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당원 아가트, LCR과 NPA를 말하다
        2008년 11월 26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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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적 공산주의동맹(LCR)은 해체를 기반으로 하는 범좌파통합의 신당 건설, 즉 반자본주의신당(NPA)을 공개적으로 제안하였으며 내년 2009년 1월 창당을 목표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고 있다.

    LCR의 역사는 멀리는 러시아혁명과 궤를 같이 한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때 혁명을 지지하는 프랑스 좌파들이 소그룹을 만들어 활동한 것이 최초의 조직적 전신이다. 그 후 1930년대 반스탈린주의의 기치를 내걸며 활동의 영역과 세를 더해 갔으며 1938년 9월 ‘4번째 인터내셔널’ 창설에 가담하면서 좀 더 당적인 모습을 갖추어 갔다.

    첫 번째 인터내셔널의 기원은 1864년 칼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국경 없는 혁명’을 제창했을 때부터 파리코뮌까지이고, 그 후 2, 3차 인터내셔널은 러시아 혁명기를 거쳐 4차 인터내셔널의 시기에 LCR의 행동강령과 조직이 좀 더 구체화되는 시기이다.

    그 후 이어온 활동 명맥은 1960년대 새로운 좌파로서 다시 전면 등장한다. 1966년 혁명적 공산주의 청년회(JCR)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당원들은 68년 5월 투쟁과 세계 곳곳의 무장투쟁에도 가담하게 된다. 다시 당명은 공산주의동맹(LC)으로 바꿨고, 이후 좀 더 좌파적 정체성을 부각하는 이름으로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이 탄생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새 시대, 새 사람, 새 당

    60년대부터 활동했던 당 활동가에서 근래 들어 주력 당원들은 30, 40대 젊은 층으로 바뀌면서 당내 세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정치국에서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 23세였다.

    그리고 60년대 LCR을 기억하는 유권자들에게 27살의 젊은 대표가 LCR의 당 깃발을 들고 대통령선거에 나왔을 때 모두들 놀라워 했었다. 이에 대해서 60년대 LCR을 창당했던 초기 당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과 우리는 혁명에 관한 같은 준거나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당은 젊어졌다. 소련은 사라졌고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수학공식처럼 자명하지 않느냐. 새로운 시기 + 새로운 세대 = 새로운 정당이다. 다양한 혁명의 전통을 집결시키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만들어야 하는 당이 반자본주의신당이다.”

    LCR의 중앙당 사무실은 파리 외곽에 있는 큰 건물의 3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아래는 초대형 규모의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격을 3등급으로 나누어서 첫 번째 가격은 LCR 과 NPA을 위한 가격으로 소폭 마진을 남기는 수준이었고, 두 번째는 그들의 친구들, 즉 모든 진보운동권을 위한 가격, 그리고 세 번째 가격으로 상업 인쇄를 하여 이윤을 남기면서 정당 활동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당사무실에는 하얀 백발이지만 눈에는 아직도 혁명의 원기가 살아있는 초기 당원들로부터 젊은 당 실무자 및 연구자들 그리고 인쇄소 노동자, 운영팀과 멀리 아래층에서 들리는 윤전기 소음 등이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가 뿜어졌다.

    활기찬 모습의 LCR 당사

    취재하면서 늘 만나고 소개받은 간부당원이 아닌, 평당원의 입장이 듣고 싶어졌다. 이들은 당의 결정과 진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들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활동에 임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파리3대학에서 작년 겨울부터 문제가 되어온 교육민영화정책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는 한 여학생을 만나 짧게 인터뷰하였다. 

       
      ▲ 아가트(Agathe)
     

    – 자신을 소개해 달라.

    = 이름은 아가트(Agathe)이고 파리3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석사1년 과정에 있다. 성은 말하고 싶지 않다. 내 정치활동과 우리 집안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 언제부터 NPA활동을 하게 되었나?

    = 2006년 JCR(혁명적 공산주의 청년회)에 먼저 가입하고 한 달 뒤 LCR로 옮겼다. 그리고 지금은 NPA의 이름으로 활동한다.

    – JCR 가입을 먼저 한 것은 나이 때문인가?

    =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당 활동에 대한 자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문화적인 활동과 폭 넓은 프로그램이 있는 JCR에 가입했다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어 LCR로 가입했다.

