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 관계와 욕망
        2008년 11월 27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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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연재에서 정파 이야기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노동운동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람과 노선의 결정체인 정파를 빼놓고 노동운동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0년의 노동조합운동에서 정파의 위력은 강렬했다. 난투극도 불사하면서 격렬하게 부딪혔고, 이리저리 이합집산 했으며, 민주노총의 각종 사건을 만들어왔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그것을 되돌아봐야 한다.

       
    ▲ 필자

    정파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3대 정파흐름의 특징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맥락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조합운동을 모두 동일하게 경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인간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증법이 말하는 진리다. 운동도 그렇다. 사상도, 노선도, 정책도 변화한다. 당도, 노동조합도, 정파도, 인간관계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흔히 노동조합운동의 정파를 말할 때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를 말한다. 그것은 2008년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민주노총을 둘러싸고 3대 정파흐름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똑같이 무능력하면서도, 노동조합운동의 무기력을 타개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구분법으로는 현재의 정파관계와 모습을 온전하게 해석할 수 없다. 3대 정파 흐름은 내부로부터 변화하고 있다.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의 3대 정파흐름으로 구분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우스갯소리 삼아 “국민파에는 국민이 없고, 현장파에는 현장이 없으며, 중앙파에는 중앙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3파’의 기원

    애초부터 현장파는 정치노선과 노동조합노선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렇지만 현장성과 전투성, 또는 ‘반중앙파 반국민파 연합전선’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현장파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만으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몇 년간 현장성과 전투성을 스스로 체현하지 못했고, 일부는 그것을 포기했다. 또한 반중앙파 반국민파 연합전선도 흐트러지고 있다. 현장파는 지난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노동자의힘’과 ‘새흐름’이 후보를 따로 내세웠다. 정당건설을 둘러싼 최근의 정치노선에서는 그 차이와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현장파가 빠르게 흩어지고 있다.

    국민파는 민주노총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좁은 의미의 국민파’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자주파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파는 그 특유의 인간관계와 통 큰 단결론을 기치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집행권을 잡았다. 민주노총에서 이수호-조준호-이석행으로 이어지는 위원장을 연달아 배출했고, 민주노동당에서도 다수파가 되었다.

    국민파도 최근에는 갈등이 크다. 제조업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국회의가 분리되어 현장연대를 새로 만들었다. 국민파의 전국회의와 현장연대도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후보를 각자 따로 냈다. 한편, 평등파가 이탈한 민주노동당에서 당 대표선거 등을 놓고 경쟁하며 갈등하고 있다.

    중앙파는 다른 정파흐름에 비해 갈등이 적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분당과 진보신당 창당과정을 겪으면서 중앙파로서의 정체성이 흐트러지고 있다. 특히 전진의 진로를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졌다.

    확인하고 넘어갈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글과 주변 사람을 연결하다가, “이상하다. 그 사람은 00파라고 하는데, 평소에 이런 생각이나 실천을 하지 않았는데. 뭐지?” 하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이는 정파가 노선‘만’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 보면, 정파는 노선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노선이 다르면 정파를 달리해야 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노선만으로 구성된 정파는 없다. 정파는 ‘관계’와 ‘욕망’으로도 구성된다.

    어떤 정파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와의 인간관계 때문에 구성원이 되는 사례가 현실에서는 부지기수다. 심지어는 누군가 무척 싫어서 그 사람이 속한 정파의 반대파에 가입하는 사례도 있다. 정파의 측면에서, 어떤 구성원이 정파노선을 이탈했음에도 내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싫어 반대파로 가기도

    개인, 또는 소집단의 욕망을 위해 정파 흐름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정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부터 3대 정파흐름의 특징에 대해 쓰겠다. 이 글을 읽고 숱한 반론과 비판이 쏟아질 것이다.

    이미 정파관계가 변화하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분류하는 의미가 있나, 하는 비판이 있을 것이다. 정파갈등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는데 과거의 악몽을 다시 끄집어낼 필요가 있는가, 하는 비난도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을 왜 거기에 분류했는가, 하는 불만도 있을 것이다. 정파의 특징이 왜곡되었다는 항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시각과 관점에서 분류하고 쓴 글이다. 보는 측면에 따라 허점도 많을 것이다. 다양한 비판과 반론을 기대한다.

