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이 아니라 '평화'
        2008년 11월 24일 10:5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 번에 ‘북한 애국자와의 대화‘에 대한 호평을 쓴 뒤에 몇 가지 반론을 받았습니다. 북한 독재와 궁핍의 참상이 명백한데 이를 비판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요지의 반론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표현을 잘못해서 오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는데, 약간의 석명을 시도해보겠습니다.

       
    ▲ 필자
     

    제가 비판 그 자체를 부정하려 했다기보다는 ‘쓸모 없는’, 즉 상대방의 그 어떤 긍정적 변화도 유발할 수 없는 비판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을 가졌을 뿐입니다. 상대방을 바꿀 수 있는 말, 즉 힘이 실려 있는 언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러나 그러한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해서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일단 제 궁극적 목표부터 이야기하자면 하나밖에 없죠. ‘통일’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평화’입니다. 이미 이 정도로 이질화된 상태에서 통일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언제쯤 가능할는지, 통일에 따르는 부작용 (예컨대, 북한 민중의 하층계급화 등)이 어느 정도일는지 사실은 따로 연구해야 할 주제이며, 전혀 쉬운 주제는 아닙니다.

    끝에 가서 통일이 되면 대단히 좋지만 지금으로서 현실적으로 당장의 과제라면 일차적으로 ‘평화’라는 게 제 현실 인식입니다. ‘평화’라는 것은 남파간첩과 북파간첩을 보내지 않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죠.

    평화의 의미, 평화의 조건

    주한 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이에 보조를 맞추어서 남북 육군의 단계적인 상호적 감축, 단계적인 우편 연결의 복원, 역시 단계적인 이산 가정의 상호 방문의 정기화 등등은 진정한 의미의 평화의 시작일 것입니다.

    10~15년이 지나도 지금 중국 양안의 상황만큼 좋아지기가 어렵더라도 (지금 중국에서 대만인 약 1백만 명이 상주 체류하고 있는데, 남한인의 부유한 모습을 인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당장 북한 정권으로서 매우 곤란하니 거기까지 빨리 가기가 힘들죠), 일단 대만에서의 친척을 방문해도 좋고 연락해도 좋은, 그러한 중국의 상황만큼 개선되는 걸 하나의 중간적 목표로 삼을 만도 합니다.

    그리고 평화의 기초가 어느 정도 공고화돼야 그 다음 낮은 수준의 연방 만들기를 향한 정치, 경제 협력 문제 등을 논의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일단 평화는 우선입니다. 그러한 평화 정착없이는 예컨대 남한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이라든가 점차적인 모병제로의 전환 등 탈군사주의적 개혁도 어려울 것이고, 남성들의 군사화된 행동양태 등을 바꾸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평화의 전제 조건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게 상대방에 대한 이해, 즉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에의 가까워지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는 위대한 주체형 혁명가’도 아니고, ‘악마 김정일의 세뇌에 이끌려 로봇처럼 움직이는 불쌍한 병신’들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진짜 북한 사람’을 만나야 그 다음 서로를 이해하는 쪽으로 같이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북한 지식인이라고 해서 북한이 동북아 지역의 최빈국이고 극히 억압적 나라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밖에 나가서 그러한 이야기를 공석에서 쉽게 할 수야 없지만 (뭐, 남한의 公人이라면 외국인 앞에서 남한의 문제점을 아주 솔직하게 비판하기가 그렇게 쉬운가요?) 사석에서는 또 다르죠. 알 것을 거기에서도 다 잘 아는데, 문제는 그 어떤 타개책도 쉽게 나오지가 못하는 것입니다.

    황장엽처럼 깃발을 내리고 투항하기? 그게 지위가 높은 개인이 하면 반대쪽에서 훈장을 받고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지만, 나라 단위로 하면 노예 이상이 무엇이 될 것입니까? 당장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을 그대로 따르기? 중국이야 그렇게 해도 인민들의 동요가 비교적으로 쉽게 진압된 천안문 사태 이상이 안될 만큼 강력한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북한은 그것보다 몇 백 배 약자죠.

    개혁개방은 불가피하게 빈부격차의 심화, 부정부패의 심화, 유사 유교적 통치명분에 대한 대중적 회의와 민심 이반의 가능성을 의미하는데, 1990년대의 중국처럼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장해야 그걸 어느 정도 봉합할 수 있는 것에요. 그게 북한으로서 과연 가능한가요, 지금과 같은 불리한 입장에서 말씀이죠?

    북의 선택지는 너무 좁다

    그러니까, 비판도 필요할 수 있지만, 아무리 비판을 잘 해도 지금의 북한 상황만큼 너무나 복합적인 과제는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죠. 그리고 앞으로 갈 길을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결정하자면, 북한의 실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일단 객관적 인식부터 가져야 할 듯합니다. 비판을 하려고 해도, 그 인식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근대 초기, 1900년대의 매체를 보면, 여러 가지 근대적 구호들이 많이 보이죠. 그 중에서는 ‘부국강병’과 ‘식산흥업’, ‘문명개화’ 등은 출현 빈도가 제일 높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쉽게 이야기하자면 북한이 궁극적으로 선택한 것은 ‘부국강병’이었는데, 소련의 몰락 이후로 본의아니게 그게 ‘빈국강병’으로 탈바꿈됐습니다.

    반대로 남한은 – ‘강병’을 게을리한 것도 아니었지만 – 1960-80년대의 국가 주도의 ‘식산흥업’으로 가다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상당히 깊이 편입된 상태에서 전반적인 ‘문명개화’, 즉 서구 열강들의 정치, 사회 문화의 대대적인 이식 (제도적 민주화 등)으로까지 간 것입니다.

    남한이 성공하고 북한이 실패했다? 글쎄, 결과론으로 가면 그렇게 보이지만, 그게 좀 피상적인 통찰입니다. 북한이 속해왔던 국제적 체제 (현실 사회주의) 그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보다 그 구성원인 개별적 국가들에 대한 ‘중심’의 제도의 이식 등을 그렇게까지 강요하지 않았던 데다 (내지 그 이식을 그렇게까지 강력하게 유도하지 않은 데다가) 1989년 이후로 아예 와해까지 됐기에 북한은 사실상 혼자 남았습니다.

    혼자 남은 상태에서의 ‘문명개화’가 쉬운가요? 구한말을 생각해보시면, ‘문명개화’ 운동의 발단은 1882년의 조미 조약 체결 등 자본주의 핵심부 세력과의 ‘화친’ (대원군 시대의 갈등의 막내림)과 각종 대외 교류의 폭발적인 증가이었습니다.

    그 때에 고종의 왕실이 결국 이 과정을 관리할 힘을 갖지 못해 일제의 식민화 압력 앞에서 굴복했던 것은 김정일로서는 밟지 말아야 할 전철이지만, 어쨌든 간에 그나 그 후계자에게는 ‘문명개화’의 전제로서 ‘평화’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그들이 처한 상황들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 최적의 타개책을 생각해내서, 일단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게끔, 그리고 우리들이 ‘폭력의 시대’를 벗어나게끔 움직여야 하지 않습니까? 아주 단순화시켜서 쓴 것이지만, 그게 제 북한론의 골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명박의 대북 조치들을 보면 미칠 지경이죠. 자질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는데, 이러한 반역사적 망동까지 예상하지 못했어요.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