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변인은 단타매매
        2008년 11월 26일 03: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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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 진보의 의무

    “한 맺힌 사람들로 인식되는 진보”

    얼마 전 진보신당의 정치아카데미 행사에 강사로 등장한 배우 박중훈씨는 강의 내용 중에 진보신당 사람들의 인식 전환을 당부하면서 “한 맺힌 사람들일 것 같다는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굳이 박중훈씨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미 오래전 <한겨레21> 2006년 8월 10일자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표적집단면접’(FOCUS GROUP INTERVIEW)을 통해 얻어낸 것이 “(바싹 마르고 머리를 기른) 개성과 고집이 강한 20~30대 초반”이라는 것이었고 보면 일반 국민들이 민주노동당, 혹은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의 사람들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동일 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이 “(깔끔한 양복에 잘 정돈된 머릿결을 가진) 소탈하고 활달한 30~40대 후반 남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다. 선거가 자기와 비슷한 생각과 이미지를 가진 정당과 사람에 대해 투표하게 되는 경향을 갖는다고 할 때 자신을 ‘개성과 고집이 강한 2~30대’라는 인식은 매우 협소한 정당 이미지이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 2006년 8월 10일자 <한겨레21> 중에서 
     

    대변인을 하면서 기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알게 된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언가 가부장적이고 고집스러우며 얼굴에 표정이 살아있지 않은 50대 남성”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작업복을 입고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겨레21>의 조사와 좀 다르기는 해도 선뜻 다가서기에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는 느낌만큼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자기 신념과 주장이 강해 남의 의견을 듣지 않을 것 같고, 북한과 친할 것 같고, 민주노총의 정치적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 그리고 집권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그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공통된 부정적 이미지 틀이었다.

    “당은 전략투자, 대변인은 단타매매”

    어떤 집단이든,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자신의 존재 바깥에 긍정과 부정 양측면의 이미지를 쌓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모두 이런 외부 이미지를 인식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다.

    정당이 자신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표자의 변경, 정책노선의 변화, 통합이미지의 재구축 등이 있다.

    탄핵위기 당시 박근혜 대표를 앞세워 읍소정치로 ‘멸문지화’의 위기를 벗어난 한나라당이 대표자 변경이라는 방식의 반응을 보여준 것이라면, 대선 당시 구석에 몰린 정동영 후보가 갑작스레 좌회전을 시도하면서 ‘진보적 정책’을 도용해간 것은 정책노선의 변화라는 대응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사회연대전략 차원에서 야심차게 준비해 발표했던 ‘비정규직 등 연금사각지대 해소방안’이 <경향신문> 1면에 소개되면서 격찬을 받았던 것 역시 ‘민주노동당은 대기업 노동조합의 정당이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훌륭한 정책노선의 변화 노력의 반영이었다.

    이 밖에 대변인을 통한 이미지 변경 시도도 가능한 방법이다.

    정당의 정책노선의 변화나 대표자(후보자)의 변경 등이 ‘전략적 투자’에 해당한다면, 대변인은 사실상 ‘단타매매’에 해당한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온갖 일들에 대해 당의 입장을 전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며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정치구도 속에서 당과 당의 주장을 도드라지게 전달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사람인 반면,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는 역할과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매에 골병들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대변인 한 명의 이미지 규정 역할도 결코 작지 않다. 대변인을 통해 기존에 구축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경우는 한나라당의 이계진, 나경원 대변인이 있다. 그들은 모두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독재잔당, 꼴통보수, 저질문화, 강성노선, 지역주의정당’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방송사 아나운서 출신의 부드러운 말투의 이계진 대변인이나 ‘전여옥’으로 대표되는 한나라당의 전형적인 여성정치인 상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경원 대변인 덕에 한나라당은 서울 수도권에서 2% 정도의 정당 지지율 이익을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 나와 당시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 사이에 오고간 이야기였다.

