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서 만난 진보정당과 당원들
        2008년 12월 01일 02: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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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함께 프랑스, 노르웨이를 방문하고 돌아온 박용진씨의 ‘유럽 동행기’를 게재한다. 박용진의 ‘유럽 동행기’는 3~4회 가량 연재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에스소드 4.

    “늘 먹던대로 식당”

    최경호, 최김경호, 경호…

    자신도 가끔 이런 이름들을 섞어서 소개하기도 하지만 내 기억에도 그의 이름은 이런 식이었다. 아마 그가 부모 양성쓰기도 참여했고, 아예 안쓰기도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양성쓰기, 혹은 안쓰기에 대한 생각은 얼마 전에 그가 유럽 당원모임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참고하면 될 듯하다.)

    내가 경호 동지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2002 지방선거 때 학생신분의 서울시의원 출마로 무려 17.8%를 얻었던 사실 때문이다. 그때 3년 징역살이를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던 나는 그의 선전 소식에 무척 놀라고 기뻐했다.

    은근히 안달이 나기도 했다. ‘이거 내가 아직 어리고 젊다고 생각했는데 나 갇혀 있는 사이에 더 어리고 싱싱한 것들이 벌써 치고 올라오나보다.’

       
    ▲ 시앙스포 강연이 끝난 뒤 당원인 경호 동지가 얼핏 트로츠키를 닮아 보이는 학생을 비롯한 프랑스 현지 학생들과 노회찬 대표와의 통역에 나섰다. 나는 이 학생의 외모와 질문 태도로 보아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닐까 상상해봤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경호 동지는 이날 노대표 강연을 동시통역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가 흘리는 진땀을 봤더라면 동시통역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도 그날이 첫 데뷔전이었다고 한다.

    파리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라는 이야기에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내 인물평은 이렇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해야지 왜 공부를 하는거야?” 공부할 타입이 아니라거나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런 훌륭한 인재가 당에 있어야 당의 앞날이 밝을 것 아니냐는 소리다.

    유럽 일정 두 번째 밤에 경호 동지는 우리 일행을 자신의 하숙방으로 초대했다. 대낮부터 사라져서 자신은 저녁 만찬을 준비하겠노라고 했지만 우리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하숙생이 무슨 여유와 솜씨가 있어 저녁 음식을 준비할까? 그저 정성스런 된장찌개에 잘 고른 와인 한병 정도이겠지…

    오, 그러나 경호 동지는 없는 여유에 정성을 곁들인 음식솜씨로 우리를 황홀하게 했다. 연어샐러드로 시작한 식사는 스테이크, 달팽이 버터구이, 메론에 잠봉(햄)을 살짝 얹은 후식, 무리해서 구비해둔 와인으로 풍성했다. 게다가 학생시절 서울대 노래패에서 한 실력했다는 그의 공연이 시작되자 우리 일행은 행복했다.

       
    ▲ 경호 동지의 하숙집 <늘먹던대로> 식당의 만찬. 원래 내가 더 멋지고 맛깔지게 잘 찍었는데, 저장해놓은 노트북이 사망하시는 바람에 아쉽게 되었다. 동행한 유성재 동지가 찍어 놓은 사진이다. 순서대로 달팽이 구이, 스테이크, 후식인 잠봉메론, 기타와 노래공연 중인 주인장 경호동지.
     

    가난한 유학생이 이 한 끼를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스러웠을지 짐작이 갔다. 엄청난 환율과 힘겨운 현지 언어 상황, 부족한 지원에 시달리면서도 딱딱한 빵 한조각으로 끼니를 떼웠을 그가 이런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훌륭한 음식솜씨와 노래솜씨, 당에 대한 애정까지 고스란히 묻어나는 식사를 두고 “늘 먹던대로 준비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도 한국에 가면 파리의 한국인 유학생이 운영하는 ‘늘 먹던대로 식당’에서 훌륭한 식사를 했노라고 말하겠다고 하면서 웃었다.

    이 ‘늘 먹던대로 식당’은 솔본느 대학 근처에 있는데 하숙집 건물에 영화관이 입주해 있어 우리는 ‘극장식 식당’이라고 찬사를 섞어 불렀다. 이 식당은 다른 무엇보다도 진보에 대한 열정 가득한 한국인 유학생의 곰같이 두터운 배려가 일품이다.(이사람 아이디가 ‘봄날의 곰’이다.)

    당의 이름으로 파리에 가는 분들은 꼭 그 식당이 운영하는지 문의해보시기 바란다. 아마 시험기간이나 발표준비 기간은 물론 간혹 식당주인이 열애중이라면 마땅히 식당을 폐쇄할 것으로 보인다.

    에피소드 5.

    오슬로 거리에서 만난 ‘진보신당’ 간판?

    너무 일찍 해가 져서(4시면 완전한 어둠이 깔린다) 모든 사회 공공기관도 그 기능을 일찌감치 마감하는 오슬로에서 공식일정을 마친 우리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없었다.

    디자인과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노회찬 대표의 걸음을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나 혼자였다면 시장통이나 대학가 주변을 다녔을 테지만 노회찬 대표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빼놓지 않았고 그 덕에 내 눈이 매우 예술적 호사를 누렸음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누린 예술적 호사를 그곳 관계자들의 감시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몇 컷 찍어왔으니 이는 다음 기회에 공개할 것을 약속한다.

    귀국 일이 다가오는 노르웨이에서의 일정을 감안해서 선물가게를 구경하거나 거리를 걷다 유성재 동지가 소리치듯 외쳤다.