       
     

    현장파는 애초부터 정치노선이 사회주의계급정당 추진,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으로 확연히 달랐다. 현장파는 주요 구성단위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정파들의 연합전선이었다.

    현장파를 묶은 정체성은 노동조합운동에서의 “현장, 비타협, 위력적 가두시위, 전면적 총파업”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현장파의 정체성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새흐름은 이 정체성과 다른 행보를 걸었고, 사안에 따라서는 현장파보다 중앙파나 국민파에 가까웠다. 현장파의 정체성으로 “반중앙파 반국민파 연합전선”이라는 성격을 빼놓으면 안 되는 이유다.

    중앙파의 출발은 노선이 아니었다. 중앙파를 묶은 정체성은 “단병호를 정점으로 하는 관계”와 “노동조합 집행경험에서의 동질성”이었다.

    중앙파는 현장파와 국민파로부터의 비판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집행 경험과 운동이론을 결합해, 서서히 노선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노선을 만들었기에 중앙파는 다른 정파 흐름에 비해 비교적 단일한 색채를 띠게 되었다.

    국민파도 현장파처럼 연합전선 성격이 강하다. 특히 사무직 업종연맹 상층간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혁신연대의 사고방식과 연합세력으로 통칭되는 자주파의 노선은 많이 다르다. 자주파 노선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북한체제와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는 극과 극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국민파를 묶은 정체성은 대중성이었다. 좁은 의미의 국민파가 주창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과 자주파의 대중노선인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은 일맥상통한다. 또한 “반중앙파 반현장파 연합전선”이라는 목적을 공유한다.

    정확한 노선보다는 흐름, 경향

    각 정파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나는 3대 정파를 호칭할 때 ‘흐름’이라는 말꼬리를 붙이는 것이다. 3대 정파는 완결된 형태의 정파가 아니고, 부분적 정체성만을 공유하는 정파 ‘경향’인 것이다.

    표의 중앙파 항목을 보면서 의아한 것이 두 가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98년 1기 비대위 총파업에 대한 태도와 결과의 차이다. 그 당시는 중앙파라는 명칭이 없을 때였지만, 훗날 중앙파로 분류된 세력은 그 당시 총파업에 찬성했다.

    그러나 총파업 전날, 삼선교 사무실에서 열린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단병호 비대위원장은 길고 격한 논란과정에서 몇몇 업종연맹 위원장의 민주노총 탈퇴 압박과 현장 파업동력의 부족 등을 근거로 총파업 철회를 결정했다. 총파업을 찬성했음에도 중앙파의 오류로 기록되었다.

    다른 하나는 중앙파에 대한 상대방의 비판적 평가 항목에 상반되는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이다. “무책임한 총파업 남발”과 “총파업 회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그러한 비판을 받았던 것은 현장파와 국민파의 노선차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국민파는 “중앙파가 무책임하게 총파업을 남발한다.”고 비판했고, 현장파는 “중앙파가 총파업을 회피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현장파의 주요 오류로 지적한 “과도한 딱지 붙이기”가 무슨 말인지도 의아할 것이다. 현장파는 아직까지도 레닌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는 정파다. 그 영향일 것이다. 현장파의 글은 레닌의 독한 글투를 많이 닮았다. 또한 상대방에 대해 ~~주의라고 하는 딱지 붙이기를 즐겨한다.

    현장파는 중앙파와 국민파를 향해서 관료주의, 개량주의, 사민주의, 투쟁회피주의, 패권주의, 타협주의, 기회주의, 어용세력, 부패세력 등의 온갖 딱지를 붙였다. 상대 정파에 대한 물리적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의 정파운동문화가 노선의 골을 넘어 인간적 골마저 깊게 패이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난 10년의 노동조합운동에서 주요 쟁점이고 갈등이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표를 정리했다. 많은 내용이 비어있고, 표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어지는 연재 글을 통해 세세하게 짚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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