    이계진, 나경원 대변인처럼 당의 전략적인 배려는 없었더라도 대변인으로 임명되는 순간부터 나에게도 역시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를 최대한 불식시켜야 하는 역할이 주어진 셈이다.

    “뻔한 논평은 불친절한 논평이다”

    2007년 들어서면서 전두환씨의 고향인 경남 합천 군수가 ‘새천년생명의숲’이라는 기존 시민공원의 이름을 전두환의 아호를 따 ‘일해공원’으로 변경하려는 일을 추진하면서 전국이 한바탕 시끄러웠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논평을 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식대로, ‘운동권’ 마음속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눈에서는 불이 일고, 문장에서는 피가 끓는 논평이 있어야 했다.

    ‘광주시민 학살자이자 민주주의 반역자인 쿠데타 주역의 아호를 따 공원 이름을 변경하겠다는 것은 반민중적인 작태이며…’

    뭐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것이 기존 민주노동당, 진보진영의 이미지에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좀 달라야 한다. 적어도 정당이, 자신의 주장은 선명하게 전달하더라도 그 표현은 최대한 넓은 공감을 얻어야 한다. 정당 대변인의 뻔한 논평은 국민에게 매우 불친절한 논평일 뿐이다. 이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두환이 워낙 ‘나쁜 남자’인데다가 공원 이름 변경 추진 세력의 인식도 너무 비루해서 곳곳에서 한말 의병궐기문 수준의 성명이 난무하던 때라서 어떻게 비판의 날을 세울지 적지 않게 고민했다. 나는 고민 끝에 전두환과 명칭변경 지지세력 모두를 비웃어주기로 했다.

    “전두환씨의 아호인 날일(日)자와 바다해(海)자인 일해는 횟집이름으로나 어울릴 뿐이다”라는 한줄 논평이 그것이었다.

       
    ▲ 2006년 3월.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폭탄주 퍼포먼스’가 끝난 후 보좌관들이 술잔 파편을 치우고 있다. 박용진 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미디어 오늘)
     

    최연희 의원의 여기사 성추행이 일어났을 때 한나라당의 대응방식은 ‘술이 웬수다’였다. 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쯤으로 치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논평은 ‘술은 무죄다’였다.

    “나도 애주가이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술 마시는 사람이 최연희 의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술이 무슨 죄냐?”

    한나라당의 저질반응에 정치원론과 인간도리의 공자왈 맹자왈을 다시 늘어 놓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폭탄주가 문제이니 폭탄주를 응징(?)해야 한다며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벌인 폭탄주 박살 포퍼먼스로 깨진 유리잔과 어지럽게 흘러 넘친 양주로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부르짖은 한 젊은 애주가의 울분넘친 한 마디가 많은 기자들과 국민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 논평은 당시 많은 언론에서 기사화하기도 했지만 ‘민주노동당은 이렇게 대응할 것이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난 대응으로 주목받았다.

    다가서기 위한 노력, 진보정치의 의무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여전히 국민들에게 여러 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그중 긍정적인 측면은 계속 강화해 나가고 부정적인 측면의 이미지는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략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은 5.31 지방선거 이후 여러 곳에서 감지된 위기의 신호들을 알고 있었다.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등 진보성향 언론매체들에 의해 다루어진 민주노동당 관련 특집기사들의 키워드도 대부분 ‘위기’였다.

    원내진출 이후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도 당의 위기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그 징후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해소하지 못한 것이 대선 패배와 분당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마다 새로운 인물을 들이거나,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면서 기존 이미지를 변화시켜 나가려는 보수정당들의 노력을 비웃기만 할 것이 아니다. 진보정치는 단지 우리의 주장이 옳다고 하는 강한 자부심과 신념만으로 실천될 수 없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이제 할 수 있으면 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자 진보정치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진보정치’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부정적 이미지는 현재 민주노동당이 대표하고 있지만 진보신당이 남 일 대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을 똑같은 세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넘어야 할 산은, 진보신당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리고 그 산은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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