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기 주범 1천명 형사처벌해야"
        2008년 11월 21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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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 1천명 이상을 형사 처벌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200명은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야 한다."

    국제사무직노조연합 한국협의회와 국제공공노련 한국지부 공동 주최로 열린 공공성 연속 토론회의 첫 번째 순서로 19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세미나실에서 열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 관련 토론회에서 이채언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들을 조직적 사기범죄로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이 교수는 정부가 직접 신용 창출을 통제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미국 서브 프라임 사태의 본질을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신용평가회사의 도덕적 해이에서 찾는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장기주택채권을 조기에 회수하기 위해 MBS(주택대출담보증서)를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팔았는데 부실 우려가 확산되자 CDO(부채담보부증권)이라는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MBS에 신용카드채권과 자동차할부채권 등을 섞어 부실을 감췄을 뿐인데 신용평가회사들은 여기에 최우량 등급을 부여했다.

    길거리 약장사처럼 금융상품 팔아치워

    이 교수는 "마치 길거리 약장사들이 가짜 약을 팔기 위해 바람잡이 구매자들을 동원했다가 그것만으로 안 되니까 유명 대학 실험실에서 유명한 의학박사의 평가 보고서까지 내걸고 장사하는 것과 똑같은 짓을 했다"고 비난했다.

       
    ▲  지난해 7월 기준으로 CDS가 보장하는 채권이 미국 전체 주식시장 규모의 4배인 62조달러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40%가 이미 부도처리된 것으로 추산된다
     

    CDO는 마치 맛없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라도 당근이나 양파를 잘 섞어 맛있는 소시지로 바꾼 것과 같다고 해서 소시지 증권이라고 불리기도 했을 정도다. 채무증서를 파는데 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문제가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가 성행했고 금융기법만 발달하면 아무리 형편없는 정크본드라도 훌륭한 금융상품이 될 수 있다는 믿음까지 확산됐다. CDO는 지난해 6월부터 거래가 중단됐는데 온갖 금융상품을 뒤섞어 놓은 탓에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테면 도이체방크 자회사인 IKB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소재 주택 14채를 압류하겠다고 법원에 신청을 냈는데 판사가 모기지 계약서를 제출하라고 하자 이를 구비하지 못해 기각되기도 했다. 모기지 회사들 상당수가 이미 파산해서 계약서가 사라지고 없는데다 조각조각 쪼개서 팔았기 때문에 소유권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캘리포니아주와 플로리다주에서도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MBS가 과연 압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CDO보다 더 복잡하고 위험한 것이 CDS(신용디폴트스왑)다. CDS는 특정 금융상품이 부도처리 될 경우 원금을 100% 보상해주는 조건으로 수수료를 받는 파생상품이다. 흔히 국채수익률과의 차이를 수수료로 지급하고 파산의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 성격이라고 보면 된다. CDS를 파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이 금융상품이 부도 나지 않는다면 앉은 자리에서 고스란히 수수료를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약 부도확률이 1%라면 1억달러로 100억달러어치의 CDS를 팔 수 이야기다.

    문제는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부도확률이 종잡을 수 없이 급증하는 경우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CDS가 보장하는 채권이 미국 전체 주식시장 규모의 4배인 62조달러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40%가 이미 부도처리된 것으로 추산된다. 한 사람에게 거액의 사망보험을 중복해서 가입시켜주고 보험료를 챙겨왔는데 갑작스럽게 이 사람이 죽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파생상품, 사고 판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라

    이 교수에 따르면 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특정 금융상품에 대한 CDS를 구매했다가 그 CDS가 폭락할 경우 사들여서 원금 보장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시중에 유통되는 CDS의 13% 이상이 사고 판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화재보험에 가입했는데 정작 불이 났을 때 누구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황당무계한 파생상품이 거래되는데 감독당국이 수수방관해 왔다는 사실이다. 2005년 10월 자동차 부품회사인 델파이가 파산했을 때 이 회사 채권에 걸린 CDS가 실제 채권금액의 10배가 넘었다. 파산 직후 이 회사 채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채권 가격이 급등했던 것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였다.

       
    ▲ 금융회사들 부실은 고스란히 미국 국민들 부담으로 전가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국유화한 AIG(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의 경우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CDS의 부실이 고스란히 미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FRB는 CDS를 판매한 헤지펀드의 파산을 막기 위해 은행들에게 대출을 독려하고 있다.

    베어스턴스의 파산을 방치하고 JP모건에 합병하도록 유도한 것도 JP모건의 부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FRB는 250억달러를 들여 베어스턴스의 부실 자산을 인수하고 300억달러를 JP모건에 빌려줬는데 역시 고스란히 미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향후 미국 정부의 선택과 관련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는 재정적 수단을 동원해 사회적 부를 소상인과 소자본과 연금생활자 그룹으로부터 대은행가와 기관투자자, 투기자 같은 금융기생 그룹에 강제로 이전시키는 것. 10월 초 7천억달러 긴급 재정지출도 이런 방식의 일환이었다.

    둘째는 통화 관련 수단을 활용해 부의 강제 이전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이를 테면 화폐 개혁을 단행해 새로운 통화를 발행하고 달러화와 교환 비율을 차등화하는 방식이다. 미국국민과 기업들에 대해서는 1:1 교환이겠지만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1:2, 1:3, 1:4로 교환비율을 적용해 미국의 손실을 다른 나라에 전가할 수 있다.

    셋째는 군사적 조치까지 고려해 은행의 강제 휴업과 은행구좌 동결 등을 명령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이 교수는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침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무력 침략 가능성도 배제 못해"

    이 교수는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미국이 어느 정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조건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이미 미국 경제는 탈산업화했기 때문에 금융산업을 살린다고 해도 물적인 생산조건을 회복시키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국은 제조업보다 금융관련 부문이 훨씬 적은 세금을 내는 불합리한 조세제도부터 개혁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노동자와 고용주가 분담하는 의료보험과 연금보험, 실업보험, 실업연금 등 금융비용과 주거 비용 일체를 정부가떠맡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이 교수의 대안은 "부실 금융회사는 모두 퇴출시키고 정부가 통화발행과 금융업무를 맡으면 해결된다"는 것. "중앙정부가 직접 통화발행과 신용카드 업무를 맡고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일반적인 예대출 업무를 맡으면 거기서 나오는 수입만으로도 재정지출의 상당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지금 우리의 과제는 투기나 거품을 억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적 활동을 촉진하고 도모하는데 금융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사회가 신용창조를 직접 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어떤 산업과 어떤 투자활동에 신용을 제공할 것인지, 어떤 지방의 어떤 계층의 사람에게 보조금을 줄 것인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사회가합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해야 하고 사후 관리도 사회적 감시로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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