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주체를 성장시키자”
        2008년 11월 25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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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민주노동당이라는 요새로부터 일군의 무리(필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가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기지도 갖지 못한, 하지만 애초보다는 상당한 규모를 갖춘 유랑 군대로 발전했다. 이들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이들의 다음 운명은 무엇인가? 이들은 과연 어떠한 목표를 세우고 무엇을 정복해야 하는가?

       
    ▲ 필자

    애초에 기존 요새를 버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수십, 수백 가지 이유가 얽힌 내분이 있었다. 본래 압도적인 적들에게 포위된 성채 안에서는 내분이 일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막상 내분이 일어났던 당시의 이유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애초 의도야 어떻든 한 무리의 유랑 군대가 등장했다는 그 사실에 오히려 더욱 주목해야 한다.

    이 군대에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새로운 요새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군대를 기다려주는 무주공산의 성채는 없다.

    또 어떤 이들은 예전 요새로 돌아가 그곳을 탈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 방침을 무력화시키고 민주노총이 복수의 진보정당들을 동시에 지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민주노총 탈환’은 옳지 않아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의 유랑 군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과거의 요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1단계의 정규전은 이미 패배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유격전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서 오해해선 안 될 게 있다. 이것이 무슨 제3노총을 만들자거나 이제는 민주노총과 완전히 선을 긋고 비조직 노동자들만을 위한 정당임을 선언하자는 것일 수는 없다. 이것은 또 다른 정규군으로 돌아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정규군인 체 하자는 것일 뿐이다.

    게릴라 부대는 적에 맞서 낡은 정규전 방식으로 싸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존 정규군과 같은 지평에서 경쟁하려 하지도 않는다. 게릴라 부대는 기왕의 전장에서 단지 한 걸음만 거리를 둔다. 두 걸음도 아니고 오직 한 걸음이다. 이 단 한 걸음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적을 교란하면서 기존 정규군을 선동하여 그 재구성(노동운동의 경우라면, 계급연대-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을 촉진한다.

    그러자면 민중들 사이에서 유격 부대의 기동성을 강화할 새로운 요소들을 끊임없이 충원해야 한다. 한국 자본주의의 경직된 구조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부분들, 흐름들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그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유’는 역설적으로 사회로부터 좀 더 방치되고 배제된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즉,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 여성, 소외된 지역 주민, 88만원 세대, 웹2.0세대 등등. 새로운 진보정당은 바로 이들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 진보신당 제2창당 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처럼,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의 정당’, ‘여성의 정당’, ‘지역의 정당’이어야 한다.

       
    ▲ 지난 3월에 열린 진보신당 창당대회 (사진=레디앙)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 여성, 소외된 지역 주민, 88만원 세대, 웹2.0세대

    하지만 이것이 대중의 특정 부분, 그 일부에만 배타적으로 다가가자는 뜻은 아니다. 변화는 여전히 다수자 전략에서 나온다. 유격대는 다시 다수 대중을 획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게릴라전의 목표는 정규군을 새로 형성하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보다 많은 수의 대중이 한국 자본주의의 경직된 구조로부터 조금이라도 이완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틈을 벌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 전체를 가로지르게 해야 한다.

    필자가 앞선 글(「동시대인의 의견③」)에서 주장한 풀뿌리 부문의 건설이나 지방 수준의 실천 등의 의미를 이런 맥락에서 되씹어볼 수 있다. 이것은 곧 민중들 스스로 기존 구조의 바깥에서 새로운 선택지들(혹은 그것의 맹아라도)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 자체가 대안의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좀 더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데 꼭 필요한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

    이런 실천 과정에서 그 때 그 때 정세에 맞는 연합 전술 같은 게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 세력 간 연합은 진보, 민중 세력의 재구성이라는 더 근본적인 목표에 철저히 종속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낡은 정규군(민주당이든 과거 방식의 진보정당이든)에 재흡수될 위험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이제부터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는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은 지속될 대혼돈의 시대를 극복할 주체들을 성장시키는 일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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