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움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2008년 11월 25일 01: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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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과 시민운동단체, 노조, 교육공동체들이 함께 모여 선거를 치루었다. 당과 시민단체 후보 간의 내부경선 등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결과는 과천의 전체 2개 선거구 모두 2등으로 당선, 두 명의 시의원을 만들어냈다. 나는 당시 민주노동당, 서형원 시의원은 초록정치연대 소속이었다.

    과천은 3인 선거구 2개에 비례대표까지 7명의 의원이 있으며, 우리 둘 외의 5명은 한나라당 소속이다. 상임위가 없는 과천에서 대부분의 안건심의는 6명의 의원으로 이루어진 특별위원회에서 이루어지고, 이 중 3명이면 조례를 부결시키고, 예산을 삭감시킬 수 있다. 2명이면 작지 않은 의원수이다. 실질적으로 한나라당을 견제할 수 있는 제2당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천에선 진보가 ‘제2당’

    당선 이후 필자의 의정활동은 크게 네 축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는 등 의회 일정에 따른 의원 본연의 활동이고, 둘째는 지역의 현안들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내고 싸우는 역할, 세 번째는 지역의 진보적 단체들과 교류하고 지원하는 역할, 마지막으로 시의 각종 위원회 회의와 행사 등에 참여하는 활동이다.

       
    ▲ 황순식 진보신당 과천시의원이 인조잔디 설치를 반대하며 문원초등학교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사진=황순식 의원 블로그)
     

    시의원으로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역할이 더 중요하겠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대한 요구가 훨씬 더 많았다. 시와 유관 단체들에서는 끊임없이 행사와 회의 등에 참석을 요청하였고,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의 사업을 함께 하면서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CCTV설치, 골프장 조성, 쓰레기 자동집하장 설치, 재건축과 대규모 개발계획 등 시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서는 함께 연대해서 고민하고 싸울 수 있는 단체나 시민들을 찾기 어려웠다. 활동당원이 적은 당에서는 여력을 내기 힘들었고,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다.

    솔직히 지역의 구체적인 개발현안이나 행정의 문제들은 진보진영에게 낯선 의제들이었다. 새롭게 공부하면서 대응논리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의회 내의 활동과 의회 밖의 활동은 완전히 괴리될 수밖에 없었다. 조례를 만들고, 매년 수십억 원의 문제가 있는 예산을 삭감하고, 개발현안이나 행정의 문제들을 지적하여 시정하도록 하는 등 의회 내에서 성과도 적지 않았다.

    중요한 싸움에선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회 내의 활동만으로는 그 성과가 지역의 진보정당과 시민세력에 쌓이지 않았다. ‘젊은 진보정당 시의원을 뽑아 놓으니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지역의 여론을 만든 것도 성과라면 성과이겠지만, 이런 성과는 시의원 개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정작 중요한 싸움에서는 항상 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진보적 시민단체의 일에 가능한 한 열심히 결합하였으나, 그것은 시의원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지역 활동가로서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일들은 물론 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었지만, 지역의 역량을 총동원해 시의원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로부터 안정적으로 월급받는 지역활동가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 좀 허무하지 않은가?

    올해 있었던 초등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 반대 운동은 이처럼 원내와 원외 활동이 괴리된 문제를 잘 보여주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싸움은 06년 12월, 07년 예산안에 심의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 우리는 플라스틱 인조잔디의 화학적 위해성 문제를 가지고 예산삭감을 주장하였으나 5:2의 표결결과로 예산이 통과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업시행이 늦어져 08년도로 예산이 이월될 때 한 표를 더 확보하여 예산이월을 불승인, 사업이 중단되도록 만들었다.

    이후 학교장과 몇몇 학부모들은 600명 가까이 인조잔디 조성 촉구 서명을 받아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와 의회에 강력히 항의하였고, 결국 올해 5월 추경예산 심의 때 예산이 다시 올라와 표결이 뒤집어지게 되었다.

    의회에서 예산이 승인되지 않아도..

    초등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을 반대하면서 자료를 모아보니 그 문제점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자전거나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도 없고, 다양한 놀이가 가능하였던 운동장이 축구전용 공간으로 바뀌는 데에 대한 대책도 없었다.