    – 왜 LCR을 택했나? 다른 정당이나 그룹도 많은데.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 내가 처음 조직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6년 봄에 있었던 CPE(최초고용계약서) 투쟁 때부터이다. 그땐 매일 거리로 나갔고 학교는 봉쇄되었다. 길고 험난한 투쟁의 시간이었고 조직 활동에 대한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리에서 내 주위를 둘러봤을 때 항상 LCR이 같이 있었다. 파리가 화염으로 뒤집혔을 때도 늘 그들은 선두에 있었다. 정말 단순한 이유 같이 들리겠지만 그뿐이다. 내가 거리에 있을 때 그들이 내 옆에 있는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아니겠느냐? 그리고 LCR은 많은 활동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나처럼 외향적인 사람에겐 알맞기도 하다. 그냥 늘 회의나 하는 그런 모임이 아니다.

    – 이유는 동감하지만, 그들의 당 강령에 어떻게 동의했는가? 특히 혁명적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당인데.

    = 우리들의 강령은 좌파로서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다만, 혁명에 관해서는 나도 처음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LCR에 가입하기 전엔 단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혁명에 대해서 고민해고 차츰 동의하고 있는 단계다.

    – 그래서 지금 아가트가 생각하는 혁명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다

    = 물론 내 입장이다. 나는 혁명이 방법론적으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사회주의 복지정책을 통한 안정적 방법으로 민중을 위한 체제를 완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건 거짓이다. 사민주의 체제도 자본주의 안에선 완벽하게 완성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다. 당장 지금처럼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하고 금융 자본가들이 어려워질 때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는지 우리 모두가 보고 있지 않느냐?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길거리로 내몰리는 이들은 시급으로 일하는 일용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약한 자들부터 쓰러질 것이다. 복지정책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물론 나도 러시아혁명 때처럼 무장혁명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어떤 형식으로든 자본주의는 끝나야 한다는 선전의 의미다. 적들의 공격에 방어하는 단어이고, 절대적으로 끊기지 않는 고민이 될 것이다.

    – LCR에서 NPA로 재창당되면서 당명에서 혁명이란 단어는 삭제되었다.

    = LCR의 모든 당원이 혁명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LCR 안에서도 다수의 당원들은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소수 그룹의 반혁명파도 있다. 그래도 모두들 어쨌든 LCR 당원이었고 지금은 모두들 NPA 당원이다.

    반자본주의란 말은 이미 많은 것을 내포한다. 창당대회에서 결정되겠지만 실질적으로 합리적인 방안에서 혁명에 관한 강령이 결정될 것이다. 모든 결정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 평당원으로서 NPA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

    = 대체로 신당 건설 활동과 투쟁 활동으로 나뉜다. NPA의 하부조직으로 학생위원회가 지난 4월에 생겼다. 나는 이 학생위원회에서 일한다. 각 대학에 하나씩의 위원회가 있어서 학교 실정에 맞는 활동을 하고 또 연합으로 이번 주 목요일에 학교민영화반대 가두시위를 룩상부르크 공원 앞에서 할 것이다.

    – 지난 9월 말 노동자투쟁당(LO)에서 NPA와 통합을 원하는 당원들을 ‘조직 속의 달갑지 않은 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대의원회의에서 모두들 제명시켜 버렸다. NPA를 찬성하는 이들 가운데는 당대표 아르레트 라귀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다.

    = LCR과 LO는 늘 연대투쟁을 해왔다. 하지만 이건 연대가 아닌 통합이며 재창당이다. 우리도 LCR을 해체했듯이 그들도 통합의 틀 속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들에게도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실천만이 신뢰다

    – LCR은 물론 지지자들의 수는 많았지만 그에 비해 실질 당원 수는 3천 명이었다. 하지만 아직 당과 당의 통합은 없는데도 NPA 창당 발표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당원 수가 만 명, 지금은 또 한 달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만천 명이 되었다. 이유가 뭔가?

    = 결국은 실천하는 당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본주의 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는 답이 될 수 없음을 NPA는 온갖 투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이야기하기 때문에 쉽게 당원으로 가입이 가능하다. 실천만이 신뢰를 줄 수 있으며, 그리고 우리에겐 시의적절한, 정확하고도 명백한 목표가 있다. 반자본주의!

    – 반자본주의신당의 당명이 가지는 포괄성도 큰 것 같다. 그래서 당명 또한 바꾸지 않을 거라고 들었다.

    = 응? 나는 반대하는데…. 왜냐하면 2, 3년이 흐른 뒤에는 더 이상 신당이 아니지 않느냐?

    – <레디앙>을 위해서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

    = 되지만, 이런 사진은 나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내가 시위 속에서 혹은 NPA 활동을 하고 있는 사진이라면 진실된 사진이 될 것이고, 나를 훨씬 더 잘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11월 18일 파리3대학에서, 박지연 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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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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