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 지하철, 파업이 잦은 이유들
    갈등 원인 무관심 시민들도 한 몫
        2008년 11월 19일 1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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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부터 철도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가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소식이다. 철도노조의 준법운행으로 벌써부터 열차 운행시간이 지연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브라질 방문 중에 “철도노조 파업은 납득할 수 없다”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시민들의 출근길 원성을 담은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두 노조의 예고된 파업이 직전에 타결되어 마무리될지, 실제로 행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예견하는 것이 있다. 철도와 지하철을 둘러싼 현재 조건이 변하지 않는 한 이 파업은 이번에 매듭되어도 또 반복될 것이다.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외주화, 민간위탁이 노사갈등 뿌리

    첫 번째는 철도, 지하철에서 외주화와 민간위탁이 상시적인 갈등 쟁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것이 정부정책 혹은 경영권 문제라며 노조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려 하고, 노조는 철도, 지하철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고용불안을 야기할 문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힌다.

    우선 외주화, 민간위탁도 민영화의 한 방식이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민영화에는 소유권을 사기업에게 이전하는 하드웨어적 방식과 소유는 공기업이 가지되 운영만 사기업에게 넘기는 소프트웨어적 방식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하드웨어적 민영화가 주를 이루었다면 노무현 정부 들어선 외주화, 민간위탁 등 소프트웨어적 방식이 넓게 퍼졌다. 보통 정부관리들이 민영화를 소유권 문제로만 다루지만, 민영화의 본질이 ‘이윤을 최종목표로 하는 경영’에 있으므로 사기업에 의한 외주화, 민간위탁도 민영화로 보는 것이 옳다.

    외주화, 민간위탁은 다른 공기업에서도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철도, 지하철에서 이것이 자주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특수성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궤도산업에서 안전성이 지니는 중요성 때문이다. 만약 외주화, 민간위탁이 추진되면, 원청인 공기업과 하청인 민간회사들이 ‘비용 절감’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안전성을 간과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탈선한 영국철도의 열차

    이는 실제 외주화가 전면화되었던 영국철도에서 확인되었다. 영국철도는 민영화 이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민영화된 철도시설회사(레일트랙)가 유지보수비용을 아끼려고 대대적으로 외주화를 추진했고, 그 결과 선로 관리가 사실상 방치돼 철도대란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이어졌다.

    노동조합의 공공성 활동

    철도, 지하철에서 외주화, 민간위탁 문제가 도드라지는 또다른 이유는 해당 노동조합의 독특한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철도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는 자신의 근로조건(임금, 고용안정)을 넘어 이용자의 관심 사안을 ‘공공성’의 이름으로 제기해 왔다. 이용자 안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요금체계, 시설투자에 대한 정부 책임 등이 이들의 주요 요구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사회적 의제로 파업을 벌이는 노동조합을 납득하기 어렵다 했다. 과연 그럴까? 결국 이용자인 시민의 몫이다. 노동조합이 과도한 요구를 내걸면서 시민의 이동권을 제약하고 있는지, 아니면 노동조합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려는 것인지를 시민이 판단해야 한다.

    철도·지하철 적자 원인 공방

    철도, 지하철에서 파업이 잦을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만성적인 적자에 있다. 철도는 매년 5천억 원, 서울지하철은 1천억 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기록한다. 지금의 조건에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방안에서 매각 대상으로 선정된 공기업들이 모두 흑자기업들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이 적자가 근본적으로 비효율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화,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인력을 줄이는 데 집중한다. 반면 노동조합은 이 적자가 철도, 지하철의 사회적 역할에 따른 ‘정책적 적자’라고 진단한다.

    궤도산업이 지닌 안전성, 정시성, 친환경성, 서민교통 등의 가치 때문에 원가에 못 미치는 요금수준을 유지하고,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겐 요금할인 면제도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2007년에 한국교통연구원이 철도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계량화해 보았는데, 통행시간 절감분, 교통사고 절감분, 대기오염 감소분 등 한 해 효과만 무려 37조 원으로 산정되었다. 철도 영업수익 2조 2천억 원의 17배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사회경제적 부가가치로 보면 철도는 흑자조직인 셈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철도 적자가 비효율과 무관한 사회적 적자이기에 이에 대한 공적 보전을 요구한다. 국제철도연맹의 자료를 보면 한국철도의 노동생산성이 독일, 프랑스, 이태리 등 철도선진국의 2배에 달한다. 여기서 어떻게 더 인건비를 짜내느냐는 항변인 것이다.

    하지만 철도는 2010년까지 영업수지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지 못하면 민영화 추진을 검토한다는 선진화방안을 통보받은 상태고, 서울지하철공사는 올해 하반기에 차량 검수, 정비 분야 외주화를 확대하고 있다.

    철도, 지하철은 초기 시설투자가 막대하게 소요되는 산업이다. 중장기적으로 건설비가 요금으로 회수돼야 하는데 대중교통이라는 공공적 역할로 인해 요금 인상이 쉽지 않다. 게다가 철도지하철의 친환경성, 안정성 등 사회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시설투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그래서 현행 체제로는 철도, 지하철에서 영업적자가 되풀이될 것이고, 노사는 다시 적자 원인 공방을 벌일 것이다. 이 노사갈등을 시민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당장 파업으로 인한 교통정체엔 짜증을 내지만, 파업의 원인에 대해선 무관심한 시민들이 이번 파업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민도 파업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난 열차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시간을 맞출 수 있고, 틈틈이 독서하기도 좋은 곳이다. 그래서 나 역시 철도, 지하철이 멈추는 걸 원치 않는다. 이제 파업을 불러일으키는 고질적인 문제들은 해결돼야 한다.

    이용자의 안전을 다루는 산업에서 외주화, 민간위탁은 정말 곤란하다. 운영적자에 대해서도 눈을 넓게 뜨자. 애초 시장기업에게 적용되는 손익계산회계 틀로 공공적 기관을 재단하려 했던 것부터 무리이지 않은가? 철도, 지하철이 미래 친환경산업으로서 대중의 발이 될 수 있도록, 이제 시민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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