의 사업장을 돌았었겠나?(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얘기를 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 글은 꼭 <레디앙>에 실어 달라.

    = (웃음)난 솔직히 개인적으로 선도탈당한 분들을 정말 혐오했었다. 심상정 비대위안 부결 후 탈당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했지만, 투쟁사업장 입장에서 대선 직후 패배에 대한 책임을 자행해야 할 마당에 선도탈당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다 생각했다. 용납할 수 없었다. 진정성 있는 동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온당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런 처지에서 진보신당 비례후보로 나왔다. 이런 상황들이 내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더욱이 원래 보는 정치에는 관심이 있으나, 구체적인 정치활동을 한 바도 없고 고민한 바도 없는데 어느 순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경계에서, 진보신당 노동을 대표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정파구조가 꼬리표 붙이기를 얼마나 좋아하나? 난 정파도 없지만 진보신당 후보라는 이유 때문에 받았던 눈총들, 그리고 이후 상급단체들과의 갈등, 특히 서비스 연맹 위원장과의 갈등이 굉장히 힘들었다. 지금도 이 갈등 해소는 쉽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 잘못된 정파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민주노조운동, 진보정치의 미래가 희망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 만약 지금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어떤 부분에 힘을 쏟았을 것 같나? 

     

    = 조합원들이 진보신당 비례후보 전술을 선택했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을 위해 반드시 원내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성수와 이랜드 자본만은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안됐다. 이후 조합원들이 마음고생이 심했다. 실망하고, 우울해 했다. 민주노총이 우리를 버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했었다.

    만약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사실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명확한 과제가 있다. 비정규직법 재개정이 우선이다. 폐기하는 것은 실력이 없으니까, 비정규직 당사자들에게 실질적인 처우개선이 되는 쪽으로 적용될 수 있게 재개정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법은 반드시 재개정해야 한다.

    비정규직 당사자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비정규직 당사자 입장에서는 작은 요구가 소중하다. 비정규직 철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별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규직 투쟁을 하면서 내가 그런 네트워크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정규직들의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요구를 반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병호 위원장을 굉장히 존경하고 있지만 17대 국회 당시 비정규직 법 개정과 관련한 투쟁 속에서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충분한 소통 구조가 부족했던 측면이 있었다.

    또 비정규직 문제보다 더 심각할 수 있는 것이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 문제다. 특히 중소영세 사업장은 정규직이 정규직이 아니다. 정말 열악하다. 진보정당이 여기에 가장 주력해야 한다. 다소 더디더라도 철저하게 현장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기존 노동투쟁은 물론 노력은 많이 했으나 사실 부족했다. 민주노총도 정규직 중심이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서기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원내 의원이 직접 앞장서서 직설적으로 얘기할 것은 하고, 비정규직을 조직해 노동자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당면 투쟁사업장은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내가 진보신당 비례후보로 출마한 것이 그것 때문 아니었나? 투쟁사업장 출신이고, 이랜드가 비정규 투쟁의 상징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역할 공간이 넓어지겠다고 생각 했다. 내가 가면 또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하기 편하지 않았겠나? 또 내가 당선되면 이랜드는 그 자체로 압박이 되지 않았겠나?

    – 회사와 협상할 때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티나지 않게 노조 간부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로 사측과 이면 합의된 내용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 없다. 그런 이면합의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걸(웃음)

    – 김경욱 위원장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 특히 서비스연맹이 돈 가지고 장난쳤다는 얘기를 했는데.

    = ‘서비스연맹’이라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 위원장을 말했을 것이다. 김경욱 위원장의 문제제기는 김형근 서비스연맹 위원장의 문제였다. 공동투쟁본부 소집권자로서의 김 위원장이 보여준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투쟁기금 지출 과정에서 의결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지출을 좌지우지 했던 문제가 제대로 설명이 안 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사실 진보신당 비례후보 출마 이후로 김형근 위원장이 돌변했다. 솔직히 연맹위원장으로선 충분히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란 것이 있으니까, 그에 대한 비판은 받아야 한다. 사고를 친 주체로서 책임을 져야지.(웃음)

    그래도 투쟁과 관련해서는 그러면 안된다. 비례후보 출마를 빌미로, 마땅히 지원할 투쟁도 지원하지 않고 질질 끄니까 김경욱 위원장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위원장은 공인이니 서비스연맹의 문제로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연맹이나 민주노총의 문제는 아니다.

    – <레디앙>에 쓴소리를 해달라.

    = <레디앙>, <참세상>, <민중의 소리> 기자들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헌신하고 있다. 파이팅해도 부족한데.(웃음) 다만 <레디앙>의 정치기사는 폭도 넓고 재미도 있다. 그런데 현장 관련기사는 많이 취약하다. 물론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인력도 부족하고, <민소>나 <참세상>은 노동관련 기사가 많다.

    <레디앙>은 많은 의제를 다루는 것을 잘한다. 여러 영역에 대해 관심도 남다른 것 같고 읽을 기사도 많다. 그런데 노동이나, 노동현장에 관련해서는 기사량도 적다. 취재여력도 많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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