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2008년 11월 27일 0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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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직 배포되지 않은 <시대정신> 겨울호에 기고되어 동시 게재됩니다. 필자가 붙인 원제목은 「사회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이며, 1~3장, 4~5장으로 나누어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다르다
2.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철학은 민주주의다
3. 사회민주주의의 경제철학은 실용주의다
4. 사회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
5. 사회민주주의는 한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1.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다르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특히 최근에 (북)유럽에서 놀랍고도 찬탄할만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동시에 구현하면서도 매우 안정적이고 활기찬 사회경제체제를 만들어내는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성과와 사회민주주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흔히 사회민주주의라면 (북)유럽 여러 나라들의 사회경제체제와 그를 만들어내는 데 동원된 정책의 다발을 연상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곧 ‘사회민주주의’라 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아직도 살아 있는 운동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따진다면 그러한 어법은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미래에 어떤 새로운 전개와 성패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 2008년 메이데이, 스웨덴 사민당원들의 집회
 

마찬가지로 흔히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의 사회경제체제를 모범으로 삼아 우리나라가 그러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거나 이런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향으로 노력하는 사람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한다. 사회민주주의자 자신도 유럽의, 특히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의 제도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주장과 비전을 설명하기를 즐겨한다.

물론 이런 방식의 이야기들이 대중에게는 쉽고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들의 사회경제체제가 그대로 우리나라에 이식될 리가 없다고 한다면, 그러한 성취를 부러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러한 성취를 이루기까지 걸어온 길이며 그들의 정신이고, 그들의 방법론과 정치철학, 그들의 인식론과 진리관에 동의하는가 여부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는 특정한 사회경제체제나 그를 구성하는 정책이나 제도의 다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대전제로 한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고, 또 할 수밖에 없다는 사상과 그 배경을 이루는 철학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사회경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리킨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각 나라, 각 시대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왔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한 나라의 사회민주주의운동만이 아니라 자기들의 주장을 실현할 기회를 잡지 못하거나 모처럼 기회를 맞이하고서도 실패하거나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한 사회민주주의운동 역시 관심을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예를 들면 여성 대통령 바첼레트가 집권한 이후 많은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칠레에서의 사회민주주의운동의 최근 성과 같은 것도 그녀의 선조(先祖) 아옌데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여 미국을 크게 변화 발전시켰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력과 뉴딜정책도 사회민주주의운동의 일환으로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회민주주의 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민주주의다. 사회민주주의의 발전은 곧 현대 민주주의의 발전과 같이 해왔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를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 탄생시킨 자식이다.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뗄래야 뗄 수가 없는 한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이 사회민주주의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사촌으로 보거나 ‘초록은 동색’이라고 보는 시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철인정치론(哲人政治論)에 기초하고 있다. 사회주의와 철인정치론이 결혼하여 낳은 자식이 공산주의다. 화려한 수사로 포장된 ‘프롤레타리아독재론’은 실상 일당독재, 일인독재를 정당화하는 논리에 불과하였다. 지식인(철학자)들의 집단인 당이 곧 왕(王)이 되어 선정(善政)을 베푼다는, 철인정치론의 변주곡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지식인의 자기 과신이요 이성의 오만이다.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정치철학이라는 모태(母胎)가 다르다. 그래서 배다른 형제는 모친으로부터 전혀 다른 유전자를 물러 받은 탓에 자라면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되었다.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노동자는 사회민주주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와 철인정치론이라는 각기 다른 정치철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만큼 일관된 역사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지도 않고, 공산주의만큼 자신감 넘치는 강한 이념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반면 사회민주주의는 당장의 이익과 생활의 개선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노동자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지식인의 노동자 지배가 없으면 공산주의는 그리 큰 힘을 쓸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는 어떤 이상, 어떤 궁극의 목표, 또는 어떤 고정불변의 모델을 설정하고 나아가는 이념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는 상대적으로 말하면 이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실천적 정치철학이다. 즉 목표가 미리 설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방향(사회주의,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평등과 연대의 사회)과 나아갈 방법(민주주의)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마다 나라마다 조건이 바뀜에 따라 그 정책을 달리하고 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다른 종교와 문화를 포용할 수 있고, 심지어 상충하는 철학과 정책들도 그 안에서 혼합하고 절충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그러한 유연성과 적응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각 나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자유롭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실험을 하면서 인류 역사에 기여해왔다.