       
    ▲황순식 의원(사진=황순식 의원 블로그)
     

    또, 부상위험도 더 높았고, 여름에는 표면온도가 60도를 훌쩍 넘어 학교 전체를 뜨겁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학교 운동장은 모든 아이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사용해야만 하는 공간이다. 아토피가 심하거나 플라스틱 제품에 민감한 아이들은 전학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의회 내에서 예산승인을 가지고 싸우는 동안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만나고, 함께 목소리를 내지를 못하였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시민단체나 공동육아 출신 학부모들이 들어가 있는 다른 초등학교와 달리 이번에 인조잔디가 깔리게 될 문원초등학교 학부모 중에는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반대 목소리는 모아지지 않고 있는데, 학교장이 적극적으로 학부모들의 찬성여론을 만들어 압박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예산심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예산이 통과된 후 우리는 몇 명의 학부모들을 만나 지금까지의 경과와 인조잔디의 문제점에 대한 자료를 공유했다. 우리는 패배감에 젖어 큰 기대를 하지는 못하였으나, 본격적인 싸움은 이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인조잔디 조성에 반대하는 학부모 모임이 만들어졌고, 먼저 인조잔디의 유해성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공청회를 요청하였다. 전체 학생수의 절반에 가까운 563명의 학부모들로부터 공청회를 요청하는 서명을 받아내고, 다시 430명의 인조잔디 조성 반대 학부모 서명을 받아냈다.

    학교와 시청, 교육청에 서명을 전달하고 면담을 수차례 하였으나, 학교장은 ‘30년 교직생활 동안 학부모와 상의하여 일해본 적이 없다’며 무시하였고, 요식적인 사업설명회 후 7월 말에 사업을 발주하였다. 2달여를 싸워온 학부모들도 이제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지역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진행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거리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인조잔디 운동장의 문제라는 것이 아직은 낯설고 직관적이지 않아서 시민들의 서명을 하나 받는 것도 쉽지는 않았으나 한 명, 한 명 시민들을 만나 설득을 계속했다. 필자와 서형원 의원은 각각 학교입구와 시내 중심가에서 인조잔디를 깔고 앉아 땡볕시위를 진행하였다.

    이쯤 되자 지역과 학교의 여론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학부모 여론수렴은커녕 공청회 요청조차 무시하는 학교에 대한 분노와 초등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의 문제점이 충분히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보수적인 지역 언론들도 점차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예산심의와 대중운동의 결합이 중요

    그러나 결국 인조잔디는 깔렸고,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곧 아이들이 그 위에서 뒹굴게 될 것이다. 이번 싸움은 분명히 패배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이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크게 당황한 시장은 이제 당분간 지역 내에 학교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함께 싸웠던 학부모들과 의원들은 이후 인조잔디 운동장이 아이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려 한다.

    하지만 이번 싸움의 가장 큰 성과는 예산심의와 대중운동의 결합의 중요성을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학부모들과 시민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면 의회에서 인조잔디 예산의 통과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항상 바쁜 시민들뿐 아니라 활동가들도 문제가 당장 눈앞에 닥치기 전에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필자도 의회 내에서 싸우기 바빠 시민들에게 문제를 알리고 함께 싸워나가는 과정을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이번 싸움을 통해 시민들은 시의 정책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시 한 번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더 나아가 지역의 권력구도를 진보적으로 재편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정당 밖에서도 다음 지방선거를 준비하자는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나오고 있다.

    권력구도의 진보적 재편 필요성 확산

    12월 내년 예산 심의를 앞두고 엊그제 예산안을 받았다. 아직 제대로 펼쳐보진 못했지만, 그 두툼한 예산안에 이번에도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있을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이제 혼자서 싸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리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서형원 의원과 진보신당이 함께 준비하는 예산워크샵이 예정되어 있다. 당선 이후 매년 해 왔던 일이지만, 올해는 준비하는 기분이 색다르다. 단순히 내년 예산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진보적 시민들과 함께 치열하게 토론하며 시의 현안들을 공유하고, 대안들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즐거운 마음으로 예산안을 펼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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