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손으로 쓰는 삼국지?
        2008년 11월 20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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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속담에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한 가지 이유는 어린 시절의 삼국지에 비해, 나이 들어서 읽는 삼국지는 재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삼국지에는 사실 황당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현대적인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의 양상이 계속 반복된다. 이를테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와서 장수들끼리 먼저 싸우다가, 한쪽 장수가 죽으면 갑자기 그 쪽의 대오가 와장창 무너지며 대패한다는 식의 얘기들이 자주 나온다. 나이 먹어서 그런 글을 읽으면 황당할 따름이다. "그럴 바에야 그 많은 군대를 왜 데려왔을까?"

    그러나 늙어서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말의 보다 더 큰 의미는 삼국지가 갖고 있는 어떤 ‘권력투쟁에 대한 중독성’ 때문이다. 삼국지는 등장인물의 생로병사를 모두 포괄할 정도로 ‘장구한 권력투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장구한 권력투쟁 속에는 당연히 수많은 배신과 음모가 나오고 야망과 계략이 판을 친다. 이것들은 좋게 말하면 ‘삶의 지혜’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인간사의 냉혹한 이해관계가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이 장구한 권력투쟁 스토리에 중독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세상이란 원래 이렇게 비정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의 평범한 삶은 원래 ‘권력투쟁’과는 상관없는 평온한 삶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모든 인간의 삶 속에는 일정하게 권력투쟁의 성격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세상 물정을 좀 아는 나이에 삼국지를 읽다보면 이것이 왠지 생활 속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시 쉬어가는 마당에 ‘삼국지’라는 오래된 정거장을 들러보는 것은 아직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삼국지는 무엇보다도 ‘권력에 얽힌 문학’으로써 아직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삼국지는 수백 년을 전해 내려오면서 문학이자 역사이기 전에 정치학이자 군사학이며 처세학이었다.

    권력투쟁에 관한 이야기는 청와대에서 사는 사람의 전유물은 아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고 권력운동의 향방에 대해 다들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삼국지처럼 ‘장구한 권력투쟁 이야기’는 사실 흔치 않은 문학이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됐던 지난 2000년에 비해, 모두들 조금씩 지쳤고 모두들 조금씩 늙어버린 이 시점에 ‘늙어서’ 삼국지를 다시 한 번 뒤적거려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정립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천하를 나눠 먹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삼국지를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국 속담에 ‘늙어서 삼국지를 보지 말라’고 했지만, 중국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굳이 찾아서 해보는 것도 또한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 * *

    내가 쓸 삼국지는

    1. 촉한정통론 이탈

    <레디앙>에 연재될 <빨간 삼국지>는 일단 촉한 정통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아다시피 삼국지(연의)는 원래 유비를 주인공으로 한다. 즉, 촉나라의 유비가 한(漢) 황실을 계승한 적통이며 따라서 ‘유비’에게 권력의 정통성을 부여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반대로 조조는 아주 비열한 인간이며 난세의 간웅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누가 유씨 황실의 적자인지’의 측면을 중시하는 현대인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조조가 전략적으로 중대한 거점을 먼저 장악했고 결국 끝까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또 각종 제도를 창설, 운용하는데 유비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비는 제도주의 학파(?)라기 보다는 인간주의 학파(?)라고 할 수 있어서 대개 여러 가지 문제를 그 때 그 때 인간관계로 돌파했다.

    인간성보다는 제도를 중심으로 사회변혁을 구상해온 사람들이 볼 때는 유비보다는 조조에 더 주목할 만하다. 촉한 정통론에 입각한 삼국지는 특히 <레디앙> 독자들에게는 별 재미없는 삼국지가 될 것이다.

    2. 캐릭터의 대학살

    원래의 삼국지는 내용도 방대하고 특히 엄청난 수의 등장인물이 출몰한다. 이것은 어찌보면 삼국지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을 때,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생소한 중국식 이름을 지닌 등장인물이 두더지 나오듯이 여기저기서 마구 튀어나오면 독자들은 대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어 작가가 배치한 여러 가지 복선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즉 재미를 반감시킨다. 특히 인터넷으로 보는 마당에 이렇게 많은 캐릭터가 나오면 줄거리를 이해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빨간 삼국지>에서는 어지간히 유명한 캐릭터가 아니면 모두 죽일 생각이다. 등장인물을 최소화하면서 구성을 살리고, 어차피 개략의 줄거리는 독자들도 다 안다는 전제 하에 빠른 장면 전환을 추구해 보고자 한다.

    3. 민중사관의 ‘일부’ 도입

    과거에 이른바 ‘민중사관’ 이라는 기본 관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웅에 의한 역사서술보다는 민중의 삶과 생활을 중심에 둔 역사인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빨간 삼국지>도 이러한 관점을 일부 도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삼국지는 원래 본질적으로 영웅사관을 바탕으로 기록됐다. 민중사관은 ‘삼국지’의 기존틀을 깨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도입된다.

    4. 권력사관 중심의 삼국지

    <빨간 삼국지>는 ‘권력사관’을 적용해 보고자 한다. 특정 영웅을 중심으로 모든 역사를 보지는 않겠지만, 객관적인 권력현상을 중심에 놓고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즉, 각 등장인물의 권력의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런 것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는데 초점을 두고 삼국지를 풀어나가고 싶다.

    따지고 보면 삼국지라는 것도 결국 100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된 권력현상이다. 물론 이렇게 풀어가다 보면 ‘주인공 대 악당’ 의 구도가 사라지게 될 우려가 크다. 이것은 ‘스토리’를 구성함에 있어서 하나의 약점이 될 것이다.

    원래 대부분의 문학은 악당과 주인공이 등장해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대개 주인공의 위기가 심화될 때 독자의 집중도도 높아진다. 그러나 <레디앙> 삼국지는 이런 구도를 포기한다. 단지 객관적인 관점에서 권력의 생로병사와 권력간 상호작용을 추적하는데 주력해 보려 한다.

    5. 기본 얼개의 유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고려사항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의 기본 얼개는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삼국지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 고사성어들도 다 포함시켜보고자 한다. 사람들이 삼국지 하면 떠올리는 기본 줄거리는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새로운 삼국지를 만들어 볼까 한다.

    물론 우리는 가끔씩 삼국지라는 미명하에 현실을 빗대어 현 정부를 약 올리기도 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조조나 유비의 입을 빌려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향후 몇 달 동안 무척 재밌는 작업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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