또 다른 면으로 보자면, 사회민주주의가 근대적인, 혹은 시민사회 성립 이후의 현상이라면 공산주의는 전(前)시민사회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에는 개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실천으로 나타난 공산주의, 즉 소련을 비롯한 국가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개인이 없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근대 이전에 속하는 문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도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세계관이 다르다고 해야 할 근본적인 차이이며, 결코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점이다. 공산주의에서는 당이 전체 인민의 이해와 욕구를 대변하는 전지전능한 정치, 경제, 사회적 주체다. 근대 사회를 이루는 ‘자율적 개인’이란 공산주의에 없다.(이성재, 「세계화 시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길」,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2008년, 53쪽 참조)

그래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이 1951년 채택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렇게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실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전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왜곡시켜 버렸다. … 국제 공산주의는 새로운 제국주의 도구인바 그것이 정권을 장악한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자유와 자유를 획득할 기회를 파괴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군국주의, 관료주의와 공포 경찰 제도에 기초를 두고 있다. 부와 특권의 엄청난 차별을 만들어 냄으로써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어냈다. 강제노동은 그 경제조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철학은 민주주의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허용한 언론의 자유를 악용(惡用)하여 집요하게 자기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를 비난하고 스파르타의 전체주의 체제를 찬양하던 소크라테스는 결국 노년에 국사범으로서 사형 선고를 받고 죽었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아테네 시민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였다. 플라톤이라는 탁월한 제자를 통해서 체계화된 그의 사상은 서양철학사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그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로 추앙되고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아테네 멸망 이후 오랜 기간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자취를 감추었다. 고대 세계에서 매우 희귀하고 예외적인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실로 철인정치론(=왕도정치론)이라는 동서양의 오랜 역사를 지배한 막강한 주류 정치철학에 짓밟혀 사멸하였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모든 조건이 변하고, 해방된 개인으로 구성된 부르주아 시민 사회가 형성되어 종래의 왕정이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민주주의는 부활하였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 집단이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아갈 능력이 있다는 믿음, 아니면 설사 그것이 없더라도 달리 어찌할 수는 없고 가장 현명한 철학자 독재자가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할 경우보다는 낫다고 하는 믿음에 근거한다. 망설임 끝에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아테네 시민들의 믿음에 근거한다. 철학자든 현인이든, 폭군이든, 선동가든 어떤 종류의 독재자의 지배도 거부하여 ‘도편추방제도’를 만든 아테네 시민들의 소박한 생각으로부터 유래한다.

   
▲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왼쪽)과 룰라 브라질 대통령

사회민주주의자는 모든 종류의 독재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어떤 선험적 이념을 영원불변의 진리로 믿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대중을 가르치고 계몽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렇게 믿는다. “진리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그리 단순하지도 않다. 그리고 대중은 어리석지 않다. 어리석은 것은 대중을 가르치려는 자들이다.”

지금은 그 구성원들이 모두 탈당하고 말았지만 민주노동당 내의 사회민주주의자 그룹을 자임했던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자율과 연대’가 2007년 7월 21일 채택한 <민주노동당 사회민주주의자 선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고 다양한 의견이 자유로이 제출되고 토론된다면 공동체 전체는 자신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를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가장 현명한 한 사람의 판단보다 수백만 대중의 판단이 더 정확하고 더 가치 있는 판단이라고 믿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사상과 양심,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며, 다원주의 다당제는 보장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주권을 주는 보통선거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지난 시기 세계 노동운동의 피어린 오랜 투쟁의 소중한 성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달성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신봉자 하나하나의 헌신을 필요로 한다. 전체주의적 방법과 달라서 사회주의는 국민들로 하여금 피동적인 역할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국민들의 철저하고도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는 최고의 형태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이다.”

“사회주의는 자유 속에서 민주주의적인 수단에 의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한다. 자유 없이는 사회주의는 있을 수 없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충분히 실현된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인권을 위해서 투쟁하여 왔다.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어느 나라에서나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자유주의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민주주의에 적응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해왔다. 그렇게 본다면 민주주의는 근대의 양대 사회사상인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합의한 경쟁과 게임의 룰이고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공동의 영토이고 기반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기반 위에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는 훌륭한 동반자, 경쟁자가 될 수 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만큼 일면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흔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기가 직접 만나고 부딪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쉽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진정성과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냉전 체제 속에서 모든 사상이 왜곡되고,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가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전투적 반공주의로 오해된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경향이 심하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 자유주의자의 진정성을 묻는다. “타인의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싸워 본 적이 없는 자유주의자를 진정한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차원을 달리하는 이런 질문도 하여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에 의문을 제기한다. “원리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되는가, 1인 1표의 민주주의와 1주 1표의 자본주의 원리가 충돌하지 않는가?”

사회민주주의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공세적 질문도 던진다. “자유란 개인이 기본적인 의식주를 확보하기 위한 경제 활동에서 어느 정도 독자적인 생활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때 실현 가능하지 않은가? 사유 재산이 있든 없든, 많든 적든, 모든 사회 구성원은 동등하게 자유로워야 한다면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기본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재화와 사회 서비스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에 대한 국가, 사회 차원의 개입과 복지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주의자라면 이를 지지해야 하지 않는가?”