    “우와~ 진보신당이다.”

    시청 근처 길 모퉁이에서 발견한 작은 표식의 간판에 우리 일행은 깜짝 놀랐다. 이게 뭘까? 이후에도 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이 간판을 발견했다. 정체가 뭐든 비슷한 색깔과 느낌을 주는 간판이 있으니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기념삼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주로 편의점과 함께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이곳 편의점 고유브랜드의 간판이겠거니 했다.

       
    ▲ 한 순간 진보신당 로고로 착각하기 쉬운 오슬로의 정체모를 광고간판. 결국 노르웨이판 로또의 광고간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일행은 웃었다.
     

    다음날, 박노자 교수에게 그 간판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다.
    “아 저거요?”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로또 간판이에요. 이곳에서도 로또는 제법…”
    약간 남사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박교수의 표정을 보며 우리는 진짜 민망한 얼굴로 침묵을 지켜야 했다.

    아, 이곳 인종주의 우익 정당의 이름이 진보당이라더니 진보신당의 로고는 이 곳 로또의 상표로구나. 뭐가 이러냐… 젠장, 로또처럼 대박이 터지든지 해야지 원. 여하튼 노르웨이는 뭔가 나와 잘 안 맞는다. 

    에피소드 6.

    “파리에서 만난 노동기본권 투쟁”

    “우리는 더 이상 이런 비겁하고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참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 공모적이고 불법적인 변명을 기존의 시스템에도, 우리 자신에게도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낡은 시스템은 노동권에 대한 올바른 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으로 충만한, 우리들의 현 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이제 이 낡은 세계와 단호히 결별해야 할 때입니다.”

    노회찬 대표의 유학생 교민 상대 강연회가 있던 날, 행사 직전에 진행된 ‘유학생 노동권찾기’ 운동의 소개시간에 배포된 유인물의 한 부분이다.

    파리 현지의 한국식당 수는 급격하게 늘어 지금은 100여개에 이르지만 주로 한국 유학생이나 재중동포, 중국인들과 동남아시아인들을 종업원으로 채용한 한국인 교포 주인들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모양이다.

    최저임금인 8.71유로 대신 4~5유로만 지불하거나, 일 한지 한달이 지나도 급여명세서를 주지 않는다든지, 노동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실제 고용시간의 삼분의 일만 신고하는 등의 처우가 그것이다.

       
    ▲ 노회찬 대표 강연에 앞서 광고 형태로 진행된 ‘유학생노동권찾기운동’에 대한 안내 장면. 운동의 적극적인 세력은 당원들이지만 비당원 참여자들을 앞에 세우고 폭을 넓혀 나가려는 배려와 조심스런 접근이 돋보였다.
     

    또한 이런 불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한국인 유학생 등에게 ‘같은 동포끼리’라거나 ‘가족처럼 대했더니 이럴 수 있느냐’는 등의 고압적 태도와 심지어 인간적 모욕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보신당 당원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노동권 찾기 운동은 교민사회와 유학생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다.

    이날 강연에서 운동을 소개한 여학생은 자신이 당한 모욕적인 상황까지 솔직하게 다 말하면서 함께 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자신이 당했던 인간적 모욕 상황을 말할 때 그는 어색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슬핏 웃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그가 견뎌내야 했던 힘겨움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린 학생이 견뎌야 했을 모욕감을 짐작하니 가슴이 쓰라렸다.

    내가 이 운동을 눈여겨 본 것은 파리의 당원들이 다른 유학생들이나 교민사회를 향해 소중한 질문을 던지고 변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유학생 당원들이 당원으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대중적으로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당원 자격만 유지하고 있어도 고마울 시절에 자신들이 아니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이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우리 역시,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알고 있다. 적어도 유학생 당원들 보다 어려운 처지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들이 그 일들을 함께 해야 한다. 그것도 우리 주변의 대중들과 함께 말이다.

    이들의 활동은 유럽지역 당원들의 사이트인 eurojinbo.net에 들어가면 살펴볼 수 있다. 먼 곳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노동기본권 투쟁에 로그인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한말씀씩 인사와 격려를 남겨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로그인이 싫으면 uecdt@googlegroups.com 으로 메시지를 남기면 된다.      <계속>

       
    ▲ 요즘 맹활약하는 프랑스의 박지연 레디앙 통신원. 파리꾜뮨 전사묘역을 참배하고 난 뒤 찍은 사진이다. 사진 가장 왼쪽이 박지연 통신원인데, 혹시 자신의 사진 공개를 원치 않을까 싶어 전체가 찍은 사진, 본인확인이 쉽지 않을 걸 일부러 골랐다. 프랑스와 유럽 당원들 모임 다음날이어서 모임의 대부분이 이날 사진에 담겨져 있다.
     

       
    ▲ 목수정씨 집에서 점심대접 잘 받은 뒤 그 커플과 함께. 목수정씨 커플의 집은 몇백년은 되었을 목재와 석재, 파리 성벽 등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집이다. 우리는 그 집에서의 점심을 ‘경복궁에서의 점심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 집 지하의 넓은 구조와 성벽의 잔흔, 오랜 우물은 희완의 작업중 작품들과 어울려 ‘고풍과 예술’을 느끼게 해준다. (근데… 그래서 그런지 팔려고 내놨는데 거래가 없어 걱정이란다. 역시 손님과 주인은 서로 보는 게 다른 법이다.)
     

    정정합니다.  파리의 유학생노동권찾기운동은 진보신당 당원 중심이 아닌, 진보신당 당원을 포함한 진보신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시작, 전개되고 있습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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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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