3. 사회민주주의의 경제철학은 실용주의다

평등주의로서의 사회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원은 오래되었다. 그것은 오늘날 몇몇 세계 종교의 원조(元祖)가 된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류의 스승들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따르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자의 자랑이다. 그리고 ‘평등’이라는 귀중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자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는 “종교와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인류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헌신하며, 이 세상 어느 구석에서 벌어지는 부정의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지 않으며, 어떤 불의한 세력과의 투쟁도 회피하지 않는다.”([민주노동당 사회민주주의자 선언])

그러나 현실의 대중운동으로서 사회민주주의는 근대 유럽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발생하였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에도 이렇게 써놓았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폐해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유럽에서 발생하였다. 자본주의 때문에 가장 고통을 받은 것은 임금 노동자였으므로 사회주의는 맨 처음에 임금 노동자의 운동으로서 발전하였다. 그 후 많은 시민들, 즉 자유전문직, 사무원, 농민, 어민, 수공업자, 소매상, 예술가, 과학자 등은 사회주의가 그들의 장래에 대한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회주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수탈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자본주의 경제 질서 속에서 날로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와 빈부 격차가 소수의 손에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고 다수를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고 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간마저 상품으로 만들고, 만인의 만인을 상대로 하는 무제한의 경쟁을 장려하는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없는 기술과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바로 그 때문에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고,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물질과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고 삶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현실을 비판한다.

   
▲ 스웨덴의 국부로 일컬어지는 올로프 팔메(Olof Palme).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20년 가까이 총리와 사민당 당수로 일하다, 1986년 암살됐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당장에 자본주의 타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실현 불가능한 주장을 반복하기보다 차라리 자본주의가 가진 힘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공룡을 죽이려고 창을 들고 달려들기보다는 그를 순치(馴致)해서 인류의 복리 증진에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는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이러한 태도는 특유의 실용주의 철학과 인간관에서 유래한다.

1979년 등소평이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나서 비로소 중국은 식량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오래 전, 대약진운동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자 등소평은 인민공사를 해체하자고 주장하였다. “검은 고양이든 횐고양이든 쥐를 잡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취미로 쥐를 잡는 한가한 상황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기필코 쥐를 잡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다.

굶어죽는 인민의 편에 서서 문제를 보았기 때문에 그는 사물의 본질을 보았고, 토지를 나누어주고 사유재산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했다. 등소평이 중국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특히 농업에서의 소농 체제의 우수성을 흔쾌히 인정한다.

도그마에 사로잡힌 조선로동당은 지극히 간단한 이 진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식량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숱한 인민을 굶겨 죽이고 있다. 정광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도 2008년 9월 26일 열린 ‘북한인권국제회의’에서 「빈곤삭감전략을 통한 북한 식량문제의 해법」을 발표하면서 거듭 강조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원류(源流)는 유럽 대륙이 아닌 영국에 있었다. 영국의 위대한 경험론과 실용주의 철학이 사회민주주의의 원류인 것이다. 즉 영국의 지적 풍토에서 자라난 페이비안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베른슈타인도 10여 년의 영국 망명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사상, 즉 수정주의를 구성하였다. 독일적 사고방식에다 영국적 사고방식을 가미한 것이다. 그것은 흡사 칸트가 영국의 경험론을 받아들여 대륙의 합리주의와 가미하여 새로운 인식론을 구성한 것과 같은 사상사의 대사건이다.

겸손한 불가지론으로부터 출발하여 구체적 현실에 깊이 천착하고, 꾸준한 관찰과 철저한 조사로 사회 문제를 연구하여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를 근거로 지식인 사회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 그리고 노동운동가들을 설득해 나간 페이비안 사회주의자들의 헌신과 노력은 베른슈타인에게 커다란 지적인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그로 하여금 거창한 역사철학과 거대 이론의 관념 세계로부터 홀연 벗어나게 하였던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폭이 넓고, 유연하고, 특정한 믿음에 얽매이지 않는 지적 전통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다음과 같은 구절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주의는 엄밀한 획일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 국제적 운동이다. 사회주의는 그들의 신념을 마르크스주의적 기초 위에 두거나 혹은 사회분석의 다른 방법에 두거나를 불문하고 또 그들이 사회주의자가 된 동기가 종교적인 원리이든 인도주의적인 것이든 모두 하나의 목적 즉 사회정의, 보다 나은 생활,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해서 함께 노력한다.”

현실주의자로서 사회민주주의자는 이기적 존재로서 인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도 인정한다.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현실주의 인간관도 사회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공통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는 철학적 기초라고 말할 수 있다.

페이비안 사회주의 이래 사회민주주의는 원래 국가주의를 내장하고 있다. 페이비안 사회주의자들은 자기의 나라를 믿었으며 자기 나라의 공무원들을 믿었다. 그리고 전기와 가스, 상하수도를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설득하여 이루어내었다. 공립 학교를 만들었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자기들의 나라에서 당대에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를 매우 적극적으로 긍정한다. 그들의 사상은 무정부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런 정신을 이어 [민주노동당 사회민주주의자 선언]에서도 이렇게 쓰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상주의자이지만 추상적 관념의 세계에 살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대중과 더불어 구체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찾는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자는 항상 역사적 경험을 중시하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귀하게 여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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